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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에서는 타케리아를 가는 겁니다

타코로 시작해서 타코로 끝나는 여행

by 마그리뜨


이번엔 애리조나 피닉스다. 회사에서 가장 최근에 가동을 시작한 공장이 있는 곳으로 공장 스타트업과 퀄리피케이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배우기 위해 일주일간 파견을 다녀왔다. 매일이 이글이글 40도가 넘는 불볕더위, 구름이 만들어질 습기조차 없는 피닉스. 그래서 아리조나에 유명 천문대가 그렇게 많다고 하지만, 시애틀의 완벽한 여름을 떠나 불구덩이로 유배를 가는 기분이었다. 여름에 왜 자꾸 출장을 보내는거야 처음엔 이 날씨에 피닉스로 출장을 가라길래 많이 망설여졌다. 하지만 출장을 결심하자 피닉스는 분명히 기대가 되는 구석도 있었다.


파란 캘리포니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넘어오고, 빨간 텍사스를 좋아하지 않는 텍산들이 도망쳐오고, 은퇴한 사람들과 가정을 일구기 시작하는 자들과 학생들이 함께 살아가는 보라색 도시 피닉스. 언제 방문을 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피닉스는 15년도 넘었을 듯 잘 닦인 도로가 오랜 시간 매우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는데 여전히 비교적 새로 생긴 대도시라 그런지 도로가 과속하기 좋게 잘 닦여있었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운전을 아주 과격하게 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부동산이 가장 핫한 지역 중 하나라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가는 곳마다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유일하게 여유가 조금 있었던 도착 날, 한식으로 시작한 출장의 첫 끼니는 실망이 컸다. 두부를 직접 만드는 순두부집이라 두부는 정말 맛있었는데, 찌개는 조미료 맛이 강했고 LA갈비는 소스가 스미지도 않은 그런 고기가 나왔다. 고기 사이즈가 무진장 크기는 했다.


피닉스 행 비행기표를 사고 나서는 맛집 지도를 열심히 그렸다. 일주일은 있으니 한식도 먹고, 타이 음식도 먹고, 타코도 먹고, 피자도 한 번은 먹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크나큰 착각임이었음을 출장을 마무리하며 깨달았다. 물론 맛집을 제대로 못 찾은 내 탓일 수도 있겠지만 피닉스는 멕시칸으로 시작해서 멕시칸으로 마무리하고 비행기를 타고 나와야 하는 곳이다.


사무실에 일주일 동안 일할 자리를 세팅하고 있는데 어딘가 익숙한 얼굴을 마주쳤다. 그가 누구인지 바로 기억이 나지는 않았지만 알고 보니 2년 전 이맘때쯤 오하이오 워크샵에서 만났던 피닉스에 산다던 동료였다. 심지어 그때도 회사에서 주는 밥이 맘에 안 든다면서 스시집을 찾아가 밥을 같이 먹은 사이였고 알고 보니 메신저로 대화도 했었던 친구였다. 그가 메신저로 얼마나 있냐, 식당 추천이 필요하냐고 묻길래 옳다구나 하고 그렇다 했더니, 자기한테 general list for white people 이 있는데 아시안인 나에게 그 리스트를 줄 수는 없다며 아시안인 나에게 맞춘 리스트를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ㅋㅋ


<텍스멕스 스타일의 Beef and Shrimp Fajita>


아리조나는 텍사스 다음으로 멕시코와 가장 넓게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로 출장 전부터 피닉스에서 멕시칸 음식을 먹을 생각에 매우 들떠있었다. 난 멕시칸 음식을 아주 좋아하는데 워싱턴은 지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멕시코와는 너무 먼 곳이어서 맛있는 멕시칸 음식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다.


사실 멕시칸 음식도 여러 지방의 종류의 것이 있고 스타일이 있는데 알고 보니 나는 텍사스에서 접해왔던 텍스 멕스 스타일의 식당을 찾고 있었다. 텍스 멕스는 마치 미국인들이 배달음식으로 많이 시키는 미국화된 중국음식 같은 "미국화된 멕시칸" 음식으로 "텍사스 스타일"이라 막상 피닉스에서는 메인 멕시칸 음식 스타일이 아니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에게 싯다운 멕시칸 레스토랑을 찾고 있다 했더니, 피닉스에서는 텍스 멕스를 먹는 것이 아니라 타케리아를 가는 거라고 어이없다는 식으로 답을 했는데 그의 말이 맞았다. 역시 로칼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래도 회사 주변에는 찐 멕시칸 음식점이 없어서 결과적으로 비쥬얼이 훌륭했던 텍스 멕스 파히따를 한번 먹긴 했는데, 타케리아에서 타코를 먹고 미쳐있던 나를 만족시키기엔 택도 없었다.


Ta Carbon



대망의 타케리아 방문. 피닉스에 있는 동안 두 타케리아를 갔다. 첫 번째로 간 곳은 Ta Carbon. 여기는 예전에 워크샵에서 만났던 직원과 히스패닉 직원이 추천해 준 곳이다. 분위기부터 메뉴까지 찐 멕시코를 연상시킨다. Viva México! 7년 전 갔던 멕시코 시티를 연상시키는 캄페챠노, 카베쨔, 렝구아 부위도 팔았다. 그때 먹었던 메뉴들이 생각나서 곱창 타코를 하나 시키고, 카베쨔(소 뽈살, 머리 고기) 타코, 캄페챠노(소 살코기랑 곱창 합친 거) 플레이트를 시켜서 멕시칸 콬 한 병과 함께 22불의 삐에스타를 제대로 즐겼다. 약간 아쉬웠던 건 플레이트를 파이따 스타일로 주문하면 양파와 피망만 더 넣어서 볶아주는 건 줄 알았는데 베이컨이 같이 들어가 있어서 가공육 냄새가 나는 게 약간 아쉬웠다. 소 머릿고기 카베쨔 타코도 딱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곱창 타코는 너무 깔끔하게 맛있어서 게눈 감추듯 먹었다. 리프라이드 빈은 타코 보이즈보다 따 까르봉것이 더 깔끔하고 담백해서 맛있었다. 또 하나의 감동 포인트는 할라피뇨 통구이. 무지 맵긴 했지만 아주 잘 구워진 할라피뇨를 갖다 먹을 수 있도록 꺼내놓은 것도 너무 좋았다. 살사, 컨디먼트 바는 말해 뭐해.


Taco Boys


두 번째는 Taco boys. 피닉스 살던 친구가 추천을 해준 집이었다. 사실 타 까르봉 가기 전날인가, 친구와 별로 맛이 없던 태국 음식점에 가서 배불리 먹고 회사 근처에 먹을 게 없어 보이길래 내일 점심으로 뭐 하나 사가야지, 하고 Taco Boys를 잠깐 들러 곱창 플레이트를 하나 주문 했는데 법카가 10번을 긁어도 긁히지 않는 것이었다. 캐쉬어가 그냥 음식을 가져가라고 했다. 여기서부터 타코 보이즈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어쨌든 멀쩡히 밥을 먹고 들어와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저녁 10시에 곱창 야채 볶음을 퍼먹기 시작했는데 한 입만 먹으려고 했던 것이 정말 신선하고 맛있어서 거의 1/3을 그 자리에서 뚝딱 했다. 여기는 멕시코 시티의 곱창 타코집이 생각나는 맛이었다. 심지어 더 깨끗하고 맛있는 느낌. 타 까르봉의 빈이 간만 살짝 되어있는 빈이라면, 타코 보이즈의 빈은 시즈닝이 더 강해서 빈만 놓고 따지자면 타 까르봉이 더 좋았는데, 여기 파히따엔 베이컨이 안 들어있어서 곱창 파이따는 타코보이즈의 압승이었다.



시애틀에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 애기이웃친구가 있는데 애기이웃친구의 언니가 피닉스에서 살고 있어서 몇 끼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애기 언니가 피닉스에 이연복 셰프의 제자인 최형식 셰프가 하는 파인 다이닝 스타일 중식집, 진지아가 너무 맛있대서 같이 갔었는데 미국에서 먹어본 어쩌면 한국에서 먹어본 중식 포함 역대급으로 맛있는 중국집이었다. 칠리 새우는 그냥 그랬는데 탕수육이 레전드였다. 탕수육, 짜장면, 짬뽕 모두 한국에서도 맛보기 힘든 수준의 훌륭한 완성도로 짜장면도 매우 깔끔하게 맛있었고 짬뽕도 너무 맛있어서 감동 그 자체였다. 군더더기 하나 없고 기본에 매우 충실한, 재방문 의사 100프로의 너무나 맛있는 식사였다. 가격이 싼 편은 아니었지만.


타코를 한번 더 먹지 않고 피닉스를 떠나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짜장면을 먹고 친구들과 타코 보이즈를 또 갔다. 피닉스에 같이 오지 못한 바깥양반에게 3시간 비행기로 멕시칸 음식을 배달해 주기 위함이었다. 소고기 플라또를 한 개, 곱창 플라또를 한 개, 아사도 부리또를 한 개, 소스들까지 잔뜩 싸들고 살림꾼 애기언니의 도움을 받아 스티로폼 포장을 버리고 플라스틱 통에 옮겨 담아 인슐레이티드 백에 야무지게 재포장을 했다. 자리가 조금 남길래 집에 가는 길에 타코 보이즈를 다시 들러 알 파스토(돼지고기) 부리또를 하나 더 주문했는데 캐쉬어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면서 "I've got you!" 라며, 두 명이 먹어도 배부를 양의 부리또를 돈을 받지 않고 건네어주었다. 시애틀에 모셔온 타코 보이즈의 음식으로 오빠랑 나는 일주일이 더 행복했다. 아사다 부리또도, 알 파스또 부리또도, 뜨리빠도, 똘띠아도, 살사와 소스들도 넘나 맛있었다.


피닉스의 재방문을 다짐했다. 타코 보이즈에 돌아가서 다정한 사람들에게, 훌륭한 음식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날씨가 좋은 가을, 아리조나의 멋진 협곡 지형을 만나기 위해. 회사에서 또 출장을 보내주면 매우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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