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향연]1; 소크라테스는 왜 독배를 마셨나?

고대 그리스의 소년애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향연]은 에로스에 관한 고전적 진리가 담겨있다.

이 책은 읽기가 쉽지 않다.

철학 전공자 중에서도 플라톤 전문가가 아니면 대화의 속 뜻을 알아내기가 쉽지않다.

그런데 매우 중요한 책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지금 나는 이 책 내용 중 핵심적인 내용을 몇회에 걸쳐 나누고자 한다.

독자들 중에는 어떤 지점에서는 좀 놀라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가 동성애자였다고? 라는 지점이다.

그렇게 말하면, 나는 소크라테스는 그런 동성애 제도를 종식시킨 인물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소크라테스와 관련된 중요한 이야기를 보다 쉽게 설명해 보고자 한다.

독자들은 나를 잘 따라오기 바란다.


에로스란?


보통 에로스라고 하면, 육체적 사랑과 남녀간의 사랑을 생각하지만, [향연]에서 에로스는 육체적 사랑이 어떻게 지적인 사랑으로 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향연]을 읽는 초보자들은 이 책에서 다루는 사랑이 기본적으로 <소년애>라는 점에 충격을 받고 책을 계속 읽어나가기를 힘들어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시대적 상황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당시의 소년애를 이해함으로써 오늘날의 동성애 이슈를 잘 분별할 수 있다.

동성애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동성애가 고대로부터 있었던 역사적 전통을 주장할 때,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를 언급한다.

그러나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적 상황, 문화적 상황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의 동성애는 성인 대 성인의 동성애가 아니라, 성인 어른과 미소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동성애이다.

당시에는 여자의 역할이 매우 축소되어 있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는 여자와 아이는 공유의 대상으로 기술되어 있다(물론 이렇게 공유된 적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여자를 아테네 시민이 될 자격에서 배제하고 있다.

당시 여자는 자녀를 출산하는 수단으로서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년애는 아테네의 교육제도였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왜 소년애가 있었는가?

그것은 당시의 귀족 엘리트 집단의 교육제도였다.

아테네의 모든 소년이 어른과 소년애를 한 것이 아니라, 소년애는 귀족 소년들을 지도자로, 용감한 용사로 양육과정이었다.

당시에는 소년이 지혜로운 어른들과 신체를 접촉함으로써 지식이 전달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누군가와 악수를 할 때 손과 손이 맞닿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당시에는 그런 생각들은 상대방에게서 전달되는 것으로 여겼다.

교육제도로서 소년애는 지식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소년은 어른과의 신체접촉으로 지식 뿐 아니라 용맹도 전달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년애는 소년을 건강한 시민, 엘리트 시민을 키우는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향연]에서 고대 아테네의 시민은 3만명에 불과하다.

아마도 여자와 아이를 뺀 숫자일 것이다.

다 합하면 10만명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테네나 스파르타 등 도시국가들의 인구를 다 합해도 몇십만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주변에 대 제국 페르시아의 정복야욕 앞에서 대항해야 했다.

당시 페르시아는 동양의 중국처럼 군사 100만명을 동원할 수 있는, 서양에서 유일한 나라였다.

이런 나라를 대항하기 위해서는 남자가 용맹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년애는 바로 이런 국제적 상황 가운데서 탄생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소년 애인인 알키비아데스가 그렇게 교육받고 장군이 되고 아테네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알키비아데스와 소크라테스의 차이 ;정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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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도 감탄할 만큼 외모가 탁월했다.

그의 외모는 신적이고, 황금같고, 탁월하게 아름답고 놀랍게 보인다([향연] 216e6-217a2)

알키비아데스는 이러한 외모에 대해 소크라테스와의 육체적 친밀성을 획득함으로써 얻은 것이라고 여겼다.

알키비아데스는 육체성이나 물질성 그리고 영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즉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고대 신화에 나오는 신을 신봉하는 자이다.

그의 문제는 육체 또는 물질과 영성을 완충해주는 정신성이 없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는 이점에서 알키비아데스와 달랐다.

소크라테스는 물질성에서 정신성을 끄집어 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육체적인 에로스를 육체적인 쾌락을 누리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육체적인 에로스를 정신적 에로스로 만들어낼 줄 아는 사람이다.

오늘날 남녀 간에 사랑을 한다는 것은 신체적인 접촉과 성관계를 통해 정신적인 사랑의 단계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을 포함하듯이 말이다.

과거 IMF때 확연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이런 내용이다.

부부 간에 에로스가 육체적인 것 또는 물질적인 것에 그치는가, 아니면 정신적 관계로 발달하는가의 이슈가 IMF 사태로 확연하게 드러났다.

전자의 경우, 남편은 돈을 벌어오는 기계에 불과했다.

남편이 IMF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쫓겨나자, 아내는 더 이상 남편으로서 쓸모가 없어 가정에서 쫓아냈다.

그런데, 후자와 같은 가정이라면, 부부 간에 사랑한다는 것은 물질성과 육체성을 바탕으로 정신적 사랑으로 격상되어 가는 것을 포함한다.

그래서 후자의 가정에서 아내는


"여보! 이제 우리 둘이 힘을 합해서 다시 시작해 봅시다.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내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러려면 가정의 울타리가 튼튼해야지요. 이제 가정 경제를 위해 나도 힘을 보탤께요"


라고 했다.

알키비아데스는 외모적으로 신체적으로 물질적으로 권력적으로 매우 탁월하고 신의 신전을 잘 섬기는 영성을 갖춘 사람이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를 무시했다.

알키비아데스는 스승의 무시가 신경이 쓰였든지 스승과의 신체접촉으로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했다.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네는 '청동을 금으로' 교환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네."([향연] 218d7~219a1)


청동은 물질성을 말하며, 금은 정신성을 말한다.

누구는 청동을 잔뜩 팔면 금 한돈은 살 수 있지 않겠나? 싶을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100개, 100개를 따도 금메달 한개를 바꿀 수 없다.

정신성은 바로 그런 것이다.


정신성이 없는 물질성과 영성의 결합 ; 선악과 사건

apples-2788599_1920.jpg 에덴 동산의 선악과

토마스 만의 역작인 ‘요셉과 그 형제들’이라는 소설에 이런 내용이 언급된다.


영혼이 있었다. 여기서 영혼이란 최초의 인간다운 존재를 말한다.

물질과 마찬가지로 처음에 도입된 원리 중의 하나였던 영혼은 생명은 가졌으나 지식은 소유하지 않았다.

아는 게 얼마나 없었으면, 평안과 행복이 지배하는 높은 세상, 그처럼 가까운 곳에서 신을 모시고 살던 세상을 마다하고, 아직 형체를 갖추지 않은 물질에 마음이 기울었을까?

기울었다는 표현은 말 그대로 아래로 기울었다는 뜻이다. 여하튼 영혼은 물질과 몸을 섞어 형체를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나서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이렇게 형체를 만들어 육신의 쾌락을 얻고자 하는 욕구만 컸지, 영혼은 정말 무지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쾌락의 유혹을 못 이겨 고향을 떠나 아래로 내려오고 보니, 여간 괴로운 게 아니었다.

물질이 말을 들어야 말이지.

얼마나 게으른지 원래대로 무형 상태로 있고 싶다고 버티질 않나, 도무지 영혼을 기쁘게 해 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이런 곤란한 상황에 개입한 것이 바로 <신>이다.

신은 자신의 신성으로 <정신>을 만들어 이 세상의 인간에게 보냈다.

정신은 인간의 육신을 안방 삼아 쿨콜 잠만 자고 있는 영혼을 깨워 아버지의 명령을 상기시켜야 했다.

정신은 이 세상은 영혼이 머물 곳이 아니며, 육신의 열정을 못 이겨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죄이며, 그 때문에 이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일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영혼으로 하여금 이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 정신의 사명이다.

영혼과 물질의 완충지대로서 정신이 있어야 한다. 정신이 없으면, 영혼은 물질이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 찰싹 달라붙어 버린다.

매우 영적인 사람이 매우 물질적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기도를 열심히 했더니 하나님께서 딸을 부잣집에 시집보내주셨다'는 식이다.

물질과 영혼 사이에 정신성이 없어서 그렇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게 된 원인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차이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알키비아데스는 육체적인 또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내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외적으로는 볼품이 없으나 내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알키비아데스는 내적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와의 성적 접촉을 통해 지식을 얻고자 했다.

그렇지만 내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지혜는 자기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지 외부에서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라고 말함으로써 위기를 맞이한다.

소크라테스는 당시의 교육제도를 흔들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귀족 자녀들이 받고 있는 엘리트 교육의 근간이 무너지게 생겼다.

게다가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주장은 소년애를 없애고, 육체적 에로스는 남자와 여자 간의 성관계를 통해 발생하는 것임을 주장한다.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관점을 문제 삼아 당국에 고발한다.

소크라테스의 죄목은 전통적인 교육시스템을 바꾸었다는 것과 청년을 타락시켰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왜 독배를 마시게 되었는가?

구체적인 죄목이 궁금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속 시원한 답을 내어 놓지 못한다.

그런데 바로 [향연]의 이 대목에서 독배를 마셔야 하는 죄목이 드러난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공헌


소크라테스는 [향연]에서 동성애를 지양하고 이성애를 지향하도록 만드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소크라테스 자신은 그것이 죄로 돌아와 독배를 마셨지만, 그 이후 동성애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가 성경 고린도 전 후서에 있다.

소크라테스와 사도 바울 사이에는 약 450년의 시간차가 있다.

그 책에서는 사도바울이 그리스의 고린도에서 일어난 죄를 지적하는 대목이 있다.

거기에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지은 죄들을 책망하는 중에 근친상간까지 언급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언급은 없다.

바울이 동성애를 비난 하는 곳은 로마서에서 였다.

이것은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의 주장과 그 주장의 결과 마신 독배로 교육시스템과 동성애에서 이성애로의 문화사회적 전환이 일어났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플라톤의 궁극적인 주장

[향연]은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자기 주장을 대신하게 만든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스승이니, 그가 스승에게서 배운 바를 대화편을 썼을 수도 있다.

그래서 대화편에 나오는 모든 말은 누구의 말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플라톤의 전기 저작 속에서의 소크라테스와 중기 이후 저작 속에서의 소크라테스가 다르다는 점이다.

전기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제로 대표되듯이, '모든 사람은 무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소피스트들의 무지를 드러내면서 바보로 만든다.

그러나 플라톤 중기 작품인 [향연]에서의 소크라테스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 안에는 이데아가 있어 세상의 이치, 우주의 이치에 대해서 모두 아는 상태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 예로, 소크라테스는 메논이라 사람의 집에 있는 이름없는 노예 아동에게 기하학을 가르친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자인 노예 아동은 내면에 이미 기하학적인 이데아가 있기 때문에 하나씩 하나씩 깨우쳐 갈 수 있음을 소크라테스는 증명한다.

세상에는 수 천종의 개가 있지만, 아이가 서너 가지 종의 개만 보면 나머지 개는 처음 봐도 개인 줄 아는 것은 아이 안에는 <개의 이데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통해 내면 안에서 나오는 지식은 바로 '내 안에 있는 이데아' 덕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알키비아데스나 당시의 지식인들이 신체접촉을 통해 지식을 전달받을 수 있는 생각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소크라테스가 당대의 교육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청년들을 미혹하여 타락시켰다는 죄목을 얻어 독배를 마심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