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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포스트잇

날개

by Silverback

어미 새는 아기 새가 어느 정도 자라면

나무둥지나 절벽에서 일부러 밀어내는 행동을 한다

아기 새는 무서워서 둥지 안에만 머무르려 하고

편안함 때문에 끝내 외부로 나가려 하지 않으니,

어미 새가 그러한 나태함을 끊어내고자

일부러 절박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무자비한 동물의 세계,

잔혹한 약육강식의 자연,

그 속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스스로의 힘뿐이기에

절벽에서 밀어서 진짜로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기 새를 살리기 위하여

일부러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하려고 하는 것.

그것은 진심 가득한 '도움'.


아기 새가 다칠까 봐

혹은 아기 새의 기분이 상할까 봐

어미 새가 푹신한 등에 업고선 날아다닌다면

아기 새는 좋아라 하겠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까르륵 재롱을 부릴 것이다.


어미 새는 그것을 보면서 기뻐라 하고

몸에 상처 하나 없이 인형같이 자라는 아기 새를 보면서

다른 새들에게 자랑도 해보고

스스로도 볼품 있는 장식품을 키운다는 생각에

뿌듯해할 것이다.


아기 새는

우리 어미 새가 이것도 해줬고 저것도 해줬다고

맨날 맨날 등을 타고 날아다닌다고

여기저기에서 자랑할 것이다.


곱상한 얼굴

이쁘장한 몸매

투명젤리 같은 발가락


아기 새는

주변의 새들이 신기하다고 내뱉는 감탄사를

칭찬으로 착각하며

그 기쁨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어미 새 또한

주변의 새들이 신기하다고 내뱉는 감탄사를

부러움으로 착각하며

그 만족의 늪에 빠져든다


아기 새가 어느덧 몸집이 커지고

혼자서도 벌레를 잘 찾아내는 능력을 가질 무렵

뱀이 나타난다거나

독수리가 와서 빙글거리면

어미새는 화들짝 놀라서 아기새를 등에 업고 또 날아간다

그리고는 안전한 곳에 내려놓는다


그때 오가는 어미 새와 아기 새의 눈빛!


모순과 실패의 경험이 전무한 존재들이,

그것은 전혀 예상해 볼 수도,

전혀 경험해 본 적도 없었다고 고백하듯이,

넘실거리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 주고받던 시선!


어쩌면 어미 새는

어릴 적 그 어미 새의 어미가

자신을 사정없이 절벽 밖으로 밀어대던 기억이 괴로워서

그리고 비행실력이 별로 좋지 않았던 자신을

위로해 주거나 토닥여주지 않았던 기억이 원망스러워

내가 새끼를 낳으면

기필코 저렇게 키우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오히려 아기 새 스스로의 힘을 키워주는 방법을 택하는 대신

어미 새 자신의 괴로운 기억을 없애기 위한 방법으로

아기 새의 고통스러운 성장과정을 외면한 것은 아닐까


아기 새를 등에 업고 날아다닌다면

아기 새가 즐거워하는 모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모습을 보는 어미 새 자신의 모습이

한꺼번에 정화되리라 무의식 중에 판단하고

의도치 않게 아기 새를 도구로 이용한 것은 아닐까


아기 새는 성장한 이후

자신이 어미 새나 다른 새의 도움 없이 날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아기 새의 원망과 증오


"왜 저에게 나는 법을 알려주지 않으셨어요?"

"왜 계속 저를 업고 날아다닌 거예요?"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지금도 계속 업고 다니셔야죠"

"내일도 업어주세요"

"모레도 없어주세요"

"평생 업고 날아주세요"

"그걸 원하신 거였잖아요"


그제서야 부랴부랴

나이 든 아기 새를 절벽에서 밀어보지만

아기 새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미 새의 날개를 부러뜨려 거꾸로 밀어버릴 태세다


"아!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무엇이 사랑인가

무엇이 도움인가

도대체 그 무엇이,

순환의 질서에 순응하면서도

건강하게 세상을 이겨내는 참 인생인가!


고민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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