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Apr 13. 2021

때 묻은 빨래는 세탁기로, 내 감정에 묻은 때는?

나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 - 회복탄력성

지난 금요일 27년 지기 친구 3명과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아내와 아이를 떼어두고 남자들만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는 곳이 제각각이라 쉽게 모일 수 없었다. 대전에서 근무 중인 친구를 중심으로 나는 일산, 한 친구는 강진, 다른 친구는 익산이었다. 그래서 대전에서 가까운 계룡산 인근 펜션으로 모였다. 어렵게 모인 만큼 후회 없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었다. 

펜션으로 가기 전 마트에 들려 저녁상을 위한 장을 봤다. 늦게 오는 한 친구를 제외하고 셋이서 장을 보기 시작했다. 평소 마트를 가는 목적은 주중에 먹을 찬거리와 간식, 생필품을 사기 위해서 아내를 따라 짐꾼으로 가는 게 전부였다. 우리 셋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짐꾼은 아니었다. 우리를 위해 우리가 먹고 싶은 것들 담아도 된다는 해방감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소주, 맥주, 삼겹살, 라면, 과자, 마른안주, 김치, 야채, 쌈장, 음료수 등등 손이 가는 대로 담았다. 다음날 아침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부족하지 않을 만큼 채웠다.


자동차 트렁크 가득 식재료를 싣고 펜션으로 향했다. 8시쯤 넷이 한 방에 모였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야채를 손질하고, 숯불을 피우고, 밥을 데우고, 그릇과 수저를 챙겼다. 고기를 구울 수 있는 숯불 주변으로 모여 앉았다. 고기가 익길 기다리며 소주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몇 잔이 돌자 한 친구의 긴 한 숨과 함께 낮에 있었던 일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농업 종사자와 지자체 사이에서 각종 기금이 적절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지자체에서 발주하는 용역이다 보니 하나의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경쟁 프레젠테이션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이날 경쟁 PT는 2년 간 공을 들인 사업이었다고 한다. 공을 들인 만큼 주변 분위기는 자신에게 유리할 거라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며칠 밤을 새우며 완벽한 PT를 준비하는 게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경쟁업체가 있어도 그간의 과정만 놓고 보면 거의 확실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PT를 했다고 한다. 심사 위원의 점수가 모아진 뒤 발표된 결과는 친구의 귀를 의심하게 했다. 최근에 업계에 발을 들인 신생업체에서 1등을 했다. 친구는 그 업체에서 막판에 심사위원을 상대로 로비를 한 게 확실하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소주잔이 도는 내내 분하고 억울해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직원은 물론 그들의 식구까지 책임져야 하는 자리이니 분이 쉽게 가시지 않을 거였다. 10여 년 이어오는 동안 페달을 적게 밟아도 멀리 갈 수 있는 기회와 유혹이 있었지만, 느려도 한 발 직접 밟으며 가는 게 정도라 믿어왔다고 한다. 우리도 그런 노력이 오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고 위로를 전했다. 친구의 울분은 다음날까지 이어졌지만 딱 그 시간만큼만 분해하고 털어버리겠다고 했다.



강한 회복력을 위한 마지막 요소는 다름 아닌 결단이다. 이미 우리 안에 있는 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위기를 이겨내고야 말겠다고 결단할 때, 우리는 반드시 더 높은 자리로 다시 튀어 오를 것이다.
 《태도 수업》- 한재우



친구에겐 10여 년의 내공이 들어차 있었다. 하룻밤 쓴 소주 몇 잔과 자신을 이해해주는 친구들에게 푸념하는 걸로 다시 회복되었을 거다. 실패가 독이 되는 건 받아들이는 태도에 달렸다고 한다.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고 개선해야 할 점을 찾고 바로 잡을 때 회복도 빠르다. 떨어지는 공에 공기가 적으면 튀어 오르지 못하고, 반대로 너무 많으면 잡히지 않을 만큼 튀어 오르게 된다. 손에 잡힐 만큼 튀어 오를 공기가 차 있어야 자신의  손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친구의 경우처럼 중요한 사업이나 생존과 연결되는 실패의 경험도 있지만, 직장인, 학생, 육아맘, 자영업자 등 하루 동안 원하든 원치 않든 여러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뜻하지 않게 좌절을 느끼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심한 굴욕감을 맛보기도 하고, 심한 경우 살아야 할 이유를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 감정의 상처들은 당장은 표시가 안 날 수도 있다. 상처 난 곳을 치료하지 않으면 서서히 곪아가듯 감정의 상처를 그대로 놔두면 딱딱하게 굳어버릴 수 있다. 굳어버린 상처는 정작 치료가 필요한 순간 손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챙기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나조차도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사람들에게서 전해지는 불편한 감정들, 가족 간의 불통을 겪지만 그 순간 털어버리는 게 쉽지 않다. 그렇게 감정의 찌꺼기들이 조금씩 쌓여가게 된다. 페인트를 다시 칠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기존의 페인트 자국을 남김없이 제거하는 거다. 바탕면이 깨끗해야 새로 칠하는 색도 오래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찌꺼기를 긁어내고 새로운 감정과 의욕을 갖는다면 좋겠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래도 내 친구가 하룻밤 동안 푸념을 늘어놓았듯 자신 안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꺼내고 털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한다. 내가 몇 년 만에 가족과 잠시 떨어져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시간처럼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게 필요한 '나'의 갯수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