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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하프타임

동물들이 전하는 말

by Silverback

환멸과 증오의 시대이다.

말이 없는 사물은 내가 말을 건넨 만큼만 반응하고 쓰이지만,

인간은,

내가 말을 건네기도 전에 나의 속을 파헤치고,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결론을 내린다.

하물며,

말한 그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본 것 그대로 믿어지지도 않는 것은

인간이 아니면 지구상의 그 어떠한 생명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속고 속이며,

빼앗고 빼앗기는 행위에 구토를 느낀다


어느 시절부터 사람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다

자본과 성과위주의 사회가 인간의 마음을

불안하고 다급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측정과 계량화가 불가능한 인간의 인생서사라는 것이

수학과 경제학의 논리에 의해서 데이터화되어간다

어쩌면 수십 년 내로

인간은 파도의 움직임을 정확히 데이터화하여 예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야기는 사라지고 수치만 남는다.

인간의 언어에는 텍스트 대신 숫자만 남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자본화 시대 속에서

나는 어떻게든 인간으로 남으려고 발버둥 쳐본다

칼로 연필을 깎고 잉크로 일기를 쓴다

폰을 집에 두고 아내와 커피를 마시러 나가거나

길가를 걸으면서 오래 자리 잡은 나무의 수피를 쓰다듬는다

그리하면

종일 걸었던 발바닥의 온기가 허벅지와 등을 타고 올라와서

쿵쾅거리는 심장리듬에 맞추어 목덜미 사이로 체온을 뿜어낸다

거기에는 냄새가 있고

불규칙함이 있고

실수가 있고

후회가 있고

실패도 있었고

웃음도 있었고

행복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미련한 인간인지라

이불 속에 드러누워 잠을 청하기 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호기심에 이끌리는

종속적인 삶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그나마 나의 나약함과

소심한 욕구를 외면하고자 하는 욕망은

마치 진흙 속 진주가 모습을 드러내듯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를 전해주는 인생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몇 년째 나의 SNS계정에는

동물들의 노스토스로 인한 즐겨찾기가 가득 찼다


그것은 한결같이 말해준다

감사와 회귀, 그리고 신뢰와 사랑이다.

그것들은 모두 존재와 존재 사이에 도움을 주고받는 사건과 관련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이겠지만,

내가 모아둔 포스팅들 속의 동물들은

예외 없이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호두를 찾으러 가다가 철조망에 끼인 다람쥐

누군가가 쳐놓은 덫에 걸린 여우

먹이를 구하지 못해서 매일 같은 곳을 어슬렁대는 늑대

구덩이에 빠져 반나절 이상 빠져나오지 못한 사슴

두꺼운 거미줄에 걸렸던 갸날픈 새

심지어 그물쓰레기에 부리가 얽혀 갑판 위로 튀어 오른 돌고래 등...


선량한 인간을 만나 도움을 얻어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동물들은

그 어떠한 예외 없이 그다음 날이나 어쩌면 그 다다음날이면

자신을 구해준 사람을 찾아 되돌아왔다


고통과 공포 속에 몸부림치는 동물의 표정을 오랫동안 보아왔던 사람이라면

그 무표정의 비극성을 알 것이다

인간의 말을 배우지 못한 동물이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 지르는 침묵의 비명.

육체성의 절대적 위엄과 야생성의 신성한 도약력 갖춘 이 녀석들은

그 어떠한 호들갑이나 허세 없이

오로지 자신의 신체를 구속한 부자연의 해소를 위해 몸부림친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연'이라는 무대는 얼마나 고요하고 직접적인가.


냄새가 되었든 주파수가 되었든 혹은 어떠한 소리가 되었든

다시 자유를 찾은 동물들은

자신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원인을 찾아 회귀한다.

그들은 끝내 자신을 구해준 인간과 조우하고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인간과 동물의 경계선을 허문 채

신뢰와 사랑을 위해 기꺼이 인간의 안뜰로 발을 들여놓는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가 단단하게 보호되었을 때

그들은 자신의 식구와 친척, 친구들을 데리고 집단으로 다시 재방문한다

그것이 자연의 룰인 것 같다.


이러한 장면을 보는 것은 감동적이다

노스토스의 끝에서 이루어지는 환영식 속에서

그간의 고난을 보상해 주듯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하는 고요한 동물들이

떼 지어 은인의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못해 장엄하기까지 하다


이것은 어쩌면

지금 우리 인간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

계산과 속셈으로 관계를 파악하고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내일과 미래를 염려하며

필요하지도 않은 자연의 혜택을 가로채 비축해 두는

욕망과 공포의 인생사를 되돌아보게 하고

온갖 소란과 조급함 속에서 기품 있게 자리 잡고 있는

믿음과 사랑의 단단한 뿌리를 발견하게 해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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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reel/DQFFrPXiegO/?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NTc4MTIwNjQ2YQ==



식물과 동물은 우리가 옛날모습, 앞으로 되어야 할 모습이다. 우리는 그들처럼 자연이었으니, 우리의 문화가 우리를 이성과 자유의 길을 통해 자연으로 도로 데려가는 것이 옳다. 식물과 동물은 우리에게 영원히 가장 소중한 것으로 남아있는, 우리 잃어버린 어린시절을 나타내는 것이기도하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특별한 우수로 가득 채운다. / 프리드리히 실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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