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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하 Mar 18. 2022

1. 우리는 기차를 왜 汽車라고 불러?

우리는 기차, 중국은 火车, 일본은 汽車

어느  갑자기 떠오른 질문과 그에 대한 생각을 '무학의 통찰' 적어봅니다.


2008년 봄, 일본 오사카에 처음 가보았다. 오사카 여행 이후 후쿠오카, 벳부, 유후인, 하코다테, 삿포로, 오타루 같은 여러 일본 도시를 여행했다. 오사카와 후쿠오카, 삿포로는 두 번씩 다녀보았으나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도쿄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일본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 있다. 거리 표지판에 쓰여 있는 한자가 잘 읽힌다는 점이다. 駐車場(주차장), 駐車禁止(주차금지)처럼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지판을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었다. 한자를 외워서 쓰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보고 읽을 수 있는 소양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로부터 몇 년 후 중국 상하이로 여행을 갔다. 취지는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국, 그 중심에 있는 상하이를 직접 보고 느끼고 싶어서였다. 어느 일간지의 독자 투고란에 나올 법한 표현이지만 사실이다. 그 당시 나는 중국이란 나라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도착하자 바로 간 곳은 동방명주(东方明珠, 東方明珠)가 강 건너로 보이는 와이탄이었다. 수많은 중국어 간판과 표지판이 일본에서의 경험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내가 대충이라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이 생각은 잠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갈 뿐 그 이상의 의미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일까? 일본에서는 한자를 쉽게 읽었는데 중국에서 본 한자는 왜 그토록 생소했던 것일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에 관한 두 가지 이유를 정리해 봤다.


첫째, 간자체와 번자체의 차이이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간자체(간체, 간화자)를 사용한다. 간자체는 영어로 Simplified Chinese Characters라고 하는데, 그 표현처럼 복잡한 한자를 단순화시킨 것이다. 간자체는 우리가 따로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읽기가 어렵다. 반면 번자체(번체, 정체자)는 Traditional Chinese Characters라고 하며,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에서 사용되는 전통 한자이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면 그 차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한  글 : 문,  차.  동

번자체 : 門,  車,  東

간자체 : 门,  车,  东


두 번째, 한자어 자체가 다르다.

이는 우리나라의 신문물의 유입 경로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해 아시아에서 일찌감치 서양 문물과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문물이 일본 학자에 의해 일본식 한자로 번역되었고, 그 상당수가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시절을 거치는 동안 우리나라로 유입된 것 같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주차장, 공항 등과 같이 근대에 생긴 단어와 마차와 같이 오래 전부터 사용하던 단어를 중국어, 일본어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명확하게 보인다.


<신조어>

한국어 : 기차,  공항,  영화

중국어 : 火车,  机场,  电影

* 음독(화차, 기장, 전영)은 생소하다. 화차와 전영이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단어들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일본어 : 汽車,  空港,  映画  

* 음독하면 한국어와 정확히 일치한다.



<구조어>

한국어 : 마차,  항

중국어 : 马车,  港

일본어 : 馬車,  港

* 마차의 경우 간자와 번자의 차이일 뿐 중국과 일본 두 나라의 한자는 같다.


근대화 이전까지는 중국의 영향으로 인해 한중일 삼국의 한자어는 대체로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화 시기 신조어에 있어서 중국과 일본은 각자 독립적인 길을 걸었으며 한국의 신조어는 대개 일본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공산당 주도로 간체자(간화자)가 창안되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와 일본은 여전히 번체자를 사용하고 있다. 신조어가 일본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해방 이후에도 오랜동안 경제·사회적으로 일본의 영향을 받으면서 일본식 한자어가 우리말에 깊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만약 우리가 일제 강점기를 거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금 기차를 화차라고 부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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