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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공김씨 Jun 27. 2024

내 나이 37, 다시 학생이 되었다

< 박사가 되고 싶은 일개미 >

나는 가방끈이 참으로 길다.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했고 2학년이 되자 진로를 변경하기 위해 휴학을 선택했다. 3년 간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다시 복학했다. 학부 공백이 발생했고 취업을 위한 스펙이 부족하여 공무원과 관련이 깊은 전문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처음에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서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꿈이 다시 살아났고 그 일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어 마지막으로 도전하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이후 석사 공부와 직업 생활을 병행했다. 처음 하는 직장 생활은 즐거우면서도 쉽지 않았고 야근과 주말 근무로 인해 학업을 소홀히 하게 되자 고민 끝에 차례 휴학을 선택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석사를 수료할 수는 있었으나, 도저히 일과 병행해서 졸업논문을 쓸 자신이 없어 나의 학업은 석사 수료로 끝이 났다.


직장 생활 10년이 흐른 다음 닳을 대로 닳아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미래의 내 모습은 어떠한지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40, 50, 60세가 되는 것만 기억할 터였다. 끔찍했다. 여기서 그만 멈추고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본래 변화를 힘들어하고 이렇다 할 특기가 없던 나이기에 그간 경험한 것에서 다른 길을 찾아보았고 다시 학업을 이어 나가기로 했다. 유학을 떠나 석사를 졸업하고 나니 학업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고, 사회초년생이 아니라 15년 차 직장인의 바이브로 생각해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좀 더 명확해졌다. 박사가 되기로 했다. 어떤 계획이 필요할까.


- 박사 진학을 위한 계획 -


1. 지원 대학의 모집 요강을 3번 이상 꼼꼼히 읽어 보고 조금이라도 궁금한 점은 대학에 질문한다.


2. 전공 시험 비중이 절반을 차지하므로 전공 시험에 집중하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3. 기본서를 최소 3번 읽고, 최신 트렌드를 익히기 위해 신문기사와 발행논문을 공부하면서, 기출문제도 한두 번 풀어보자.


공부를 하지 않은 지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6개월가량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하루하루 꾸준히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업무가 많아 공부를 못한 날도 있었지만 10분이라도 매일 관련 자료를 읽는 것을 목표로 출근 전과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해 신문기사를 검색하고 관련 논문을 읽으면서 최신 출제 트렌드를 탐색하는 동시에 기본서를 4~5 회독하였다. 어느 정도 기본서를 익히고 난 뒤에는 기출문제를 공부하면서 시험에 대비했다. 동시에 지원서 작성과 면접도 준비했다. 지원동기, 학업계획, 이력을 되짚어 생각하면서 지원서를 작성했고 면접 질문도 예상해서 답변을 상상해 보았다.


시험 당일 2시간 동안 전공 시험을 치렀다. 경쟁률이 5:1에 달하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고 생각보다 높은 경쟁률에 저절로 긴장이 되었다. 가능성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시작도 전에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2시간 동안에는 시험문제를 푸는 일에만 집중했다. 시간도 부족하고 팔이 후들거릴 정도로 글을 많이 써서 마지막 20분 동안에는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집중력이 떨어졌지만 한 글자라도 더 적으려고 노력했다. 답을 정확히 작성해야 하는 이과 과목과 달리 내가 지원하는 분야는 풍부한 사례를 출제의도에 맞게 분석하여 작성하는 것이 핵심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분석 과정을 자세히 적으려 노력했다. 2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쏜살같이 지나갔고 시험을 마친 후에는 완전히 지쳐 버렸다.


학교 식당에서 적당히 점심을 먹고 면접을 준비했다. 시험공부에 비해 면접에는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2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질문에 대비했다. 다행히 면접순서가 앞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적게 기다릴 수 있었다. 면접장에는 5~6명의 면접위원이 있어 생각보다 많다고 생각했다. 실제 질문을 하는 위원은 3명 정도였고 그중 2명은 나의 이력에 대한 질문을 주로 했으며, 1명은 지원동기나 학업계획을 상세히 질문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면접이 빨리 끝나 허탈한 기분까지 들었다. 심층적인 질문이 적어 내가 준비한 답변을 거의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번에는 전공 시험 비중이 절대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시험 점수만 괜찮다면 긍정적인 결과도 기대할 만했다. 결과 발표까지 40일이 남았다.


40일 동안 직장생활은 여전히 힘들었고 건강도 악화되어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박사 합격이 마지막 동아줄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낮과 밤을 며칠이나 보내고 나서 드디어 결과 발표일이 되었다. 지하철 안에서 합격을 확인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9월에는 대학의 신입생이 되는 것이다.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다. 다시 길 위를 걷고 뛸 준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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