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결혼하지 않고 사는 단독세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반도 오기 전부터 혼자 긴 인생을 살아야 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 고통은 바로 외로움이겠죠. 지금은 이러한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지만,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고 심각해지게 되면 언젠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다루게 되는 시점이 올 것입니다.
외로움이 개인적인 문제라면, 인구가 급작스럽게 감소할 때는 사회적 문제가 되겠지요.
그때는 이성 간에 성관계없이 자식을 낳을 수 있는 방법들이 보다 현실화될 것입니다.
기술이 발달하면 굳이 여성의 자궁을 빌리지 않아도 인공적으로 생명을 잉태하고
체내 양육할 수 있는 기술적 공간이 개발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나오게 되는 생명체는 자궁을 통해 출생되는 생명체와
과연 동일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까지 기술이 발달해 간다면, 기술은 발달해 가겠지만,
인류는 성별 구분이 없이 태어나는 무성생식까지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성관계가 필요 없으니 성별이 필요 없게 되고, 성별 구별이 없이 생식을 하고자 하면
태어나는 자녀도 성을 구분하면서 나올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자웅동체의 상태로 내려가는 것이 되고,
복잡한 세포가 필요 없어 단세포로 퇴행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필자의 상상력으로 구성한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기술 발달의 맹점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기술이 발달한다고 인간성이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기술 발달이 오히려
인간 사회에는 과거로의 회귀, 인류의 원초적 상태로의 복귀를 꿈꿀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지점에서 필자의 종교적 견해를 떠나 진화론자들의 견해를 참조할 필요가 대두됩니다.
지구와 다른 별들의 차이는 단세포와 다세포의 차이에 있습니다.
다른 별들은 단세포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생명체가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구에서는 어느 시점에 단세포 안에 다른 세포가 들어와 미토콘드리아를 형성하는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화론자들은 다세포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 다세포가 인류의 탄생을 가져오는 진화론적 발달을 설명합니다.
이러한 합리적 설명에는 필자도 동의를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발달>의 개념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발달>의 반대는 바로 <퇴행>입니다.
최근 약 40 년 동안 현대인들이 이룩한 과학 기술의 발달은 과거의 4000년보다 더 획기적이며,
속도가 갈수록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존의 문제에서는 지나친 기술 발달이
퇴행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까지 우리는 수용을 해야 합니다.
과학기술은 한없이 발달하고자 이제 겨우 기지개를 켰는데, 인류는 생명을 향한 욕망,
상호 관계를 향한 욕망이 줄어들고 있다는 희비의 쌍곡선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 기술문명이 가져온 풍요로움의 저주입니다.
단세포가 다세포로 발달하면서 관계성이 생기고 그리하여 보다 우수한 생명체를 생산하고자
세포 기능이 다양화되면서 생식세포를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진화론자들은 말합니다.
그리하여 암컷과 수컷이 생겨난 것이고, 남자와 여자의 구분되면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필자는 기독교 성직자로서 진화론을 믿지 않지만,
창세기 1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의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여깁니다.
어느 정도라 함은, 진화론자들의 합리적 설명은 창조의 과정을 대변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 있다고 여기지만
충분하지 못해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입니다.
오늘날 한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은, 말하자면 유성생식으로
남자와 여자의 생식세포 유전자가 결합되면서 엄마의 자궁이라는 환경 안에서 자라게 됩니다.
남녀의 결합을 통한 자손번식은 다양하고 우수한 유전자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자식을 많이 낳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많을수록 유전자적 다양성이 전개되어 어떤 전염병이나 유독한 환경이 되어
위기상황에 이르게 될 때에도 그런 환경에 면역력을 키워낼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자식이 살아남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자웅동체적 무성생식으로 수많은 생명을 태어나게 했다면, 여기에는 유전자적 다양성이 없게 됩니다.
그런 동일한 조건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에게 신종 바이러스 같은 것으로
오염이 되는 경우에 하나의 생명체가 죽게 되면 같은 조건에서
태어난 나머지 생명체도 똑같이 죽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만일 독신자가 많아지면서 성관계없이 시험관이나 다른 기술로 아기를 태어나게 했을 때,
그렇게 태어나는 아이는 유전자적 다양성을 전개해 나가지는 못하게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꼭 무성생식은 아니라 하더라도 유전자가 다양성을 접고 단순해지는 퇴행의 일로에 접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개인은 유전자적 면역력이 약화되고 정서적으로는 개별화가 어렵게 되면서
집단적, 전체주의적 성향을 더 크게 띠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왜 연애를 하고 결혼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면서 가정을 꾸려야 하는지 이제 이해가 되셨죠?
이러한 내용을 선이해로 가져와서, 지금부터는 공황장애, 공포증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공황장애는 누구에게 많이 걸릴까요? 각 개인일 수도 있지만, 연예인들 사이에 잘 걸리는 증상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김구라, 이경규, 정찬우, 임미숙, 정형돈 씨 등의 공황장애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꼭 연예인들만 걸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필자가 상담하는 내담자들 중에도 여러 명의 공황장애 환자가 있었습니다.
공황장애는 이렇게 이해하면 간단합니다. 공황장애는 한 개인으로 살다가
갑자기 개인의 존재 규모에서 벗어나서 집단적 존재가 되었을 때 발생합니다.
한 생명이 태어날 때, 그는 남녀의 생식활동에 의해 태중에서 우주적 존재로 생명을 얻었다가
태를 벗어나 엄마의 품에 안겼다가 그 품 안에서 한 사람의 지구인이 되는 과정을 겪습니다.
우주적 존재라고 하니까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거창한 것이 사실입니다.
어느 양자물리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이 엄마의 태중에서 잉태될 때,
필수 화학물, 즉 탄소, 산소, 질소, 수소 등은 엄마에게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천지가 창조될 때(빅뱅이 일어날 때), 1초도 안 되는 매우 짧은 시간에 형성되었던
그 요소들을 가지고 와서 자신의 몸을 구성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몸이 가진 물질의 역사는 136억 년이 되는 셈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거창한 우주적 존재로 태어나는 겁니다.
이런 거창한 존재가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개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런 거듭남은 엄마의 품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우주적 존재였을 때는 거대한 우주의 한 부분이지만,
한 개인으로 거듭나면 그 사람은 자신 안에 하나의 우주를 담아내는 <소우주>가 되는 것입니다.
소우주를 품었지만 한 개인의 존재 규모로 살아갈 때 자신의 고유한 존재 욕망을 가지고
자기 발달을 성취하며 삶을 영위해 가게 됩니다. 그것을 정신분석학적 용어로 바꾸면,
우주적 존재였을 때는 집단적 존재였다가 엄마의 품을 통해 개별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집단적 존재였기 때문에 엄마의 품을 통해 개별적 존재로 살아가다가도
자꾸만 집단적 존재로 살고자 하는 복원력을 갖추려고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특히 연예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투사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중에 집단적 존재가 되어서
그것을 무한히 즐기려다가 개별적 존재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연예활동을 할 때는 집단적 투사를 받다가 집단 활동을 떠나면 자신의 개인의 규모로 돌아와야 하며,
이러한 순환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집단적 존재가 될 뿐, 개인적인 존재로 돌아오지 못할 때,
그때는 바로 갑자기 원래의 우주적 존재로 환원되어 버리는 순간입니다.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 오고, 진땀이 나고, 몸이 말을 안 듣고,
마치 죽음이 눈앞에 와있는 것 같은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공황장애가 왜 이렇게 무서운가 하면, 평온한 지구에서 평화롭게 잘 살아가던 사람이
갑자기 블랙홀과 같은 우주 속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무서운가! 내 안에 우주가 있어야 하는데, 공황장애 환자는 우주의 한 부분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느껴집니까? 내 안에 우주가 들어있기 때문에 우주 속의 지구에서 사는 것이 두렵지 않은데,
내가 우주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부서져서 내 안에 있던 우주가 뛰쳐나가 버렸고,
나는 그 우주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이 되었다고 할 때, 그 우주에 의해 압도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필자의 상담실에는 공황장애 환자가 가끔 찾아옵니다. 처음에는 공황장애가 있음을 밝히지 않는 중에
상담이 진행되는데, 약 3개월 내지 5개월쯤 되면 자신이 원래 공황장애가 있어서
병원 약을 처방받아먹어 왔는데, 어느 순간 약을 먹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특별히 공황장애 치료를 따로 하지 않았어도 치료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하면, 제가 하는 분석의 핵심이 집단적 존재를
개별적 존재로 살 수 있도록 개별화시켜가는 작업을 하는 데에 있거든요.
나는 과연 집단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개별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