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미술관의 인상주의 작품들
지난번 시카고를 왔을 때 시카고 미술관을 가려고 했으나 자유시간이 있던 날이 미술관이 닫는 날이라 눈물을 머금고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아니고서야 내 마음속 미국 최고의 콜렉션을 자랑하는 미술관 으아아 뉴욕 가고 싶다. 시카고 미술관을 오기 위해 시카고를 온다고 해도 과언이지 않은 그런 곳. 시카고를 오게 될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하루를 연장해서라도 들르는 곳.
시카고를 베이스로 활동했던 아트딜러들이 인상주의 작품을 아주 열심히 사들이는 바람에, 미국에서 인상주의 작품이 가장 많은 미술관이다. 특히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3층이나 되는 미술관에, 카예보트 특별 전시까지 하고 하고 있었었는데 오픈런을 해서 4시간이나 보냈지만 동양관, 이집트관, 중세화, 모던관은 채 보지도 못하고 나왔다.
미술관 정면으로 입장해 2층으로 올라가면 바로 인상주의 작품들이 펼쳐진다. 르누아르부터 시작한다. 고흐만큼 남색을 잘 쓰는 화가가 아닐까 싶은 르누아르. 두 화가 모두 파~랗지만 더 따뜻함을 주는 쪽은 이쪽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유명한 그림이 두 개나 있어? 싶은 보트탄 후에 런치를 먹는 사람들 작과 사실은 자매가 아니라지만 two sisters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이 코너에 나란히 걸려있다.
르누아르는 인물화가 참 몽글몽글하게 예쁘지만, 정물화도 참 몽글몽글하게 참 예쁘다. 정물화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빠리에서 르누아르 복숭아 그림이 참 토실토실 탐스럽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 꽃 그림도 너무 예쁘다. 르누아르는 정물화를 그림에 있어 훨씬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느꼈다고 한다. 아무래도 모델을 그리는데는 사람 간의 케미스트리라던가, 긴장감, 그리고 살아있는 것에서 오는 예상치 못함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테니. 르누아르 작에서는 이 보트탄 후 런치를 먹는 사람들과 꽃 정물화가 제일 좋았다.
모네가 선택했을 주제 같다고 생각했던 르누아르의 거친 파도 그림. 모네가 지중해 휴양을 가서 그린 절벽과 바다 그림들을 여기저기서 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모네스럽네, 싶었는데 르누아르가 잘 쓰는 남색과 부들부들한 브러쉬 스트로크가 이것은 모네가 아니라 르누아르임을 보여준다.
인상주의 메인 방에서 방 하나를 더 들어가면 모네 작품만을 잔뜩 모아놓은 방이 있지만 메인 방에도 모네의 그림들이 몇 점 걸려있다. 오르세에서 비슷한 기차역 그림을 봤던 것 같다.
이 기차역 작품은 이후 나올 부유한 예술가 친구였던 카예보트가 모네가 이 지역에서 머물며 기차역 그림 12 캔버스나 그릴 수 있도록 동네 아파트 렌트를 하는 것을 스폰서 해주었다고 한다.
모네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중 네덜란드에서 셀프로 도피를 해 프랑스로 돌아와 파리에서 12km쯤 외곽에 있는 알젠토이라는 마을에 터전을 잡는데, 알젠토이 역에 가까이 살았던 것으로 보아, 파리에 있는 본인의 스튜디오로 출퇴근이 용이하도록 전략적으로 위치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곳에서 7년간 지내며 180점의 작품을 완성하는데 특히 이 기간엔 그의 아트 딜러 폴 듀랑드 루엘의 서포트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이 시기에 주로 그렸던 강변 산책길, 보트, 들판을 그렸는데, 왼쪽 작품은 본인이 사는 집의 정원에, 결혼한 부인과 아들이 등장하는 희귀한 작품이다.
1889년 로뎅과 함께 전시회를 열고 모네는 일 년간 작품활동을 쉬며 마네의 작품, 올림피아를 마네의 부인에게서 다시 사들여 프랑스 정부에 헌납하려는 노력에 전념한다. 그리고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다른 날씨와 시간 조건에서 시리즈물을 창작한다. 대표적인 주제가 파피필드, 해이스택 등인데 이런 이유로 같은 양귀비들판 그림이 4-5점 정도가 전 세계에 퍼져있다. 멀리서 전체를 보면 너무나 선명한 양귀비꽃이지만 그림을 확대해서 봤을 때 이것이 무엇인지 형체를 전혀 알아볼 수 없다는 점은 너무나 흥미롭다. 시카고 모네 작품들 중에서 제일 좋았어서, 많은 시간을 서성였다.
모네의 짚더미 시리즈들. 파피필드만큼 내 눈에 예뻐 보이진 않지만 시카고 미술관에서 소유한 작품의 수가 어마어마하다. 기억나는 것만 최소 6개. 한쪽면이 짚풀더미로 뒤덮여있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다른 계절에, 다른 시간에 계속해서 빛을 관찰하며 작품을 만들어낸 인내와 열정과 끈기가 대단하다.
센강의 물안개를 그리겠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발상인가 싶다. 지나가는 찰나의 빛과 안개를 그려낸다는 것, 그리고 완벽하게 해낸다는 것. 브러쉬 스트로크들 사이에 경계들을 사라지게 하여 아른아른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모네가 한때 런던에서 머무르며 그렸던 아른아른한 국회의사당과 워털루 브리지를 배경으로 모네 방에는 로뎅의 "영원한 봄날"이라는 키스를 나누는 커플의 조각상이 있다. 로뎅의 예쁜 조각들을 보면 늘 생각하는 거지만 이 아름다운 몸짓의 작은 조각상은 하나 꼭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인간의 곡선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고흐의 방으로 이동한다. 고흐는 자신의 베드룸 그림에 애정이 꽤 많았다고 하는데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고흐는 꼬불꼬불한 자연 풍경화나 자화상이 마음에 더 와닿는 듯하다. 베드룸 안에 본인의 초상화도 있고, 한건 매우 귀여운 디테일이라고 생각한다.
베드룸 왼쪽으로 위치해 있는 이 자화상은 청록색과 오렌지, 빨간색의 조합이 매우 인상적이다. 흔하게 본 적 없는 색조합이라 더 그런 듯한데, 어둑한 느낌을 주지만 조화롭게 느껴진다. 그의 행복하지 못한 표정에서 볼 수 있듯 고흐는 이 시기에 계속해서 본인의 적성을 찾아 헤매며 우울증을 앓는데, 적색으로 표현된 그는, 청색의 배경이 그의 우울감을 한층 대비한다.
자화상을 오랜 시간 조용하게 바라보고 싶다면 주중에 오픈런을 해서 (오픈런해도 사람이 너무 많지만) 바로 고흐의 방으로 달리는 걸 추천한다. 서양화계의 대표 작가인 만큼,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방이 너무 붐비기 때문에 조용한 감상이 어려울 수 있다.
깊은 고뇌에 빠져있는 것 같은 무슈 고흐, 본인이 사는 동안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행복한 시간들이 있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천재적인 그를 배출한 네덜란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뮤지엄, 오테를로의 크뢸러 뮐러 미술관을 5년 안에 갈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예술가들의 유토피아를 만들기 원했던 그가 1888년 그린 시인의 정원이라는 작품이다. 그를 조인하기 위해 아를로 이사 올 고갱의 방에 선물하기 위해 그렸다고 한다. 자화상 말고는 이 작품이 그렇게 좋았다. 노란색 하늘이라니.
시인의 정원이 볼드한 브러쉬 스트로크를 자랑했다면, 봄날의 낚시 작은 조금 더 짧게 처리된 붓터치를 보여준다. 미술관은 고흐가 폴 시냑과 조지 쇠라과 시간을 보내며 그들이 사용했던 점묘 기법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이때 모던 빠휘를 그린 카예보트의 특별전을 하고 있대서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하고 가봤는데 카예보트를 돌기 시작하고는 급격히 집중력과 체력이 떨어져서 힘들었다. 평상시엔 일반 전시에 걸려있지만 이때는 특별 전시관에 따로 걸려있었는데 시카고의 간판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카예보트의 비 오는 파리의 거리.
부유하게 자란 이 분은 고흐나 모네처럼 파리의 근교에서 자연환경을 그리기보다는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들과 도시의 풍경을 많이 그렸다. 그가 좋아했던 주제로는 로잉하는 남자들 (부르주아들의 삶), 일하는 남자들, 뭐 이런 것이 있었는데 나는 오히려 흐리흐리하게 그려놨던 모던 파리의 거리의 그림들이 더 좋았다.
미시간으로 출장을 한 달을 나가있는 바람에, 두 주말을 시카고에서 보내게 되면서 이틀 온종일을 시카고 미술관에서만 놀 수 있어서 미술관과 작품들이 더욱 또렷한 기억으로 남았다. 두 번째 주말은 괜히 시카고왔네, 그냥 미시간에 있을걸,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언제 또 이렇게 시카고 미술관을 기억에 새길 수 있도록 연달아 올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복잡한 마음이 드는 두 번째 출장의 주말이었다.
<credit to: Art Institue of Chic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