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살고 싶었는데 안 살게 되어서 산다

아 좀 망한 거 같은데 이거

by on






'선생님은 왜 사세요?'



나는 사실 우울하지는 않았다. 다만 저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으나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대신 간단한 생활 보고를 했을 뿐이다.


"잠은 잘 자는 편이에요. 오히려 너무 일찍 자서 새벽에 일어나요. 씀씀이가 커졌고 몇 년 만에 집 대청소를 했어요."

"그리고요?"

"큰일이 있었는데 별로 우울하진 않아요. 그냥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무감하던 선생님의 눈빛이 달라졌다. 죽어야만 한다는 오래된 생각은 나의 고질병이다. 딱히 이유도 뭣도 없이 나를 지배하는 그 맹목적인 축은 아무도 모르게 약 삼 년이라는 나만의 시한부 생활을 주었다. 그래, 삼 년 정도 살면 정리할 것 얼추 정리하고, 충분치는 않지만 애기도 클 테고.... 그런 계산이었다. 나는 우울하지 않았다. 감정 기복의 진폭은 작았고 대신 그 자리에 삼 년이 당장으로 앞당겨지는, 왜 살지? 하는 강력한 의문만 점점 더 크게 자리 잡았다. 앞에 앉은 흰 가운의 선생님은 꼼꼼히 내 얘기를 기록했고, 지난주 보다 증량된 처방을 내려주었다.


이 날은 내가 정신과 약을 복용한 지 약 6년 되는 해이고, 아이의 홈스쿨링을 시작한 지 6개월 차 되는 달이며, 남편에게 이혼 통보를 받은 지 사흘 째 되는 날이고, 엄마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은 날이다.




나의 조울과

아이의 홈스쿨링은,

: 내가 아픈데, 왜요?




굳이 불쌍해 보이거나 거창해지려고 불운처럼 보이는 것들을 죄 나열한 건 아니다. 다만 나와 같이 사람들은 엄마, 아내, 딸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각자의 타이틀이 어떠한 구조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혹은 그중 하나가 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평소에는 생각해 보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쓴다. 내가 가진 어떤 이름이 망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은 왜 망하지 않는 건지 깨닫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