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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한 일상 속 큰딸과 별자리 데이트

by 김형준

"오늘 두 시간 더 하고 일요일에 쉴래? 아니면 일요일 또 나올래?"

학원 선생님의 제안에 큰딸은 두 시간 더 하는 걸 선택했을 겁니다. 금요일 10시 20분이면 학원이 끝났지만, 이날은 12시에 끝났습니다. 끝날 시간에 데리러 와 줄 수 있냐고 문자가 왔습니다. 그러겠다고 답장했습니다.


사실 금요일 저녁은 긴장이 풀어지는 시간입니다. 아내도 이날만큼은 저녁은 알아서 해결하자고 말합니다. 저도 굳이 아내에게 밥상 받을 마음은 없습니다. 간단하게 치맥이든 족발에 보쌈이든 손이 덜 가는 걸로 해치우고 맙니다. 어제도 치킨으로 저녁을 해결했지요. 그러고 TV 앞에서 여유를 즐겼습니다.


본디 사람은 음식이 들어가면 졸린 법이죠. 가뜩이나 긴장이 풀린 금요일 저녁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적당하게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반쯤 드러누우니 쇳덩이를 단 듯 눈꺼풀이 내려왔습니다.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1시간쯤 잔 것 같습니다. 시계가 11시 반을 가리킵니다. 몸을 일으켜 옷을 갈아입고 나왔습니다.


12시 10분 전 도로에는 차가 몇 대 없습니다. 곳곳에 신호등도 하루 일과를 끝냈는지 주황불로 바뀌었습니다. 막힘없이 달려 큰딸이 다니는 학원 앞에서 차를 세웠습니다. 12시 5분에 차에 탄 큰딸에게 인사말로 저녁밥 먹었는지 물었습니다. 대충 때웠답니다. 뭐 좀 먹겠냐고 다시 물었고, 괜찮다는 대답으로 대화가 끝났습니다.


다시 막힘없는 도로를 달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습니다. 입구 상가 쪽 주차장에 자리가 있어서 차를 댔습니다. 차에서 먼저 내린 큰딸은 스마폰을 하늘로 향한 채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큰딸에게 갔습니다. 궁금해 스마트폰 화면을 곁눈질했습니다. 별자리를 찾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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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에 별자리를 찾아주는 앱이 있는가 봅니다. 빈 하늘에 카메라를 갖다 대면 별자리를 그려줍니다. 신기했습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 하나하나 물었습니다. "여기는 카시오페아, 여긴 성운이고, 저기 가장 밝은 건 목성이고, 저 옆에 오리온자리도 보여" 낮 동안 맑았던 날씨 덕분에 별자리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아파트 현관 앞에서 5분 동안 별자리 구경했습니다. 별 볼일 여유 없이 바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 하늘을 올려다봐도 구름에 가리고 도시 빛공해로 인해 보이지 않는 게 보통이지요. 어제는 아무런 방해 없이 오롯이 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날씨가 도와준 덕분에 큰딸과 별 볼일 있는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삶의 여유는 어디서 올까요? 작정하고 쉬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죠. 한편으로 하루 중 짬짬이 시간에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도 여유이겠지요. 큰딸은 학원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종종 하늘에 별자리를 찾는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큰딸이 찾은 여유를 누리는 시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쁘게 살다 보면 땅만 보게 됩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앞만 보고 달리고, 달리다 보면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도 누구는 아주 잠깐의 여유를 통해 지치지 않고 달립니다. 마음 가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하루 중 단 5분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겠다는 마음인 거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가끔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본 적 있나요? 아니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감상에 빠지는 건 어떨까요? 이것도 아니면 목적 없이 걸어 보는 건요? 무엇이든 몇 분이든 온전히 자기에 집중해 보는 겁니다. 그 몇 분이 빡빡한 삶에 균열을 만들어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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