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제비], 어반플레이, 2019-03-12
* 당시 ‘보자기’에 넣을 수 있는 사업의 종류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도시개발법」 제2조제1항제2호의 규정에 의한 도시개발 사업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2조제2호 나목의 규정에 의한 주택재개발 사업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2조제2호 라목의 규정에 의한 도시환경정비 사업 △「택지개발촉진법」 제7조의 규정에 의한 택지개발 사업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2조제10호의 규정에 의한 도시계획시설 사업
** 현재 ‘큰 보자기’에 넣을 수 있는 사업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지역발전 및 도시재생을 위하여 추진하는 일련의 사업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발전 및 도시재생을 위하여 추진하는 일련의 사업 △주민 제안에 따라 해당 지역의 물리적·사회적·인적 자원을 활용함으로써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사업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른 정비사업 및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에 따른 재정비촉진 사업 △「도시개발법」에 따른 도시개발사업 및 「역세권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역세권개발 사업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에 따른 산업단지개발사업 및 산업단지 재생 사업 △「항만법」에 따른 항만재개발 사업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른 상권활성화 사업 및 시장정비 사업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도시ㆍ군계획시설사업 및 시범도시(시범지구 및 시범단지를 포함한다) 지정에 따른 사업 △「경관법」에 따른 경관 사업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빈집정비 사업 및 소규모주택정비 사업 △「공공주택 특별법」에 따른 공공주택 사업 △그 밖에 도시재생에 필요한 사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
그럼 요즘 시민단체 등이 을지면옥 철거 등을 문제로 삼아 비판하는 사업은 도시재생 사업일까요? 뉴타운 사업일까요? 정답은 뉴타운 사업(재정비촉진 사업)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도시재생 사업이란 ‘도시재생 지역’에서 ‘도시재생활성화계획’에 따라 하는 사업을 말합니다. 그런데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활성화계획에는 ‘건축물을 전면 철거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런 내용은 어디에 있을까요? 모두 재정비촉진계획에 담겨 있습니다.
시민단체는 ‘여전히’ 느리고, 서울시는 ‘웬일로’ 빨랐다
이제 공론화 과정을 살핍니다. 먼저 고백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세운상가 일대 문제 관련해서 받았던 질문 중에 가장 뼈아팠던 건 이겁니다. “사실 재개발 사업(뉴타운 사업)이 하루이틀 만에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철거가 시작되는 지금에 와서야 난리예요?” 딱히 좋은 답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네 운동 역량의 한계예요.” 그 원인은 재개발 사업의 흐름을 살펴보면 찾을 수 있습니다.
정비구역지정 → 조합설립인가 → 사업시행인가 → 관리처분계획인가 → 철거 → 준공인가 → 이전등기(사업 완료)
이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관리처분계획인가’입니다. 이 인가를 받은 이후에는 바로 철거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단체 등이 세운상가 일대 문제를 공론화한 건 해당 지역의 일부 구역이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고 ‘철거’를 시작하면서입니다. “왜 더 빠르게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느냐?”는 타박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현재 철거 중인 지역은 세운3-1, 4, 5구역입니다. 이들 구역은 2015년 7월에 사업시행인가가 났고, 2018년 10월에 관리처분계획인가가 난 뒤, 12월에 철거를 시작했습니다. 세운상가 일대 상인 및 활동가 들이 모여 공론화 기구인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를 꾸린 건 2018년 말, 관련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1차 성명을 발표한 건 2019년 1월 2일입니다. 1월 8일에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에 대한 서울시의 대처는 아주 ‘신속’했습니다. 1월 16일, 박원순 시장이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사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새 대안을 발표”하겠다고 했습니다. 서울시가 ‘세운상가 일대의 재개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서울시, 세운상가 일대 도심전통산업과 오래된 가게(老鋪) 보존 추진』)를 배포한 건 그로부터 일주일 후(1월 23일)입니다.
용산 참사 이후 무엇이 바뀌었나?
끝으로, 재개발 사업의 상가 세입자 보상 문제를 들여다봅니다.
재개발 사업을 하기 위해 세입자의 동의는 필요치 않습니다. 세입자는 조합원이 되어 사업에 참여할 수도 없습니다. 재개발 사업의 주체가 될 자격을 가진 사람은 토지 등 소유자(조합)에 불과합니다. 그 때문에 토지 등 소유자는 건축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삶터와 일터를 잃는 세입자의 피해 보상 및 이주 대책에 드는 돈을 ‘비용’, ‘지출’ 정도로 분류합니다. 그런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자 ‘노력’하면, 2009년 용산 참사와 같은 비극이 벌어집니다.
용산 참사의 핵심 쟁점은 ‘완전한 보상’이었습니다. 권리금 등을 보상받지 못한 채로 그냥 내쫓긴 상가 세입자는, 내쫓기기 이전만큼의 사업을 꾸릴 수가 없습니다. 재개발로 인하여 한 사람의, 한 가정의 생계가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점은 누구나 조금만 설명을 들으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용산4구역 상가 세입자들이 마지막까지 주장한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용산 참사 이후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럼 지금 관련 제도는 정비가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2014년 10월에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이 개정되며 재개발 사업 시의 상가 세입자 휴업 손실 보상분을, “3개월 이내”에 해당분에서 “4개월 이내”에 해당분으로 늘린 게 전부입니다. 그 탓에 이 명제는 아직도 참입니다. “재개발 사업으로 토지 등 소유자가 얻는 이익은 세입자의 손해가 커질수록 커진다.”
세운상가 일대 문제의 핵심도 용산 참사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재개발이어야 한다
재개발 사업으로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피해를 보는지는 명확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그 환경을 조성한 주체가 누구인지도 확실합니다. 서울시 등 행정은 책임감을 갖고 세운상가 일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토지 등 소유자는 본인들의 이익이 과연 누구의 피해에 기초하는지를 직시해야 합니다. “법대로 하자”는 말은 능사가 아닙니다. 법이 곧 정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제도 개선의 속도가 속이 터질 만큼 느리다는 걸 우린 앞에서 살폈습니다). 또한, 이제 시민단체 및 세운상가 일대 상가 세입자들은 사건의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을지면옥, 독립운동가의 집터 등을 보존하자는 이야기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이번 사안의 본질은 아닙니다.
서울시는 “금년 말까지 관련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꼭 올해 안에 대책을 수립∙발표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닙니다. 갈등의 원만한 해결입니다. 갈등은 민주주의의 연료입니다. 어쩌면 지금이 재개발 사업에서의 토지 등 소유자와 상가 세입자의 이해충돌 해결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재개발 사업을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