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나 역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고 인생을 대충 산 것도 아니다. 남들처럼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스트레스받으며 공부했고, 때론 기뻤다가, 때론 좌절하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으레 그렇듯이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나는 많이 불안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는데, 나는 그게 원래 모두가 그런 줄 알았다. 잘되면 잘된 대로 못하면 못한 대로 언제나 불안은 나를 따라왔다. 더 이상 힘낼 수 없던 가장 최악의 시절, 고맙게도 지금의 남편이 손을 내밀어줬다. 나는 그 손을 덥석 잡고 바로 결혼이라는 도피처로 숨어버렸다. 바로 아이가 생겼고 나는 공식적으로 임신과 육아라는 이름으로 사회생활에서 제외되었다. 전업주부라는 이름 뒤에 숨어 평온한 하루들이 지나갔다. 다행히 잘 쉬었더니 불안하고 부정적이던 마음들이 하나둘씩 건강해졌다. 삶은 진자처럼 고통과 무료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고 쇼펜하우어가 말했던가. 조금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는 또 그 지긋지긋했던 세상에 다시 나가고 싶어 문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처음엔 외벌이로 고생하는 남편을 돕기 위해 돈을 벌고자 함이었다. 단군 이래로 돈 벌기 가장 쉽다는 세상인데 나도 노력하면 가게에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동안 유튜브 썸네일을 가득 채웠던 개나 소나 버는 월 천만 원. 나도 한번 가는 거야! 기대에 찼더랬다. 그러나 세상이 언제 그렇게 만만했던 적이 있던가. 월 천만 원은 고사하고, 이런저런 강의를 들으며 돈만 더 썼다. 그놈의 수익화, 그게 참 힘들었다. 그런데 더욱 아이러니했던 것은 열심히 노력해서 유의미한 성과가 생기더라도 어느 지점에서 항상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한참 공을 들여 팔로워도 늘리고 작게나마 공구도 진행해 보았다. 아직 광고비를 받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협찬 물건만 일주일에 두세 개씩 받으며 나름 자리를 잡는 듯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뭔가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자꾸만 발길이 멈춰졌다.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인가. 이렇게 매일 보이는 것에 신경 쓰며 사진을 찍고, 협찬이랍시고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이 집안에 쌓여가는 꼴을 보는 것이? 그리고 이것을 ‘평생’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하고 있는 것들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꽤 자주 그랬다. 남들이 돈 된다는 길을 열심히 가다 보면 늘 어느 지점에서 우뚝 멈춰서 ‘이게 맞나? 진짜 이게 내가 원하던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기둥 위에는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맹목적으로 기둥을 오르다가 기둥 끝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발견한 애벌레처럼 말이다.
미련하게도 이 짓을 몇 번이나 하고 나서 나는 크게 두 가지를 깨달았다.
이길 저길 돌아다니느라 시간 낭비는 좀 했지만 내가 오래갈 수 있는 길을 확실히 찾으면 뭐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결국 ‘무엇’을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늘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가.
잘하는 일을 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유튜브며, 책이며, 여기저기를 많이도 뒤져봤다. 그리고 이때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준 답변은 ’ 시대 예보‘시리즈를 내고 계신 ‘송길영’ 작가님의 인터뷰와 책들이었다. 이 분의 인터뷰 영상 중 ’ 송길영 고양이‘라고 치면 나오는 유명한 인터뷰 영상이 있는데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좋아하는 거 하라고 해요. 이유가 어떤 걸 하더라도 뭐 10년 정도는 해야 내가 전문가가 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일을 해보니깐, 내 손발을 맘대로 쓸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러워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근데 좋아하지 않으면 지속할 수가 없어요. 중간에 그만둘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좋아하는 걸 꾸준히 해보면 확률이 높아지는 거예요. 거꾸로 얘기하면 좋아하지 않는 거는 꾸준히 안 할 거니깐 확률이 제로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좋아하는 거 하는 게 맞는 거죠. 제가 농담 삼아 이렇게 얘기해요.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그러면 10년만 고양이를 키우고 연구를 해요. 그러면 10년 후에 전부다 모든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하면 당신은 고양이의 대가가 되어 있어요. 큰 마켓에 수장이 되어 있고,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가질 수 있어요. 10년 후에 아무도 고양이를 안 좋아한다면, 어때요. 그동안 즐거웠잖아요. 거꾸로 얘기하면 안 좋아하는 걸 하면 기댓값이 제로예요. 왜냐하면 잘하지 못할 테니까. 즐기는 자를 못 이길 테니까요.”
특히나 ‘10년 후에 아무도 고양이를 안 좋아한다면, 어때요. 그동안 즐거웠잖아요.’라는 말이 꽂혔다. 그래.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크고 작은 성과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없으면 어떠한가. 나는 평생 좋아하는 일을 한 것이니 이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좋아하는 일은 아직 ’ 잘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 ‘잘하는 일’로도 만들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지 찾아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