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대지 아래로 뿌리를 내린 채
대지 위에서 하늘로 자란다
나무는
땅 위로 보이는 크기와 더불어
그 크기만큼 아래로 자란 뿌리의 길이를 합쳐야 한다
그리하여 나무는
인간이 바라보는 것 두 배의 크기를 갖는다
크기로써는 두 배의 가치를 드러내지만 사실 그것은,
땅 위와 땅 아래
양과 음
밝음과 어두움
밀어냄과 상승
버팀과 수용
따스함과 차가움
그리고,
삶과 죽음을 모두 포함한
존재론적 양태의 양면적 구조를 상징한다
인간에게 해로운 이산화탄소를 흡입하고
거꾸로 산소를 내어주며
한 겨울 벌거벗은 맨 몸으로 영하의 날씨를 견디면서
봄이 오면 말랑한 몸으로 부활한다
자신은 뜨거운 직사광선에 노출된 채
그 아래로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그렇게 따진다면 나무는
선과 악을 두 손에 든 아브락사스
두 세계가 서로 공존하면서 서로를 요구하는
길항과 성장의 자웅동체인 것
어쩌면 나무는 우리에게
서로 다른 두 가치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것
내 견해와 일치하지 않는 것
익숙해 보이지 않는 것
받아들이기 싫은 것
인정하기 어려운 것
즉,
내가 아닌 것 모두를 나의 반쪽으로 여겨야 한다는 가르침.
완성은 결합이다
결합하지 않으면 반쪽만 남는다
반쪽은 영원히 목마른 채 다른 반쪽을 갈망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얼굴을 빼꼼 내민 나무를 보고 배우라
나무는 땅 속이건 땅 위건 포기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