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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도심을 지나 시골길 따라 파주 출판단지로

워킹 에세이 ’나는 걷고 생각하고 씁니다‘

by 마포걷달

표지사진 | 경기 고양시 일산호수공원 ‘대나뭇길’



아이쿠! 아직 한낮은 덥구나!


분명 가을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쑥 뒷북을 치는 여름 잔상이 진동하는 하루입니다. 바람이 시원하다 했더니, 그 시골길 농로를 걸을 때만큼은 등에서 땀이 차르르르 흐릅니다. 무색하게도 가방에 싸 온 바람막이 잠바는 오늘도 왕따가 됩니다.



‘걷기 리뷰단’을 꾸려서,
파주 출판단지까지 걸으면 어떨까요?


출판사 대표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네!”라고 대답을 하고는, 일주일도 안 되어서 가방을 꾸려 집을 나섰습니다. 지난 1년간 목표로 했던 24개의 서울 걷기 에세이가 이제 막 끝나기도 했고, 또 이제는 서울 근교로도 나가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걷기 리뷰단’을 위한 코스도 설계할 겸, 일산에서부터 파주 출판단지까지 걸었습니다.




오래 걷고, 많이 걷고. 또 유명하거나 잘 알려진 길만 걷는 것이 아니다 보니 제 나름의 걷기 코스를 개발하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특히 생각지 못한 곳에서 만나는 길 맛이 너무 좋을 때는, 이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려줄까 하여 글을 쓰기 시작 전부터 엔돌핀이 쏟아집니다. 오늘도 그런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평소 걷기에 단련이 되어있지 않은 이상, 하루 10km 걷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아! 오늘 좀 걸었네? ’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보통 12~15km가 적당해 보입니다. ‘걷기 리뷰단’에 어떤 분들이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10km 이내의 코스를 설계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걷다 보니 그 보다 조금 더 걸어야 하더군요. 파주 출판단지까지, 설마 일산이나 고양시에서 걸어가신 분들이 얼마나 계실까요? 자전거도 가끔 보이지만, 걷는 내내 사람이라고는 저 한 명뿐이더군요.


어쨌든, 걷기의 시작은 지하철 3호선 정발산역으로 정했습니다. 저 또한 처음 와 본 곳이지만 정발산역 1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아주 넓은 광장이 있어, 단체의 사람들이 모이기에는 너무나 좋습니다. 게다가 광장은 바로 ‘일산호수공원’으로 이어지기에, 출발부터 걷는 재미가 생깁니다.


호수에 도착하니, 지역 주민들이 눈에 띄게 많습니다. 제각각의 사람들을 보는 재미가 참 좋습니다. 18년 전, 지금의 딸아이가 아내 뱃속에 있을 때 놀러 오고는 처음이네요. 그래도 그때의 호숫길이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이라 낯설지 않습니다.


일산 호숫길을 반바퀴 정도 돌고는 ‘평화누리길’로 빠져나갑니다. 평화누릿길은 김포에서 시작하여 파주, 연천을 거쳐 철원까지 이어지는, 총 12개 코스 191km의 길입니다. 저는 일산에서 파주까지, 약 5~6km 정도는 누릿길의 일부를 이용하고, 지역 탄천을 지나 파주 지역의 목장과 시골길을 경유하려 합니다.



일산 도심은 큰 감동 없이, 다양한 지역 건물과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로만 걸었습니다. 시내 도로의 조경 시설이 잘 되어 있어, 햇빛 그늘로도 충분한 역할을 합니다. 일산 대화동의 ’ 대화천‘에 이르자 사람의 모습이 뚝 끊깁니다. 천의 수량은 많지 않고, 시설이 한강에 비해서는 많이 낙후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자연이라고, 저쪽의 두루미가 날개를 활짝 펼칩니다.


대화천 옆으로 워킹이나 자전거 라이딩길이 잘 닦여 있었지만, 햇빛이 정통으로 비칩니다. 나는 굳이 위로 올라가 작은 오솔길을 택했습니다. 사람들의 발자취가 크게 없다 보니, 길이 닦여는 있지만 자연에 가깝습니다. 오히려 두꺼운 흙과 낙엽들이 발에 밟히어 기분 좋은 소리를 냅니다. 약 2km에 가까운 길을 걸어가는데, 오늘도 보물 한 바가지를 얻어가는 기분입니다. 머리를 푹 숙여야 지나갈 수 있는 나뭇가지는, 오히려 불편보다는 걷기의 흥미를 줍니다. 나중에 누군지도 모를 회원님들과 함께 걸을 생각을 하니, 행복해지네요.^^




드디어 시골길에 접어들었네요. 이런 날 아니면 언제 걸을 수 있을까요? 도심에서 시골길은 그 경계가 칼로 무 자르듯 하지 않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그 경계를, 여기가 시골인지 도심인지 헷갈리게 여러 공장들이 존재를 합니다. 보통 제조 공장이나 생산시설등이며, 때로는 가구 공장들이 즐비어 서 있습니다. 주변으로 주택들도 간혹 있지만 인기척은 드뭅니다.


시멘트길의 폭이 겨우 차 한 두대가 지나갈 만큼의 크기입니다. 용달차가 지나갈라치면, 나는 걷다가 멈춥니다. 먼저 지나가게 두고, 나는 그 뒤를 한 두발 걸음 더 멈추었다가 걷습니다. 도심에서는 보기 어려운 흙먼지가 어린 시절의 추억이기는 하지만, 얼굴 땀자국을 땟자국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얼굴 타는 것도 문제지만, 잡티도 너무 많이 생기는 것 같아’

걷는 게 좋기는 하지만, 막상 나올 때 많은 대비를 해 두진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도 인생이라고, 신경을 크게 쓰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거울 앞에 선 제 모습에 깜짝 놀랄 때도 있습니다. “ 당신… 누구세요? ”




그늘도 없는 농로를 한참을 걷습니다. 자꾸 회원들 생각을 하다 보니, ‘이 정도면 괜찮을까?’ ‘가다가 화장실이 없어서 어쩌지?’ ‘돌아간다고 하면 어떻게 돌려보내드려야 하나?’ 별 생각을 다 합니다. 대화천을 나와 ‘장월평천’을 따라 파주 출판단지까지 5km 이상을 걸어야 합니다. ‘ 와! 이 구역에서 얼굴이 다 타겠군. 아무래도 양산이 필요하신 분들은 양산을 준비하라고 해야겠어. ’ 제가 MBTI가 ‘F’라, 남 걱정을 많이 합니다. 불현듯 옛 직장 상사의 조언이 생각나네요. “ 남 걱정 하지 말고, 너 걱정이나 하세요~ ”


어디서 구수한(?) 냄새가 난다 했더니, 젖소를 키우는 목장이 나옵니다. 이름도 ‘슈렉목장’입니다. 아무리 봐도 슈렉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주인장이 슈렉을 닮으셨나 봅니다. 굉장히 드넓은 들판의 벼 익는

모습이 좋습니다. 내일모레가 추석인데, 아직까지도 싱싱하게 익어가고 있는 옥수수나무도 좋습니다. 이방인 발소리에 개 짖는 소리도 들려오고, 넓은 황야의 시골길은 머릿속 스트레스를 비워 줍니다.


코스모스도 한들한들, 갑작스러운 무궁화도 활짝, 거미줄에 걸려있는 잠자리도 안녕! 등에서는 땀이지만, 그래도 가을은 가을입니다. 풍성한 벼만큼이나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시골 식구들의 환영이 대단합니다. 또 저 앞에서는 사마귀가 인사를 하는군요.





드디어 파주 출판단지에 들어섰습니다. 제일 먼저 웅진출판 하역장이 보이는데, 엄청 크군요. 사람들은 많이 보이질 않습니다. 나름 출판단지가 주말에도 사람들이 많이 놀러 온다고 들었는데, 거의 보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기우였군요. 목적지인 ‘지혜의 숲’에 다다르자 여기저기 놀러 나온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들이 많습니다. 저마다 아이 하나씩은 팔에 끼고, 여기저기 책방과 카페에서 주말 여유가 넘실댑니다. 지적 공기가 풍성해서 좋고, 보기에도 좋아서 오길 잘했습니다.


평소 제가 걷는 스타일로 사람들이 얼마나 걸었을까요? 도심을 걷다가, 아스팔트길을 걷다가. 흙길을 밟다가 시멘트길로 접어들고. 도심의 경계에서 황량한 공장들을 보다가, 가을 풍성한 벼 잎에 콧노래를 부릅니다. 짧지만 그 길 속에서 다양성을 체험하고 생각을 정화합니다. 오늘 저의 하루가, 또 여러분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 끝

지하철 3호선 정발산역을 출발하여, ’일산호수공원‘ > 킨텍스제1전시장 > 대화천 > 장월평천 > 구산동을 지나 파주 출판단지로


저의 첫 번째 워킹 에세이 「나는 걷고 생각하고 씁니다 」가 지난 25년 9월 출간 되었습니다.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늘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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