10여년전 삼성화재에서 경험해보니 삼성에서는 모든 인사고과 및 발령이 12월 1일에 맞춰져 있었다. 연말이라고, 승진이라고, 발령이라고 노는 분위기 가지지 말고 12월 첫째주에 빠르게 조직을 재정비해서 내년도 사업을 남들 노는 연말 분위기일 때 확정 짓는 문화였다.
관리의 삼성이고, 일 중독 삼성 다웠다. 최근에는 그 문화가 거의 모든 대기업으로 옮긴 것 같다. 상당히 많은 회사들이 12월 1일자로 거의 신규 인사작업을 다 마무리하고 새롭게 셋팅된 조직으로 내년도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나도 개인적으로 12월 1일에 맞춰서 마치 새해처럼 새로운 방향성을 정하고 그에 맞춰서 행동하기로 했다.
가장 큰 변화는 ‘금주’, 술을 끊어보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길게 두 번 금주를 지속 했었던 적이 있었다. 첫번째는 10개월 가량, 두번째는 6개월 가량 금주를 했다. 사실 이 기간에 정말 좋았다. 금주를 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확보된다. 밤에 쓸데 없이 돌아다니지 않게 되니, 저녁 약속을 해도 식사만 간략하게 하고 온다. 컨디션이 좋으니 새벽에도 2~3시면 매우 맑은 정신상태, 몸상태로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운동량이 급격히 늘었는데 몸이 건강해지지 자연히 운동량이 늘고 내가 원하는 운동 퍼포먼스도 나왔다. 시간이 많아지는 만큼 사업에 더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장점이 있음에도 다시 포기하고 술을 마셨을까? 어떻게 보면 지루함을 견디기 힘든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금주 생활은 수도승 생활같이 느껴지다 보니 다시 포기하고 속세로 돌아온 것과 같았다. 저녁자리, 술마시고 노는 자리, 밤 늦게까지 술집을 전전하면서 마치 의를 다지는 듯한 자리 등등 이래야 좀 사는 것 아닌가? 이래야 세상 어울리면서 사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술을 마시면 내가 위에서 말한 장점이 다 깨진다. 새벽에 일어나도 정신이 몽롱하고, 집중할 수 없고, 시간이 늘 부족하고, 사업에 더 몰두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겠는가?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데?
술을 끊어야겠지?
그런데 이번에는 지속할 수 있을까? 나에게 이번에는 다른 이유를 부과할 수 있을까?
지난 11월말 고등학교 동창들 송년모임을 졸업 후 28년만에 처음으로 다녀왔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아저씨가 되어서 만나도 동창들은 동창들이었다. 이런 저런 세상 이야기를 나누던 중 죽은 동창 친구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고등학교 동창친구 한 명, 삼성 입사 동기 친구 한 명, 이렇게 두 명의 친구의 본인상을 경험했다. 둘 다 치명적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였다. 47세가 된 지금,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와 이쁜 두 딸의 아빠가 된 지금은 가장으로서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제는 금주의 제1목적이 생존이 되었다. 당뇨,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이 아직 오지 않았는데 이렇게 술먹고 방탕하게 살다가는 금방 당뇨, 고혈압이 올 것 같았다.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더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절제하는 삶, 수도승같은 삶일지라도 금주를 함으로써 그 계기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래 건강히 살기 위한 것 중에 한 가지가 또 운동인데, 금주를 해야 컨디션이 좋고 시간이 확보가 되어서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도 그 이유가 된다.
작가가 되기로 한 것 역시 금주를 결심하게 된 데 큰 계기가 되었다. 나는 사업을 하는 대표이사이면서 글을 쓰고 싶었다. 최근에는 나를 믿어주는 출판사와 출판계약도 했다. 이제는 내가 꿈꾸는 그런 내용으로 원고를 완성하고 첫 책을 출간해야만 하는 의무까지 생겼다. 그런데 내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그리고 온전히 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새벽 3~6시이다. 이 세시간동안은 글쓰기와 책읽기에 몰두하고 싶었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내 몸의 패턴을 안다. 술을 안먹으면 적절하게 소식을 하게 되고, 야식을 안하니 속이 편안해서 잠도 잘자고, 그러면 5시간 정도만 자도 새벽 3시 이전에 일어나진다. 술을 마시면 이 리듬이 심하게 깨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정답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 금주를 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각 새벽 3시 40분도 3일연속 술 안마시고 푹 잘 잤더니 기분 좋게 일어나져서 글을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적으로도 더 몰입하고 싶었다. 내가 금주를 하게되면 상당히 사업적으로 몰입도가 높아지고 회사가 제품을 만들고 일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느꼈다. 지금은 다시 새로운 프로덕트를 만드는 단계인 만큼 이것을 반드시 성공시키고 싶었다. 이제는 그만 놀고 온전히 집중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얼마전에 그런 글도 작성했지만, 나는 성공하려면 하루에 15시간 일을 해야 하는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내 사업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글을 쓰는 순간을 빼고 모든 순간에 사업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도 금주를 하고 늘 맑은 정신상태를 유지해야 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과거의 금주 기간에는 찾지 못했던 새로운 이유를 이번에는 더 찾게 되었다.
가족과의 질 높은 시간이었다. 가까이서 수없이 많은 죽음을 경험해보고 나니 이제는 가족과의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지난 토, 일, 월 3일을 보내면서 이번에는 앞으로 금주를 하면서 이렇게 보내야겠다 결심하면서 아내와 두 아이들과 여러가지를 했다. 그리고 과거에 더 진심으로 이렇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아내와는 못다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무엇에 홀려서 그렇게 정신없이 살았는지 반성도 하고, 내 평생을 함께한 진정한 내 배우자에게 더 진심으로 다가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하다못해 아파트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해도 아이들은 그렇게 좋아한다. 아빠가 그렇게 빠른지 몰랐다고 이제야 그런 이야기를 들을 정도니 할 말 다했다. 어제 저녁에는 앞으로 매일 글쓰기 해보자 하면서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그래서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을까?” 이런 주제로 글을 써보자고 했다. 사실 내가 아이들을 더 알고 싶어서 이렇게 다가갔다. 두 아이들이 나름 종이에 잘 적고 발표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가장 기뻤다. 큰 아이는 내가 데미안을 읽어주는 것이 좋았다고, 다시 읽어보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사실 하루에 30분만 읽어줘도 보름안에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는 것을 경험했는데 그것을 못했다. 아이들에게 매일 짧게 글을 써보게 하고, 책을 같이 읽어주는 삶. 정말 단순한 것인데 나는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놓치고 있었다. 내가 금주를 해서 이 시간에 가족과 이렇게 깊게 질높게 시간을 보낼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평생 그렇게 하고 싶다고 결심했다.
이제 47세로서 인생의 절반은 지난 것 같다. 절반은 내가 내 인생을 통제할 수 없었다. 내 시간도 통제할 수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없었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번의 금주 결심은 나를 깨우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들었다. Awake! 늘 깨어있고 싶다. 지금의 순간순간을 포토카피처럼 머리속에 잘 저장해 놓고 싶다. 이제는 스쳐가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작은 경험도 다 의미를 부여해서 머리속에 저장하고 싶다.
이제는 이유를 찾은 것 같다.
금주할 수 있겠어? 평생할 수 있겠어? 왜 금주를 해야 하는데? 안하고는 대안이 없어?
이제는 답할 수 있다.
금주는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 번 생각해볼 이유는 충분하다고 권할 수 있겠다.
당신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본인이 지배하고 있는지? 통제하고 있는지? 금주를 생각해볼 때는 아닌지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