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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하 Jun 20. 2022

6. 공(空)과 일(一)이 보입니다

내가 만약 '점'을 보았다면

내 인생에 점(占)은 없었다.


아마도 자신의 미래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운명, 팔자 또는 운세 등으로 불리는 자신의 앞날을 알기 위해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용한 점술가를 찾아 나선다. 그와는 반대로 궁금하기는 하지만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는 않는,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작가 김영하는 그런 면에서 전자에 속했었나 보다. 그의 책 보다 읽다 말하다에는 김영하 작가가 젊은 시절 점을 본 에피소드가 나온다. 때는 그가 대학교 4학년 시절,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앞날이 꽤나 궁금했던 작가는 한 여대 앞에 있는 점집을 찾아간다. 여기서 점술가(예명이 명산의 이름을 딴 '무슨무슨 도령'이라 한다)가 그의 미래를 정확히 짚는 예언을 하는 데 지금 보면 아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


"그럼 저는 어떤 일을 해야 되겠습니까?
"사주에 말씀 언자가 둘이나 들어 있습니다. 말과 글로 먹고살게 될 겁니다. 그쪽으로 가면 사십 년 대운입니다."
......
시간이 흐르자 그의 예언은 하나둘 맞아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듬해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년쯤 후엔 잡지 등에 고료를 받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얼떨결에 단행본도 출간하게 되었다. 그렇게 번 돈이 대학원의 등록금을 다 내고도 남았다. 대학원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오자마자 작가로 정식 등단을 했고 모교의 한국어학당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말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후로 라디오 진행자나 교수, 시나리오 작가 등을 거쳐 마침내는 전업 소설가로 먹고살게 되었으니 말과 글로 먹고살게 되리라던 그의 예언은 잘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 김영하, ≪보다 읽다 말하다≫, 2021, 복복서가, 108쪽, 109쪽


과연 세상에 귀신같은 점술가, 역술가, 점쟁이가 있을까 싶은데 이런 사례를 보면 있기는 하다는 생각이 짙게 든다.


나도 여전히 궁금하다.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이 어떻게 풀릴지, 또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어떻게 사는 것이 내게 가장 맞는 방식인지. 아무리 좋은 비단옷을 입는다 한들, 옷이 내 몸에 맞지 않고 내가 그 화려함을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랴. 지금 당장 내 인생의 모토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이다.


아무튼 나는 여태까지 점술가를 만난 경험이 없다. 사람들이 점집을 재미 삼아 많이들 찾아다닌다고 들었는데 난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귀찮았을 수도 있고, 굳이 앞길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것을 아는 게 두려웠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상상해 봤다. 내가 '무슨무슨 도령'을 만났었다면 그는 내게 어떤 얘기를 들려주었을까. (사실에 어느 정도 희망 사항을 가미한다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아니었을까.



도령의 테이블 위에는 특이하게도 미색 A4 용지 한 장과 그린 스트라이프 펠리칸 만년필이 놓여 있었다. 또 PDA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검은색 전자기기가 하나 있었는데 제품명까지는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그가 내 사주를 종이에 적기 시작하자 로열블루색 잉크가 투톤닙을 타고 종이에 배어들었다. 잉크는 순식간에 말랐다. 그는 이런저런 기호와 한자, 상형문자 같은 것을 섞어 가며 알 수 없는 어구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뭔가를 속으로 되뇌었다. 다시 눈을 뜨고 또 적었다. 특유의 사각사각한 닙이 종이를 긁으며 만들어 내는 경쾌한 소리가 방안의 묵직한 공기를 타고 귓가로 다가왔다. 잠시 시간을 두고 여러 어구들을 번갈어 보던 도령은 A4 용지의 여백에 세 자를 일필휘지로 적었다.


도령은 내 인생에 세 글자가 있다고 했다. 공(空)과 일(一), 그리고 언(言)이었다. 획수가 8개 이하로 떨어지는 쉬운 한자였다. 그러면 인생도 쉽게 풀려간다는 의미인지 살짝 기대가 되었다. 내가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내자 그는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순서상으로 언이 제일 먼저 보이고 그다음으로 공과 일이 있습니다."

"언이 제일 먼저라고요?"

"네. 당신 인생 초반에 언이 잠깐 보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언은 이제 약해지고 앞으로 공과 일이 본격적으로 나타납니다."


공과 일,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조합이었다. '빈 것이 하나 있다'는 뜻인가. 이어진 도령의 답변은 의외였다. 그는 시대를 한참이나 앞서 앞으로 올 세상을 예견하였는데 마치 그 모습이 미래학자처럼 보였다.


"지금도 사람들이 인터넷을 말하면서 엄청나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아직 인터넷 세상은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은 앞으로 정보기술, 그러니까 IT가 주축이 되어, 과거 어느 시대보다 빠르고 정신없게 바뀌어 갈 거예요."

"시작도 안 했다고요? 지금도 인터넷으로 많은 것이 가능한 편리한 세상이 되었는데요."

"우리는 인터넷 세상의 새벽 무렵에 있다고 봐요. 디지털이란 단어가 아시죠?"

"네. 아날로그에 반대되는 개념 아닙니까?"

"그렇죠. 숫자 영과 일로 구성되는. 뭐 떠오르는 거 없으세요?"

"숫자 영과 일, 0과 1, 공과 일, 아아! 그렇다면 도령께서 말씀하신 공과 일이, 숫자 영과 일이란 뜻인가요?"

"네. 당신 인생에 언, 공, 일, 세 글자가 보인다고 했잖아요. 그중 언은 글이나 말과 관련이 있고, 공과 일은 디지털, 정보기술(IT) 같은 분야입니다."

"당장은 공과 일이 거세게 다가오겠지만 이삼십 년 정도 지나면 다시 언이 강해지는 시절이 올 겁니다. 그럼 그때는 언을 꼭 잡으세요. 그렇다고 그때까지 언이 완전히 당신 인생을 떠나지는 않을 거예요. IT를 하더라도 언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에 글쓰기, 그러니까 보고서나 기획서 같은 것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 남들보다 훨씬 낫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겁니다.

그런데 IT 쪽으로 가더라도 길이 계속 순탄치는 않을 거예요. 두 번 정도 아주 큰 고비가 있을 텐데 그 시기를 잘 넘겨야 해요. 반드시 자신의 선택을 믿으세요. 당신은 누구보다 마음 근력이 강한 사람입니다. 피할 수 없으니 즐기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자신에 대한 믿음은 꼭 챙기시길 바랍니다."



졸업을 앞둔 시절, 내게 아주 신통한 점술가의 조언은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무슨 바람에서 인지 유수한 IT서비스회사 취업을 목표로 이력서를 넣었다. 다행히 서류전형, 필기전형까지는 잘 통과하였지만 면접에서는 떨어지기 일쑤였다. 결국 졸업식에는 미취업자 상태로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한 IT학원의 전문가 양성과정에 등록하였다. 당시 물가 수준으로 다소 거금이라 할 수 있는 400만 원을 집에서 지원받아 프로그래밍, 데이터베이스, 서버운영 등의 전문 교육을 6개월 동안 받았다. 교육의 효과는 있었다. PC 정도나 다루던 내가 정보처리기사 시험도 붙고 오라클 자격증도 취득하게 된 것이다. 남들이 볼 때 어느 정도 전문가스러운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IT를 잘 모르던, 정말 모르던 한 선배는 나를 볼 때마다 '해커'라고 불러 나를 매번 당황스럽게 했다). 이후 나는 금융회사 IT본부의 인턴을 계기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고 지금까지 쭉 IT분야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몇 년 전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때부터인지 모르겠다. 내 안에 묻혀 있던 이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한 것이. 누가 떠밀지도 않았는데 매일매일 맥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 시절. 그즈음 나는 해외여행과 출장을 소재로 글 다섯 편을 단박에 썼고 그 결과로 단번에 브런치 작가 신청을 통과했다. 또 여세를 몰아 에피소드 열 편을 추가로 마무리했다.


그 이후 글쓰기를 좀 쉬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쉼이 단순한 쉼이 아니었던 것 같다. 머릿속은 항상 과거 경험에서 우려저 나오는 에세이 소재들로 가득했다. 또 뭔가 호기심을 느끼는 대상도 글로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심정이 들기도 했다.


다행이다. 여태까지 잘 기다려 줘서. 이제 부담 없이 '가상의' 운명이 이끄는 그곳으로 가보고자 한다. 과연 내 인생의 자는 나를 어느 방향으로 인도할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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