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캘리 낱말노트 - 껌값
껌을 씹으며 풍선을 부는 모습이 마냥 신기하고 멋져 보일 무렵. 아빠는 아침 출근길마다 내 작은 손바닥 위로 오백 원짜리 동전을 쥐어 주었다. 아빠를 배웅하고 난 후 손에 남은 동전과 그 안에 배인 스킨로션 냄새를 맡으며, '집을 나선 아빠의 뒷모습'에 대고 즐거이 손을 흔들었다. 껌 한 통 사고도 이백 원이 남았던 시절. 저금통 속으로 쨍그랑, 한 푼 두 푼 모아두는 게 어릴 적 소확행이었다. 돌아보면 별 것 아닌, 껌으로 풍선 불기를 해내겠다는 열정으로 가득 찬 날들이었다. 아빠가 준 동전으로 군것질할 값을 치르고도, 저금통에 남겨 둘 동전이 두 개나 남았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쏘냐.
아빠의 출근길을 배웅하던 아이는 한 가정을 꾸린 어른이 되었고, 아빠가 손바닥 위로 올려주던 오백 원짜리 동전과 스킨로션 냄새는 기억 속에 또렷이 박혔다. '아빠가 집을 나설 때' 꼬박꼬박 오백 원짜리 동전을 쥐어주던 그 마음은 어땠을까, 이제야 헤아려 본다. 건강이 쇄한 엄마를 제대로 돕기로 하고 한 사무실로 출근한 지 어느덧 수개월. 출근길 집을 나서며 손바닥에 오백 원짜리 동전을 쥐어주던 아빠는, 매일 아침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제 아무리 저렴한 값이라도 티끌 모여 태산이 될까, 염려하는 마음에 에둘러 거절했지만. 딸한테 쓰는 커피값 정도는 '껌값'이라는 말에, 지난 어린 시절 기억이 절로 소환됐다.
값을 매기는 아빠의 목소리에 흥겨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덩달아 웃으며 "그럼 오늘 껌 한 번 감사히 씹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비록 지금은 내 손안에 쨍그랑, 한 푼 두 푼 모을 잔돈과 스킨로션 냄새는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집을 나선 아빠의 뒷모습'에 대고 즐거이 손을 흔들 수 있는 마음만은 변치 않고 그대로였다. 티끌 모여 태산을 이룬다 한들. 그 값을 치른 대상이 다름 아닌 딸이라면 그것은 언제고 '껌값'이라는 말을 온 마음으로 이해하며, 숱한 세월이 흘러 껌값이 몇 배나 오른 지금도. 아빠에게 껌값은 변함없이 싸고 맛있는 군것질거리였다.
땅 파서 장사하고도 셀 수 없이 많이 남겼다고 배시시 웃으며 아낌없이 퍼 주고도 남을 사람. 모두가 이윤을 따져가며 너도 나도 가격을 올려 받는 마당에. 아빠만은 그 옛날 껌값 그대로 받고도, 맛있으면 됐다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세월이 흘러, 아빠의 스킨로션 냄새가 흐릿해진 손바닥 위로 아빠가 건넨 커피 한 잔. 오늘은 한 모금도 남기지 않고 온전히 비웠다. 커피에 든 카페인 성분 탓일까. 아빠가 집을 나서며, 커피를 건네던 그 마음의 깊이를 자꾸 각성하게 된다.
아빠가 건네던 껌값,
그 안에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무게가 있었다.
담쟁이캘리 낱말노트 시리즈는 본문은
브런치와 티스토리에서만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