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성욕(3-2) : 중독과 생생함

우리는 왜 중독에 빠질까? 성중독, 도박중독, 알코올중독, 마약, 쇼핑, 자위 중독까지—겉으로는 각각 다르게 보이는 이 중독의 뿌리는 유아기의 ‘생생함’ 결핍에서 비롯된다. 이 글은 하인즈 코헛과 위니캇, 그리고 초기 프로이트의 이론을 토대로, 유아기의 공감 부족이 어떻게 생의 생동감을 빼앗고 중독적 행위로 이어지는지를 탐색해 본다.


‘짜릿함’이 ‘뿌듯함’으로 성숙되지 못한 채 반복될 때, 인간은 중독에 갇힌다. 중독은 단순한 나약함이 아니라, 이해받지 못한 내면의 외침이다. 그 외침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중독, 짜릿함이 뿌듯함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


중독은 단순히 의지가 약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극을 멈추지 못하는 감각의 굶주림이자, 공감받지 못한 존재가 끝없이 반복하는 외침이다. 하인즈 코헛은 인간이 원래 생생한 존재로 태어난다고 말한다. 생생함은 내면의 건강한 자기애, 주체적 에너지, 살아 있는 감정의 표현이다. 그러나 유아기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공감과 칭찬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면 이 생생함은 억압되고, 대신 짜릿한 자극을 향한 충동만 남는다. 이 글에서는 성중독, 도박중독, 마약중독, 쇼핑중독, 알코올중독의 사례를 통해 중독과 생생함의 관계를 살펴본다.


성중독 – 생생함의 뒤틀린 갈망


성중독은 단순한 욕망의 과잉이 아니라, 깊은 정서적 공허에서 비롯된다. 성적 접촉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자 하지만, 그 끝은 항상 허무하다. 성적 행위는 생생함을 되찾기 위한 시도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뿌듯함으로 전환되지 않기에 끊임없이 반복된다. 자위 중독도 그렇지만, 성중독은 성관계만큼 짜릿함을 맛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순간을 맛보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의 것이다.


아기의 유아성욕은 자기 몸을 탐색하고, 감각을 즐기고,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표현되는 생명의 에너지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리비도(libido)가 단지 성적인 것이 아니라 생존과 연결된 욕동이라고 보았다. 아기가 자신의 생생함을 표현할 때, 엄마가 그것을 따뜻하게 반영해 주면, 아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지를 갖는다. 그러나 성적 에너지에 대한 수치심, 통제, 무시가 있었던 아이는 나중에 자신의 감각을 부끄러워하게 되고, 성적 자극을 통해 생생함을 회복하려는 왜곡된 방식을 택하게 된다. 성중독은 결국 “나 좀 봐줘”라는 내면의 외침이다.


도박중독 – 존재 확인을 위한 게임


도박은 단순한 재미 이상의 것이다. 도박 중독자는 게임을 통해 긴장과 해방, 성공과 파멸의 감정을 오가며, 마치 삶을 걸고 살아 있다는 감각을 체험하려 한다. 승리의 순간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고, 패배는 모든 생명감이 꺼진 듯한 공허로 바뀐다.


도박중독은 유아기의 주체성 경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위니캇은 아기가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세상을 실험해 보는 시도가 부모의 반응 속에서 존중받을 때 건강한 자아가 형성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율성이 무시되거나 과도하게 통제될 경우, 아기는 ‘존재 확인’을 반복적인 외부 자극을 통해 얻으려 한다. 도박은 일시적으로 존재감을 느끼게 해 주지만, 그 감각은 쉽게 무너지고, 다시 도박으로 되돌아간다. 9번의 실패와 한 번의 성공! 계속해서 손해를 보고 있지만, 단 한 번의 성공에서 느끼는 짜릿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손해 보는 줄 알면서도 도박은 계속된다. 그렇지만 뿌듯함으로 연결되지 못한 짜릿함의 반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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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 – 감각을 살려내려는 절규


마약은 현실의 감각을 지워버리는 동시에, 잠시나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마약중독은 현실의 무감각과 내면의 죽음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그러나 그 시도는 결국 더 깊은 무감각으로 되돌아간다.


하인즈 코헛은 자기애적 결핍이 깊은 사람일수록 자기의 생생함을 외부 자극에 의존해 회복하려 한다고 보았다. 유아기에 공감받지 못한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내면화할 수 없고, 외부 자극이 없으면 자기 존재를 느낄 수 없다. 마약은 이 생생함을 외부에서 수혈받으려는 시도지만, 그 자체가 관계없는 자극이기 때문에 뿌듯함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결국, 살아 있음의 감각은 마비되고 중독은 심화된다.


쇼핑중독 – 가짜 충만함의 반복


쇼핑중독은 ‘무언가를 갖는 행위’를 통해 존재감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물건을 고르고, 구매하고, 그것을 소유하는 순간에 느끼는 짜릿함은 곧 사라진다. 다시 비어버린 마음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구매를 반복한다.


쇼핑중독 역시 유아기의 공감 결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기의 새로운 동작, 말, 감정 표현이 엄마의 따뜻한 반응과 칭찬으로 이어질 때, 아기는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낀다. 그러나 이 초기의 뿌듯함이 없을 경우, 사람은 소유를 통해 자기 가치를 확인하려 든다. “내가 이런 걸 가질 수 있다”는 감각이 마치 자기 존재를 증명해 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생생함이 아니기에, 쇼핑은 멈출 수 없는 반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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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중독 – 감정을 마비시키는 방식


알코올중독은 감정을 마비시키기 위한 자기 방어이다. 술은 일시적으로 감정의 통제를 풀고, 내면의 억압된 분노나 슬픔을 해방시켜 준다. 그러나 그 감정은 진짜로 표현되지 않고, 건강하게 반영되지 않기에 해소되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사람의 말은 다음과 같다.


"알코올이 들어갈 때, 처음에는 못 느끼다가, 저의 경우 세 잔 째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짜릿함을 느낍니다."


아마도 알코올 중독까지 아닌 사람도, 세 잔 째의 의미가 각자에게 남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소주 제조회사는 고도의 계산하에 병의 크기를 제조했을 것 같다. 소주 한 병에는 딱 일곱 잔이 나온다. 두 사람이 한 잔씩 주거니 받거니 해서 세 잔이 넘어가는 순간, 짜릿함을 느끼게 되고, 상대방에게 네 잔 째 따르다 보면, 술병에 술이 딱 떨어진다. 그래서 외친다.


"아줌마! 한 병 더!!"


그날의 술 마시는 분위기는 바로 석 잔 째 목구멍에 넘기는 순간 결정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술은 한 잔이면 족하다. 두 잔이면 넉넉하다. 그러나 세 잔은 부족하다."

알코올 중독은 알코올이 '세 잔 째의 마법'을 거는 데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알코올 중독도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유아기의 생생함 여부에 달려 있다.

위니캇은 아기의 건강한 공격성이 꺾일 때, 그것이 왜곡된 방식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아기가 표현한 감정이 엄마에게 수용되지 않으면, 그 감정은 생생함을 억압하거나 무기력하게 만든다. 알코올은 이 억압된 감정을 순간적으로 열어주지만, 반영받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억눌린다. 그래서 술을 마신 후 찾아오는 자괴감은 단순한 숙취가 아니라, 생생함의 실패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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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함은 왜 뿌듯함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모든 중독의 본질은 짜릿함에 있다. 중독자는 순간의 감각을 통해 살아 있다는 감정을 느끼려 한다. 그러나 이 짜릿함이 ‘뿌듯함’으로 이어지지 않기에, 중독은 계속 반복된다.


유아는 젖을 빨 때마다 짜릿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 젖을 물게 해 준 엄마의 품, 따뜻한 시선, “잘 먹었네”라고 말해주는 공감이 있을 때, 아기는 비로소 그 짜릿함을 뿌듯함으로 내면화할 수 있다.

그 순간, 아기는


"나라는 존재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구나"

"내가 하는 행동이 잘하고 있는 것이구나"

"나는 사랑받고 있구나"


라는 듯을 느낀다.


뿌듯함은 생생함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중독과 생생함의 차이다. 공감 없는 짜릿함은 중독을 낳고, 공감으로 완성된 짜릿함은 생생함을 낳는다.


중독을 넘어 생생함으로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절제가 아니다.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생생함을 다시 복원하는 일이다. 그것은 타인의 공감 속에서, 자기 존재를 다시 확인받는 경험을 통해 가능하다. 생생함은 짜릿함보다 더 깊고 지속적인 자기 감각이다. 그리고 그 생생함은 한때 꺾였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모두 생생하게 태어났다. 중독은 그 생생함이 억눌리고 왜곡된 결과일 뿐이다. 이제는 짜릿함이 아닌 뿌듯함으로, 외부 자극이 아닌 관계의 따뜻함으로, 생생함을 회복해 나갈 시간이다.


마무리


중독은 짜릿함으로 생생함을 흉내 내려는 실패한 시도이다.

엄마의 품에서 자라났어야 할 건강한 자기감—곧 ‘뿌듯함’—이 부재한 채 자란 이들은, 성인이 되어도 그 생생함을 되찾기 위해 끝없는 반복에 빠진다.


이 글은 비난이 아닌 이해를 위한 시도이며, 내담자들이 중독 너머의 생생한 삶으로 회복될 수 있음을 믿는 희망의 고백이다. 우리는 누구나 생생함을 향해 태어났고, 그 본성을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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