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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린치 David Lynch

by Silverback

혼란스러웠던 학창 시절을 버티게 해 준 유일한 정신적 멘토.

어둠 속 잠재의식과 창조적 시각에 대한 지평을 열어준 예술가.

인생을 통틀어 단 한 명의 영웅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의 방 가장 높은 선반 위에 단연코 데이빗 린치라는 트로피가 반짝이고 있다.


언젠가 내가 나이가 들어도 그를 끝까지 존경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여부와 또한 그가 나이 들어 움직이지 못할 처지가 될 때 그가 여전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지 궁금해하던 시간은 나에게 그 어떠한 자비도 허락하지 않은 채 올해 초 그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과 함께 시간의 덧없음과 그러한 물살 속에서도 고요한 명상과 차분한 언어로 근사한 기품을 잃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길을 지킨 채 그 위에서 영생했다는 위안만을 건네준다. 하지만 그뿐일까.


타인의 길에서 사는 것은 죽는 것이고

자신의 길에서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그는 결국 살아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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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아마도 로스트 하이웨이였을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은 못하겠지만, 그 시점은 이레이져헤드에 대한 소개를 접한 것과, 람슈타인의 음악으로 충격을 받은 시기, 그리고 로스트하이웨이의 국내 개봉의 시기와 맞물려 있었을지도 모른다. 3개의 접점이 함께 폭발했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원천적으로 혼란스럽고 어두웠던 자아의 내면과 그곳으로 연결되는, 그야말로 매일매일 반복되는 꿈 - 그것도 유난히 악몽에 많이 시달리고는 했던 유약한 의식 속 통로의 비밀을 발견한 것만 같았고, 그 어떠한 인간의 언어로도 표현하거나 묘사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통역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전달될 수 있다는 기쁨에 그 이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그의 그늘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크고 앙상한 나무 아래에서 유일한 위안을 얻었고 그 토양에 뿌리를 내려 자양분을 공급받으면서 정신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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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나는 그를 심도 있게 분석했고, 의욕적인 인터뷰를 기획하고 있었다. 물론 무모한 시도였지만, 그 노력이 그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어떠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인생과 가치관에 귀를 기울이고 그 서사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읽히지 않는 사람이었고, 대신 보이거나 혹은 감지되는(특히 청각적으로) 부류였던 것 같다.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때 눈보다 귀와 영혼을 예민하게 열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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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난해함과 독특한 악몽구조의 공간성에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이라면, 엘리펀트맨이라는 작품의 기저에서 그 단단한 서사의 체력과 표현의 완성도를 상기해보아야 한다. 67년부터 74년까지 진행되는 단편 작품들에서 그의 어두운 표현기법과 그로테스크 미학이 파편화되어 수면 위로 떠오른다. 77년 이레이져헤드라는 최초의 장편에서는 앞으로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불안과 우울, 뒤틀림과 순환(탄생과 소멸의 이어짐) 구조의 체계가 자리 잡힌다. 그리고 80년 완성된 최초의 상업영화인 엘리펀트맨에서 실존인물의 이야기와 데이빗 린치 특유의 기형적 세계관을 혼합함으로써 대중성과 독창성이라는 두 마리 대어를 낚는다. 마침내 86년 완성된 블루벨벳에서 미국 중산층 가정의 분위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일상들의 외형적 쾌락과 내면의 악마적 지층 사이를 파고들어, 모순과 기괴함의 완숙미를 폭발시키게 된다.


장소에 대한 느낌은 영화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화를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모든 스토리는 각각 나름의 세계와 느낌과 분위기를 갖고 있다. 영화작가는 이 모든 작은 디테일을 한데 모아 장소에 대한 느낌을 창조하고자 한다. (Catching the Big 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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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마치 11세에 완벽한 토르소의 소묘를 완성해버린 자유로운 피카소가 되어, 그 어떠한 타협이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독창적 방식으로 초현실주의 스타일의 영화를 만드는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컬트의 제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어쩌면 사람들은 온갖 클리쉐와 영웅주의적 포장으로 뒤덮인 전통 극작품의 늪에서 빠져나와 트윈픽스 같은 분위기의 오컬트적 TV드라마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레이져헤드가 난해하다고는 하지만, 속도와 생산성만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물질만능의 시대 속에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가는 가장의 불안과 공포가 이미 인간성의 밑바닥까지 파고들어 의식을 좀먹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인생보다 더 난해한 것은 없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 블루벨벳의 화단 토양 아래에서 펼쳐지는 징그럽고 기괴한 벌레들의 살육전쟁은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수많은 정치인들과 권력가들의 암묵적 살인전쟁과 자본착취의 잔인함 앞에서 하나의 우화가 되어버린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진리로 여기는 인간의 본능은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기막힌 착종의 비주얼로 시청자를 압도한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영화인가. 당신은 매일 어떠한 꿈을 꾸는가. 그 누가 당신의 이야기를 이해해줄 수 있는가. 과연 이해란 무엇인가. 당신은 지금 꿈속에 있는가 현실 속에 있는가.


어린 시절 어느 늦은 가을밤, 집으로 되돌아 가는데 쇼쇼니 거리 건너편 어둠 속에서 뭔가 나타났어요. 뭐랄까. 기괴한 꿈을 꾸는 듯했다고나 할까. 이제껏 성인여성의 나체를 본 적이 없었는데 아름다운 여인의 흰 피부가 보였어요.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알몸이었어요. 여자 입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걸음걸이도 너무 이상했어요. 여자는 그렇게 도로 가운데로 걸어 들어왔고 내게는 큰 거인처럼 느껴졌어요. (The Art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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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린치의 작품들이 갖는 특유의 메스꺼운 질감. 뒤들린 공간. 가시처럼 표독성을 드러내는 소음들. 때로는 앙상하고 때로는 둔중하여 균형감을 잃어버린 형상들이 그만의 고유한 부조리공간 속에서 서로 엮이면서 수치화할 수 없고 측정할 수 없는 엔트로피로 사람들의 뇌를 마구 휘젓는다.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잔잔하고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뿌연 탈을 쓰고 있는 이 현실세계의 무표정함과 가식 속에서 어쩌면 더더욱 공포스럽고 기괴하면서도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낡아 빠진 건물이나 녹슨 다리를 보면, 거기서 자연과 인간이 함께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이 한 건물에 페인트칠한다고 해서 그 건물에 뭔가 마술적인 것이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건물이 서서히 낡아 간다면, 인간이 지은 것에 자연의 힘이 보태어져 아주 유기적인 것이 된다. (Catching the Big 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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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은 이제 멈추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아직도 악몽을 꾼다.

그러나 이제 악몽이 괴롭지는 않다.

단지 악몽을 통해서 다른 세계로 건너갈 수 있을 뿐이다.

그러한 세계를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이다.

어떻게 보면 나의 세계는 두 개이다.

하나는 현실공간 속의 일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의식공간 속의 악몽이다.

악몽대신 그냥 꿈이라도 해두자.

그 두 공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현실에서 경험했던 것들이 꿈속에서 현현할 때가 있고

꿈속에서 나타났던 것들이 현실에서 재현될 때가 있다.

그 어느 것도 다른 것의 층위로 포섭되지는 않는 것 같다.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기작이

꿈에서 최초로 펼쳐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는 꿈이 지배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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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갖고 천천히 그의 작품들을 하나씩 꺼내어 곱씹어본다. 차갑고 메스껍고 글컹거린다. 때로는 거칠하고 뒤로 확 제치면서도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들이댄다. 나는 반응할 필요는 없다. 그저 관조할 뿐이다. 그러면 그 세계는 나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내가 해야 할 이라고는 그냥 느끼는 것뿐이다. 눈을 감고 음미하면 그제서야 이미지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R.I.P David.





<주요 필모그래피>

1967 Six Men Getting Sick (단편)

1968 The Alphabet (단편)

1970 The Grandmother (단편)

1974 The Amputee (단편)

1977 Eraserhead (장편)

1980 The Elephant Man (장편)

1984 Dune (장편)

1986 Blue Velvet (장편)

1988 The Cowboy and the Frenchman (단편)

1990-1991 Twin Peaks Season 1, 2 (TV)

1990 Wild at Heart (장편)

1992 Twin Peaks movie (장편)

1992 On Air (TV)

1993 Hotel Room (TV)

1997 Lost Highway (장편)

1999 Straight Story (장편)

2001 Mulholland Drive (장편)

2002 Rabbits (단편)

2006 Inland Empire (장편)

2017 Twin Peaks Season 3 (TV)

2020 What did Jack do ? (단편)


<추천 국내도서>

데이빗린치의 빨간방 (Catching the Big Fish) / 그책 출판, 곽한주 옮김

꿈의 방 (room to Dream) / 그책 춡판, 윤철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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