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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Sep 01. 2024

계획은 먹기, 먹기, 먹기

서울 여행기 두 번째

보고 싶었던 영화 [괴물]을 드디어 극장에서 만난 날

치앙마이부산을 잘 다녀왔고 이제 남은 건 서울 일정뿐이라 아무래도 마음이 조금 편했다. 물론 휴가가 얼마 안 남은 건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좋아하는 음식점에 가고 함께 서울 구석구석을 둘러볼 생각에 그저 설렜던 휴가 막바지. 그래서 치앙마이와 부산처럼 촘촘하게 일정을 세우진 않았지만 서울 일정을 요약하자면 역시 먹기, 먹기, 먹기?


가장 오랜 친구인 M을 만나 좋아하는 참치집을 방문했다. M과 나는 초중고 동창이라 정말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친구인데 인생의 한 시절, 아니 두 시절쯤을 함께 했기 때문에 그만큼 공유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친구는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나와는 다른 삶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오래된 친구는 약간 가족 같은 면이 있어서 평소 내가 관심이 없는 분야라도 친구가 하는 이야기에는 무조건적으로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M과 가는 식당은 우리가 막 입사를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다녔던 음식점이 대부분인데 동네에 좋아하는 식당을 함께 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여로모로 즐겁고 감사한 일이란 생각을 한다. 밀린 이야기는 많고 시간은 짧다 보니 이날은 영업 종료 직전까지 머무르며 대화를 나눴다.



휴가 중간중간 도수치료도 부지런히 받았다. 지난번에 받았던 선생님이 그만두셔서 새로운 분에게 받았는데  처음 치료를 받는 날 잘하시는 분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전에 해주신 분은 신경 전문이었고 이 분은 근육 전문이라고 하셔서 바로 납득 완료.


여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장시간 모니터를 노려보다 보니 목과 어깨 통증 때문에 Chiropratic/Thai Massage/도수 치료의 신세를 지고 있다. 여러 도전과 실패 끝에 실력 좋은 분들을 발굴할 때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는데 앞으로 도수 치료는 이 치료사님께 받는 걸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주말에는 명동 아웃백에서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당시 패밀리 레스토랑이 유행했던 시절이라 친구들과 점심시간에 아웃백에서 만나면 런치 세트를 시켜서 수프를 샐러드로 바꾸고 거기에 치킨 텐더를 올리고 사이드 메뉴를 오지 치즈 후라이로 바꾸던 시절을 지나서 그냥 먹고 싶은 걸 마구마구 시키는 어른이 되었다. 이십 대의 나를 키운 건 역시 아웃백 투움바 파스타와 피자헛의 샐러드바, 프리모바치오바치의 빠네가 아닐까.



2차 점심이라 불러야 할지 아니면 조금 이른 저녁이라 해야 할지 헷갈리는 시간에 망원 너랑나랑 호프를 방문했다. 이번에 치앙마이, 부산을 여행하며 소위 '맛집'이라 불리는 여러 음식점을 방문했고 그중에는 입맛에 맞는 곳도,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곳도 있었는데 이날 너랑나랑 호프에서 잘 익은 갓김치에 육전을 싸 먹으며 시드니 시골쥐는 그저 눈물을 흘렸다. 오랜 시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사랑받는 가게는 역시 이유가 있다.



한국 사람 찾는 법 : 리본 모양으로 접힌 과자 봉지를 따라가시오

저녁 아홉 시에 커피를 마셔도 잠을 잘 잔다고 큰소리 떵떵 치던 시기를 지나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하는 의젓한 모습을 보고 조금 웃었다. 근데 잠을 계속 설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커피를 디카프로 바꾼 이후에 거짓말처럼 잠을 잘 자게 되어서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그냥 필수 옵션이 되어버렸다.



2차 저녁은 망원시장에서 분식으로. 사실은 칼국수집에 가려고 했는데 조금 늦게 방문했더니 이미 영업을 마감하셔서 대신 찾은 곳이었는데 우동, 떡볶이, 튀김 전부 맛있게 먹어서 행복한 얼굴로 귀가할 수 있었다. 역시 좋아하는 친구들 만나서 맛있는 거 먹을 때 제일 행복하다.



다정한 트친님에게 작고 따수운 마음을 전달받았다. 첫눈에 보고 반해서 달력에 예약 주문일까지 표시해 뒀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서 주문일을 놓쳤고 키링은 그새 품절되어 버렸는데 이렇게 깜짝 선물을 받게 될 줄이야! 마음을 잘 받을 줄 알고 잘 표현도 할 줄 아는 사람은 역시 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주말에는 용산 즉석 떡볶이집에서 ㅇ님을 만났다. ㅇ님과의 인연은 블로그로 시작됐는데 각자 시드니, 후쿠오카에서 해외생활을 할 때였고 당시 ㅇ님의 블로그를 정말 좋아해서 새 글이 올라오면 신나게 달려가서 답글을 달곤 했다. 그렇게 서로 간간이 안부를 주고받다가 어느 날 ㅇ님이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고 그즈음 서울로 휴가를 간 나는 이때다 싶어 냅다 데이트 신청을 했다. 분명 처음 만났는데 서로의 근황을 묻지 않아도 이미 온라인을 통해 대부분의 사건들을 알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이 날도 오랜만에 만나서 올해도 제비처럼 돌아왔다고, 일 년에 한 번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는 예쁜 말을 들었다.


일상부터 회사, 책과 영화, 가족 등 마치 주사위 던지듯 주제가 휙휙 바뀌었고 이야기는 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제멋대로 뻗어나갔다. 주제의 다양함이 꼭 대화의 만족도와 직접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여러 주제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건 그만큼 좋은 말동무란 뜻이기도 하니까. 친구에게 시집과 그림책을 선물 받았는데 일단 믿고 읽을 수 있는 구 북클럽 친구의 추천이라 그저 든든했다.



휴가 직전에 온라인 필사모임을 시작하게 되어서 휴가 중간에도 밀리지 않으려고 짬짬이 필사를 했다. 1.2L 스탠리 텀블러는 호주에서도 대유행 중이었지만 내 눈엔 역시 클래식한 해머톤 그린 텀블러가 제일 예쁘다.



여러 명보단 가까운 몇몇만 있으면 충분한 타입이다 보니 한국을 가도 많은 사람의 얼굴 도장을 찍기보단 친한 친구들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여러 번 보는 편이다. 그렇게 두 번째로 만난 친구. 헤헤- 또 만나도 반가워.


소문으로만 듣던 논현동 한성칼국수를 드디어 방문했다. 남이 해준 바로 만든 음식은 대부분 맛있지만 솜씨가 좋은 곳이라면 말해 뭐 해. 한성칼국수는 낙지볶음에 칼국수 사리를 넣어먹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낙지볶음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둘이 먹기엔 많은 양이라 칼국수에 모듬전을 시켰는데 칼국수를 한 입 먹자마자 옳은 선택이었단 걸 알 수 있었다.


서울에서 새로운 장소를 하나도 가지 않고 좋아하는(=아는) 장소만 가다 보면 조금 심심한 휴가가 되기 쉬운데 그래서 이렇게 중간중간 처음 가보는 가게들을 넣는 것으로 일정에 재미를 더하는 편이다. 한성칼국수처럼 운 좋게 도전한 장소가 마음에 들 때면 갑자기 행복지수가 맥스를 찍기도 하는데 친구도 나도 무척 만족스러운 식사를 해서 다음번에는 엄마랑 다시 방문해 보려고 한다.



거의 휴가 때마다 찾아가서인지 이제는 왠지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맴이 편해지는 GFC 폴바셋. 친구에게 쓰려고 부산에서 엽서를 사 왔는데 엽서를 쓸 시간이 없었고 결국 받는 사람을 앞에 두고 엽서 쓰게 됐다. 출국일이 코앞이라 아쉬움 가득한 인사를 하고 친구와 헤어졌다.



나의 레드스완, 당신을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엄마랑 동네 즉떡집 방문. 이 집은 초등학교 때부터 다녔던 곳이라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인데 정말 옛날과 마찬가지로 여자 사장님이 같은 장소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장사를 하는 곳이다. 한 장소에서 변함없는 맛으로 오랜 시간 영업을 하다 보니 이제는 학생들보다 졸업생들이 더 많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는데 이날도 어김없이 떡볶이에 라면 사리와 계란을 추가하고 볶음밥까지 야무지게 먹고 왔다. 추억의 떡볶이를 먹고 나니 영혼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김연경 선수를 보러 배구장에도 다녀왔다. 흥국 - 현대건설 경기였는데 주거니 받거니 박빙이었던 2세트가 너무 재밌었고 앞에 두 세트를 연달아 이겨서 3세트는 이미 시작부터 축제 분위기였다. 이 맛에 직관을 못 끊어요.



지구 끝 성수를 지나 육아로 바쁜 친구집을 방문했던 날. 친구네 고양이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쫄보였고 변함없이 귀여웠다. 저녁에는 광화문 씨네큐브 가서 영화 [추락의 해부]를 보고 귀가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명동에 가면 명동교자를 방문하게 된다. 언제쯤 이 맛을 안 좋아할 수 있을까 싶지만 아마 그런 날은 오지 않겠지요. 면사랑 사람이지만 명동교자 칼국수는 면발이 부들부들해서 특히 좋아한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명동역에 있는 델리만쥬 1호점과 도향촌을 차례로 방문했다. 최근 차에 취미를 붙이게 되어서 보이차를 마실 때 같이 곁들일 겸 친구들에게 선물하려고 월병 두 종류와 호도수를 구입했다.



명동에서 청계천-인사동으로 이동. 최근 한국에 솥밥집이 많아졌지만 내 마음속 부동의 1위는 역시 인사동 조금이다. 전복 솥밥을 제외하면 오히려 평이한 재료들뿐인데 정말 질리지 않고 끊임없이 잘 들어가는 맛이다. 게다가 양도 많은 편인데 먹다 보면 어느새 솥밥 한 그릇을 뚝딱하게 되는 신비로운 솥밥집. 여기도 정말 오랜 시간 꾸준히 찾게 되는 가게 중 하나다.



집에 오면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방울이. 여러 낚싯대와 캣닢 쿠션 등을 내밀어도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 새로 구입한 쥐꼬리 장난감은 꽤 좋아해서 아침, 저녁으로 열심히 놀아줬다. 놀아주면서 오백 개의 동영상과 천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번 휴가의 빅재미 상은 만화책에게 돌립니다. 치앙마이에서 읽은 [여학교의 별]을 시작으로 동작가의 작품인 [가라오케 가자!]와 [빠졌어, 너에게], 그리고 친구에게 추천받은 [정년이까지]. 시드니에서 전자책으로 동네 도서관을 꾸준히 이용 중이지만 상호대차로 만화책을 대여해서 읽는 재미? 제발 모르는 사람 없게 해 주세요.



출국하는 날 오전, 오늘 돌아가는데 아직 따릉이도 못 탔다니! 한탄하며 따릉이를 타러 엄마랑 동네 천으로 향했다. 엄마랑 주말이면 함께 산책하던 곳을 휘리릭 빠르게 한 바퀴 돌고 망원시장에서 못 먹은 칼국수도 한 그릇 먹고 왔다. 이번 휴가동안 칼국수를 너무 많이 먹은 게 아닌가 싶지만 명동교자는 명동교자만의 맛이, 한성칼국수는 한성칼국수만의 매력이, 그리고 시장 칼국수는 시장 칼국수만의 정취가 있단 말이죠.



그리고 다시 인천공항. 배웅 나온 엄마랑 오빠랑 카페에서 한창 수다를 떨다가 출국 게이트로 이동했다. 시드니로 돌아갈 때는 언제나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 날은 울지 않고 씩씩하게 출국했다. 안녕안녕, 건강히 지내다가 또 만나요 우리.



코알라국에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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