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시간이 부쩍 많아진 요즘,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도 함께 많아졌다.
그렇기에 이들의 하루를 자연스레 마주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몇 년 전 정년퇴직을 하시고 최근 재취업을 하셨다.
그는 매일 아침 저녁 걸어서 출 퇴근을 하고 있다.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30분 정도면 충분하다고 집 앞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도 차비대신 걷기를 자청하고 있다. 그리고 정오에 잠깐 집으로 와 어머니가 차려준 점심을 5분도 채 안되 끝내곤 다시 회사로 걸어 돌아가 일을 하신다.
"아니 엄마, 아빠는 왜 힘들게 걸어서 점심까지 먹으러 집으로 와? 역시 아빤 특이해"
"돈 아낄 겸 소화시킬 겸 오는거래. 저렇게 급하게 먹는데 무슨 소화가 되는지...이제 날도 더운데 그냥 사먹고 앉아서 잠깐 쉬지..."
처음으로 아버지의 점심시간을 보게 되었다.
나 역시 원래라면 출근하고 점심 시간이였을 터, 오늘 나는 무엇을 먹을 지 고민한 적은 있어도
아버지가 무엇을 드셨는지는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평소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다른 부녀처럼 다정한 편은 아니였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고 여럿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셨다. 나 역시 아버지를 닮아 말 수가 없고 표현을 잘 않는 편. 나는 아버지가 답답해 보이고, 그런 아버지를 닮은 나도 답답하고 싫었다.너무도 똑같기에 서로 다른 이견으로 갈등이 생기거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아버지와 나는 같은 각자의 평행선을 그리고 있었다.
끝없이 멀게만 느껴졌던 관계의 거리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버지가 조금씩 이해가 되면서부터. 지금의 나처럼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예전의 그처럼 지금 내가 얼마나 힘든지 공감이 되었다. 마냥 단점이라 여겼던 부분들이 달리 보면 장점이었다는 것도. 신기하게도 그가 걸어온 길과 지금 내가 걸어가는 길 사이엔 서로 교차하는 부분이 많았다. 점점 그에 대한 미안함과 측은함과 함께.
'아빠, 점심은 잘 드셨어요?'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간단한 말 한 마디 건네기는 어려운 건 왜 인지.
나 자신 하나로도 하루를 견디기 벅차다는 핑계로 알면서도 부모님의 하루는 모른 척 한 건 아닌지.
그리 여유롭지만은 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아버지의 하루를 곁에서 직접 보니 생각한 것 보다 더 큰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이제부터라도 별 일 없더라도 그저 그에게 오늘 하루는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는 것도 그와 나와의 평행선이 좁혀지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의 부모님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요?
지치고 긴 하루, 잠시 짧은 숨을 돌리며
오늘 점심은 잘 드셨는지 그냥 한 번 이들에게 안부를 여쭤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