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가 뽑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1위
왜 교육자가 되셨나요?
소프트웨어 교육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다.
이 질문은 얼핏 보면 가벼운 스몰토크 주제처럼 들리지만 대답하기는 꽤 까다롭다. 너무 장황하게 내 경험과 생각을 풀어놓다 보면 대화가 갑자기 무거워지기 쉽고, 반대로 가볍게 넘기자니 별 생각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선택할 때 신중하게 선택하는 편은 아니지만 생각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진 않다.)
종종 정말로 그 이유가 궁금해서 묻는 사람들도 있지만, 답변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중간 과정을 생략하게 되고, 가끔은 맥락을 건너뛰기도 한다. 결국엔 집에 돌아와 '왜 그렇게 대답했지?' 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이 되곤 한다.
그러던 와중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이와 비슷한 주제로 글을 작성한 것을 보았다. 그 글을 읽고 나서, 나도 한 번 내 이야기를 제대로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나는 약 1년 반 정도의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고 개발자로서 일을 시작했다. 사회생활도 처음인 만큼 초기에는 그저 적응하고 나에게 닥친 일을 하나씩 해치워나가는데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2~3년 차쯤부터 스스로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질문이 생겼다. '나는 정말 개발자가 맞는가?'라는 의문이었다. 개발자는 당연히 개발을 '좋아해야 하고', 항상 '성장해야 한다'는 일종의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개발을 좋아하긴 했지만, 주말까지 모두 쏟아부을 만큼 열정을 느끼지는 못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스스로가 다른 개발자들과 다르다는 이질감을 느꼈고, 동시에 '이래도 괜찮을까?' 하는 불안이 나를 괴롭혔다.
특히 내 머릿속에서 상상한 것만큼 좋은 코드로 구현되지 않았을 때, 혹은 주변의 비슷한 연차의 친구들이 눈에 띄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일 때, 불안을 더 크게 느꼈다. '나는 정말 이만큼 노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순간도 많았다.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 성장을 위해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나 자신에게 실망감이 들었다.
정말정말 많은 시간을 '나는 진짜 개발자인가?'라는 질문으로 스스로의 자격을 의심하는 데 쏟았던 것이다.
이런 지리멸렬한 시간을 버텨낼 수 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운 좋게 좋은 선배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개발을 잘하고 싶은 마음과 실제 나의 실력 사이의 차이나 나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대한 징징거림에 공감해 주고 격려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부터 공부해야 할지 헤매고 있을 때 긴 기간의 로드맵을 그려주던 분도 있었고, 면담 때마다 나의 현재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분도 있었다. 공부한 것을 어떻게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있을지 알게 된 것 같다는 이야기에 함께 기뻐해 주던 분도 계셨다.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고 업무에 도입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러면 그동안 본인이 조직에 들어오는 운영 업무를 도맡을 테니 이에 집중해 보라고 환경을 만들어주시는 분도 계셨다.
나도 언젠가는 이들과 같은 사람이 되어 나같이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은,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그런 선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6~7년 차쯤 되었을 때도, 여전히 나는 누군가를 돌보기보다는 플레이어로서 문제를 해결하고 개발하는 업무가 실제로도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도 비중이 컸다. 또한, 그 시기에 만난 리더들에게 나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나눴지만, 이전의 경험만큼 공감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물론 그 당시의 회사와 서비스의 상황이 이전과는 크게 달랐기에 이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을 지속한다면,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과는 다른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에 소프트웨어 교육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내가 교육을 받을 때의 스승님(ㅋㅋ)으로부터 받았다. 제안받은 '코치'라는 역할은 내가 고민하고 있던 영역에서 실제로 경험을 쌓을 기회로 보였다. 대신 내가 교육이란 걸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경험이 있는지, 정말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만큼 준비가 되었는지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교육에 발을 내딛게 된 이유는, 내가 받았던 도움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거창한 목표가 없어도 개발자로 살아갈 수 있고 개발하는데 특별한 자격이 없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싶었다. 과거의 나처럼 스스로를 의심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받았던 것과 같은 위로와 조언을 건네고 싶었다.
나름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포부를 가지고 이 길을 선택했는데, 당연히도 모든 고민이 사라지진 않았다. '내가 진짜 개발자가 맞나?'라고 스스로에게 묻던 그때처럼, 지금은 '내가 진짜 교육자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곤 한다. 시작은 '사람'이었지만,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일' 그 자체에 빠지게 되는 내 모습을 보며, 내가 진정으로 이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느냐는 고민이 다시 찾아오곤 한다.
그런데도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이런 시기를 의심만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작은 시도를 해보며 확신을 찾아가고 된다는 걸 안다는 점이다. 교육생으로 만난 친구들에게 (큰 도움은 아니더라도) 이들의 마음만큼은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주고 있다는 순간들을 쌓아 가면서, 나도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떠올린 두 가지 바람을 적으며 마무리해 본다.
과거의 나처럼 헤매고 있는 누군가에게 뭐라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일 자체에 빠져있는 내 모습을 본다면 나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