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마음 가는대로 입어요. 우리.
나는 평소 옷을 입을 때 패션보단 편안함에 중점을 두는 편이다.
그런데 가끔씩 어떻게 입고 나갈지 결정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과 어울리는 스타일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체가 빈약하고 하체가 튼실한 체형이라, 상의는 타이트하게 잡아주고 하의는 가려주는 원피스류가 잘 어울린다. 그런데 나는 원피스,스커트 류를 그닥 선호하지 않는다. 내가 직접 봐도 원피스를 입는 게 훨씬 날씬해보이고 단정해보이는데 말이다. 이상하게도 원피스를 입으면 약간 불편함을 느낀다. 아마 나의 라이프 스타일과 애티튜드가 원피스와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듯 하다.
나는 평균 사람들보다 걸음 보폭이 크고 속보를 하는 편이다. 이어폰 꽂고 힙한 음악들으면서 신나게 걷는 걸 좋아한다고나 할까. 어떨 땐 좀 웃겨 보이기도 하는데 친한 사람들은 내 걸음 걸이를 따라하면서 놀려댄다. 아무튼 나의 이런 걸음걸이가 문제다. 아무래도 원피스를 입은 날엔 보폭의 크기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평소와 달리 작은 보폭 때문에 천천히 걷게 되는데, 원피스를 입었을 때 이 점이 가장 답답하고 불편하다. 나는 빠르게 질주하면서 걷고 싶단 말이다!
대부분 날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외형적으로 보았을 때 아기자기하고 차분하고 그런 성격으로 예상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러블리가 뭔지 모르는 마냥 무뚝뚝한, 그냥 심플한 사람이다. 성향 및 걸음걸이 등이 이렇다보니 거의 티셔츠에 바지를 입고 다닌다. 나의 일상에 지장이 없는 룩이라고 해야되나. 그리고 내 손길과 세월이 거친 늘어나고 닳은 티셔츠를 특히 애정하는 편이다. 나와 친한 가족들과 친구들은 더 잘 어울리는 옷이 있는데 꼭 그 옷을 입고 다녀야 되겠냐며, 거지 같은 (?) 다소 없어보이는 옷을 골라 입는 이런 날 안타까워들 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말이 진짜 좋은 조언이란 걸 알기에 그들의 지지에 힘입어 오랜만에 러블리한 옷을 입어 보기로 한다. 보기에 좋아보여서 나쁠 건 없으니까. 옷장 저 멀리 뒷칸에 걸려져 있는 베이비돌 원피스를 오랜만에 꺼내 입어본다. 몇 배 더 날씬해 보이는 이 착시 효과 나쁘지 않다. 오늘은 이걸로 겟. 이제 문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런데, 벌써부터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 이 어색한 기분을 갖고 나가자니 아무래도 안되겠어서 신었던 신발을 도로 벗고 다시 후다닥 방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평소 입던 약간 목 늘어난 흰 티셔츠와 청바지로 도로 갈아입는 나. 보기에 나쁘진 않으니까 괜찮다. 한 바탕 옷입기에 나가기 전 벌써 지친 내가 어이없어 혼자 너털 웃음이 지어졌다.
나의 흰 티셔츠가 조금은 없어보여도, 패셔너블하지 않으면 어떠랴!
이게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이고, 가장 자연스러운 내 모습, 라이프 인데 말이다.
물론 자신이 평소 즐겨 입는 옷과 추구하는 스타일이 일치하거나 패셔너블한 사람이라면 이런 딜레마에 빠질 일이 없다. 하지만 나처럼 외형적인 한계로 본인이 추구하는 패션이 어울리지 않아 고민인 사람들에게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그냥 원래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선택해서 입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이 든다. (다만 TPO에 맞게 입어야 되는 건 기본 매너인거 모두들 아실 터,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스타일'이 단순히 외형적인 패션에 중점을 두기보단 더 확장된 범주로 자신의 집 인테리어 혹은 가구 등 분명 자신의 스타일을 표현할 것들이 있을 것 이다. 굳이 내가 돋보여야 할 자리가 아니라면 애꿎게 패션에 기운을 쏟을 필요까진 없지 않나 싶었다.
패션의 아이콘 데이비드 보위의 인터뷰가 생각이 났다.
기자가 당신에게 패션과 스타일이란 무엇인가요? ' 라고 묻자, 보위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상 전 패션에 큰 관심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제가 옷을 잘 입는다는 말을 듣는 이유는 아마도 무대에 설 때마다 가장 적합한 캐릭터를 창조해내기 때문일겁니다. 무대 밖에선 전 그냥 가장 편안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길 좋아해요. 다행히 패션은 제 삶을 절대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고, 고르는 모든 것은 스스로가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결국, 스타일이란 각 개인이 창조하는 그 자신의 문화라는 이야기죠."
역으로 자신의 스타일이 뚜렷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 보면 본인 자체를 잘 이해하고 확립되어 있었다.
가끔씩 이렇게 딜레마에 빠지곤 하는 난 아직 나만의 정체성이 덜 확립된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을 둘러보지만 모든 게 무질서 한 건 뭐지. 에라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은 늘어난 티셔츠, 바지 그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