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되었을 때의 기쁨
오래전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장래희망을 적는 시간이 오면 작가라는 직업이 늘 빠지지 않고 등장했으니까. 작가의 실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작가가 되려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도 몰랐으면서 그 직업을 오랫동안 꾸준히 적어냈던 걸 보면, 글쓰기에 대한 순수한 애정만으로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내게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묻는 어른들에게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작가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작가는 돈을 많이 못 버는 직업이구나.' 어느 순간부터는 작가라는 직업을 빼버리고 '선생님' 이라는 안정적인 직업만 적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주변 어른들의 반응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편했다. 장래희망만 말했을 뿐인데 이전과는 다르게 나를 기특하게 바라봐주는 눈빛에서 마음 한 편에서는 이상한 안도감도 들었다.
그렇게 작가라는 직업은 내 장래희망 리스트에서 조용히 사라졌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글쓰기를 좋아한다. 20대 초부터 나이 앞자리 수가 바뀐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일기를 쓰고 있고, 스물여덟 살에 시작한 캐나다 유학 일상을 개인 블로그에 정기적으로 기록했고, 그 원고들을 기반으로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브런치 작가에 지원해서 합격한 걸 보면. 사실상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글쓰기가 내 삶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쯤에서 던져보는 세 가지 질문.
1. 일기를 매일 쓴다고 해서 누가 알아줄까?
> 오직 나만 안다.
2. 블로그를 꾸준히 올리면 돈이 될까?
> 캐나다 유학일상을 2년 내내 성실하게 기록했지만 수입은 제로였다.
3. 브런치 작가가 되었으니 이제야 내 글들이 빛을 볼 수 있을까?
> 아직은 브런치라는 플랫폼 자체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즉 내게 글쓰기란,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라는 사람의 영향력을 드라마틱하게 키워주지도 않는 행위’라는 것. 그럼 난 왜 지금 이 순간에도 굳이 시간을 내서 글을 쓰고 있는 거지?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의하는 '좋아하는 일'이란 다음과 같다.
1. 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일
2. 타인의 인정이나 보상과 관계없이 100% 자의로 하게 되는 일
몰입과 주체성. 이 두 가지 조건이 함께 충족되면 그 일은 내게 좋아하는 일이 된다.
글쓰기와 함께한 지난 10년을 생각해 보면, 위 기준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를 근거로 누군가 내게 취미를 물어볼 때 자신 있게 글쓰기를 말하면,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바로 뒤따라오는 질문.
우와 글쓰기? 너 글 잘 써?
글쓰기를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망설이지 않고 즉각적으로 대답할 수 있었지만, '잘 쓰냐고' 물어볼 땐 나도 모르게 멈칫하게 됐다. 세상에서 한 사람만 보는 일기, 몇 안 되는 내 지인들이 봐주는 블로그 포스팅만으로는 내가 글을 잘 쓰는 건지 아닌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음.... 그냥 좋아해!"
늘 이렇게 무난하게 대답하고 넘어가길 택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 마음속에서 이런 궁금증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글을 ‘잘 쓰는지’ 어떻게 알 수 있지?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지‘는 어떻게 알지?
아래는 한동안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던 이 의문점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준 말들이다.
"내가 어떤 일을 잘하면요, 그걸 모를 수가 없어요. 알아서 주변에서 잘한다고 말해주거든요."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어보세요. 돈을 벌 수 있으면 그건 잘하는 일일 가능성이 높아요."
> 즉, 몰입과 주체성을 기반으로 즐겁게 하는 일들에 타인의 인정까지 주어진다면 그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된다는 말.
외부반응에 연연하는 걸 선호하지 않기에 처음에는 이 주장들에 거부감이 먼저 들었지만, 결국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잘한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인정이 무엇보다 강력한 보증 수표라는 사실을.
그래서일까? 내게 브런치 작가 승인 소식은 합격의 기쁨 그 이상으로 다가왔다. 오랫동안 좋아해 왔던 글쓰기라는 취미를 '잘하는 일'로 인정받은 첫 번째 순간이었다. 나라는 사람을 소개할 수 있는 새로운 타이틀이 추가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지만, 이제는 “너 글 잘 써?” 라는 질문에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나도 들뜨게 했다.
아직은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식이 강해 그 어떤 플랫폼보다 구독자 모으기가 힘든 곳으로 악명이 높지만,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 수와는 관계없이 계속해서 글을 써와서인지 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는 글을 잘 쓰냐는 물음에 ‘그냥 좋아해’ 라는 무난한 대답이 아닌,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