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과 불평등(3): 프랑스의 68혁명과 후기 구조주의

끊임없는 혁명의 프랑스

(사진 출처: pixabay. 몽생미셸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 있는 작은 바위섬이자 수도원으로, 밀물 때는 섬처럼 보이고 썰물 때는 육지와 연결되는 독특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사진 속 높은 곳에 보이는 고딕 양식의 수도원과 그 아래 작은 마을들이 몽생미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68 혁명, 모든 권위주의 타파


프랑스 68 혁명은 1968년 3월 22일 파리 낭테르대(현재 파리 10 대학) 학생들이 '여자 기숙사를 개방하라'라는 슬로건을 갖고 학내 집회를 가짐으로써 시작되었다. 남자 기숙사는 여학생이 출입할 수 있으나 여자 기숙사에 남학생 출입을 금지시키는 것은 불평등하다며 시작된 집회는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명분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한국경제, 2008, 5.3일 자) 이 이중적 규칙은 '가부장적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학생들은 사랑할 자유를 외치며 성적 억압과 사회적 위계를 비판했다. 이는 단순히 성 평등을 넘어 교육 시스템 전체의 권위적 구조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당국은 대학을 폐쇄하고 경찰을 투입해 학생을 진압했으나, 이는 오히려 시위를 파리 시내로 확산시켰다. 5월 3일 소르본 대학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이 발생하자,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는 구호아래 전국적 시위로 번졌다.

68 혁명 주도층은 '3M(Marx, Mao, Marcuse)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당시 중국에서 진행 중이던 문화 대혁명의 '권력구조 타도'와 '계속 혁명론'은 프랑스 학생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문화 대혁명은 관료주의와 기성 권위를 해체한다는 명분 아래 홍위병이 중국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기존 체제를 공격한 사건으로, 프랑스 학생들은 이를 '반권위주의 투쟁의 모델'로 재해석했다.


구조주의의 붕괴와 후기 구조주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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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혁명과 함께 드러난 구조주의의 한계

1960년대 프랑스는 구조주의가 지배적인 패러다임이었다. 구조주의는 언어, 문화, 사회를 고정된 체계로 설명하고, 남성과 여성, 이성과 감성 같은 이분법적 대립 구도에 의존했다. 그러나 1968년 5월 혁명을 기점으로 구조주의의 한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실 세계는 언어의 안정된 구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유동성과 역동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크 데리다는 1966년 『인간과학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놀이』라는 강연을 통해 “중심의 해체”를 선언했다. 그는 구조주의가 가정하는 ‘불변의 진리’ 자체를 의심했고, 의미는 결코 고정되지 않으며 텍스트는 독자의 해석에 열려 있다고 주장했다. 이 선언은 후기구조주의로 이어지는 거대한 전환의 시작이었다.


사회적 변화의 압력: 5월 혁명과 권력에 대한 의문

1968년 5월, 낭트 대학에서 시작된 혁명은 프랑스 전역에서 학생뿐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이는 단순한 사회운동이 아니라, 기성 권력과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이었다. 구조주의는 이런 급격한 사회 변화를 설명하지 못했고, 철학계에서는 체제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는 요구가 터져 나왔다.

한편, 소련의 권위주의적 체제에 실망한 프랑스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가 제공하는 경제 결정론의 틀을 넘어서려 했다. 이들은 일상의 미시적 권력관계를 분석할 새로운 이론을 필요로 했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감옥, 학교, 병원 같은 제도들이 권력 장치로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권력이 특정한 장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퍼져 있으며, 우리의 삶 구석구석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았다.


철학적 전환: 주체의 해체와 의미의 유동성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

롤랑 바르트는 1967년 『저자의 죽음』이라는 글에서 “텍스트의 의미는 저자의 의도가 아니라 독자의 해석에 달려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구조주의가 믿었던 고정된 의미 체계를 뒤집는 발언이었다. 예를 들어, 발자크의 소설 『사라진』은 독자마다 성별, 계급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저자의 권위는 더 이상 절대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분열된 주체: 데리다와 라캉의 논쟁

자크 라캉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고 말하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구조주의적으로 재해석했다. 하지만 데리다는 이마저도 비판했다. 그는 자아라는 것도 결국 언어의 효과일 뿐이며, 주체는 언어 구조에 의해 분열되고 재구성된다고 보았다. 데카르트가 말했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조차 데리다에게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설로 뒤집혔다.


이분법의 해체: 지식과 권력의 공모

푸코는 『말과 사물』을 통해 지식이 결코 중립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권력을 생산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정신병자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의학, 동성애를 ‘죄’로 낙인찍는 종교적 규범은 모두 지식과 권력이 결탁해 만들어낸 인위적인 이분법이다. 푸코는 우리가 믿어왔던 진리조차 권력의 산물임을 밝히려 했다.


후기구조주의의 유산: 탈중심화와 다원성의 확산

후기구조주의는 모든 체계가 불완전하고, 의미는 항상 미끄러지며 유동적임을 인정했다. 이 사유 방식은 다양한 사회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페미니즘은 젠더 이분법을 해체하려 했고,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에서 성별 정체성 자체가 수행적이며 고정된 것이 아님을 밝혔다. 포스트식민주의는 에드워드 사이드를 중심으로 서구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제국주의적 지식을 해체했다. 퀴어 이론은 성적 정체성의 다양성과 유동성을 수용하며 기존 규범을 넘어서는 새로운 상상력을 제시했다.


정리: 해체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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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후기구조주의는 구조주의가 지녔던 ‘과학적 객관성’ 신화를 무너뜨리고, 의미, 권력, 주체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해체하는 철학적 운동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철학적 논쟁이 아니었다. 5월 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기구조주의는 해체를 통해 모든 권위를 다시 질문하고, 새로운 자유를 열어가는 정치적 실천이었다.

진리는 없다, 오직 해석만이 있다.”라는 니체의 이 선언처럼, 후기구조주의는 오늘날에도 비판적 사유를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로 남아 있다.

프랑스인들의 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그들의 혁명은 늘 미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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