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이경 Aug 22. 2019

나는 엄마 밥을 먹는 게 불편하다

엄마는 내게 밥은 가족 서열 순으로 퍼주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아빠, 큰오빠, 작은오빠, 그리고 나 순으로 밥을 푼다. 왜 엄마가 마지막이냐고 묻는 내게 엄마는 밥 푸는 사람 거는 마지막이라고 말해준다.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항상 밥을 푸는 사람은 엄마 아니면 나였는데, 나는 서열대로 밥을 퍼서 준다는 말이 내내 거슬렸다. 우리나라는 학교, 회사, 가정 같은 사회의 모든 조직이 기본적으로 군대 조직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고 하는데 어릴 때에 나는 본능적으로 그런 문화가 거슬렸던 것 같다.



    남지 않게 밥을 맞춰하기란 어렵다. 엄마는 자기 밥을 풀 차례가 되면 압력밥솥의 남은 밥은 다른 식구들의 여분으로 놔두고 자신은 그전 끼니에 남겨두었던, 뚜껑을 덮어 부엌 한편에 놔뒀던 밥공기를 챙겨 자신의 자리에 놓았다. 



    찬밥.

    나는 고양이 혀와 고양이 입천장을 가졌다. 어릴 땐 더더욱 뜨거운 걸 무지하게도 먹지 못했다. 찬밥은 그런 내게 딱 맞았다. 오히려 냉장고나 냉동고에 들어가지 않은 찬밥은 꼬들 해져 더 맛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절대 내게 찬밥을 넘기지 않았다. 찬밥을 가지고 식탁에서 엄마와 나는 매번 실랑이를 벌였다. 아빠와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항상 그 실랑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들처럼 엄마가 차려놓은 밥상에 코를 박고 있다. 



    실랑이가 끝나도 엄마는 자기 자리에 바로 앉지 않고 무언가 계속 바쁘다. 요리하느라 벌여놓은 것들을 정리하고, 식구들 국이 식지는 않았나 뜨거운 국물을 다시 부어주고, 부족한 반찬을 채워 넣는다. 마치 미국 영화에서 본 집사 같다. 자신은 식사하지 않고 주인댁들이 식사하는 뒤에 서서 필요한 걸 가져다주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나는 항상 불편했다. 그리고 그걸 나만 불편해하는 상황이 더 불편했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사는 내내 불편한 게 참 많았다. 내가 불편해하는 것을 공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불편한 마음은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참 많았는데, 그런 내 마음을 들은 친구들은 다들 갸우뚱해했다.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니. 요즘, 불편해하는 사람들 목소리가 커지는 게 반갑다. 그것 봐, 나만 느낀 거 아니잖아.







    얼마 전 복날이라고 엄마가 집으로 식구들을 불렀다. 굳이 커다란 닭을 여섯 마리 큰 통에 넣어 팔팔 삶았다. 이제 엄마에겐 남편보다 자식보다 손주들이 먼저다. 아빠한테 애들 잘 먹게 완전히 푹 익힐 거라고 공지하고 이 더운 날 뜨거운 가스 불 앞을 지킨다. 



    거실에 큰 상을 두 개 붙이고 다 같이 앉아 닭을 뜯는다. 아이들 그릇에 닭 여섯 마리의 닭다리 열두 개가 수북이 모인다. 삼계탕 안에 들어있던 찹쌀밥도 그득그득 퍼준다. 아이들은 닭 몸 안에서 밥이 나왔다고 신기해하며 잘도 먹는다. 엄마는 그렇게 잘 먹고 있는 아이들 모습을 볼 틈이 없다. 닭이 부족할까 계속 내오고, 식으면 맛없다고 식구들 국을 덜어주고, 마저 반찬을 내오고 정신이 없다. 아빠가 그 큰 닭 반 마리를 먹는 동안 엄마는 내내 부엌과 거실 사이를 종종거린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엄마를 돕는다고 하지만 다 끝났나 싶으면 또다시 부엌으로 가는 엄마를 잡을 수가 없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도 아들들도 사위도 며느리도 아빠도 열심히도 먹는다. 나는 여전한 엄마의 모습에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친정에서 엄마 밥을 먹는 게 불편하다. 그냥 나만 가서 먹고 오면 좋다. 엄마와 둘이면 큰 그릇에 남은 반찬, 남은 밥 넣어 수다로 비벼 먹으니까. 밥 준비하는 시간도 먹는 시간도 즐겁다. 하지만 다른 식구들과 함께 가면 엄마는 너무 바쁘다. 가족들이 왔다 가면 엄마는 드러눕는다. 



    어디에나 있는 모습이다. 우리 엄마만의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게 엄마들의 낙인 거라고, 못하게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우리 엄마는, 엄마들은 말한다. 식구들 입에 들어가는 걸 보면 좋지만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라고. 온다고 하면 반은 좋고 반은 싫다고. 엄마는 그렇게 내게 속 이야기를 한다. 저녁도 먹고 간다고 하면 사실 힘들다고.



    삼계탕을 먹은 날도, 눈치 없는 아빠와 오빠들은 내게 저녁도 먹고 가라고 잡는다. 작은오빠에게 엄마 힘들어서 안된다고 하니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니야, 저녁은 간단하게 먹어. 엄마도 너희 더 있으면 좋아하지. 








    하루 중 엄마를 떠올리는 순간은 대개 내가 엄마의 노동을 하는 순간이다. 

    매일 밤 늦는 남편과 아이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주말이 되면 나는 방금 한 따뜻한 밥과 반찬을 먹이고 싶어 아이와 남편을 먼저 식탁에 앉힌다. 아이와 남편 밥을 차려주고 나는 나머지 반찬을 서둘러 만들고 부엌을 정리하고 그제야 내 밥을 퍼서 자리에 앉는다. 



    그러고 나면 문득 엄마가 떠오른다. 불편했던 그 마음을 괜히 아이에게 풀어놓는다. 너, 엄마가 이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돼. 원래 식사는 다 같이 앉아서 하는 거야. 일곱 살짜리는 알아듣는 건지 아닌 건지 으응, 대답한다. 아이에게 하는 말은 사실 이제 내 이름보다 '엄마'라는 호칭이 익숙해진 내게 하는 당부이다.








이전 07화 엄마의 어머니, 오래된 이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