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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명함을 버리면 내게는 무엇이 남을까?

직업이 아닌 것들로 나라는 사람을 소개한다면

by 버블리

첫 만남에서 나라는 사람을 소개할 때, 직업은 빠지지 않는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 실제로 누군가의 본업을 통해 그 사람의 성향을 어느 정도는 예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직업이라는 건 확실히 상대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세계를 어떻게 직업 하나만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혹은, 명함 한 장으로만 정의가 되는 세계라고 한다면 그 세계는 얼마나 심심할까?




지난 프롤로그에서 나는 자기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건> 가족, 사회, 더 나아가 이 세상에서 나에게 부여한 모든 라벨과 기대, 각종 의무를 걷어냈을 때 그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나다. 이때의 '나'는 사랑하는 가족의 기대를 충족할 필요도, 우리 사회가 맞다고 정해놓은 '옳은 길' 을 걸어갈 필요도, 이 세상이 원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들을 마치 내 것인 것처럼 욕망할 필요도 없다.


그저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 상태.

*나를 알아가는 여정에서는 바로 이 상태가 기본값이 되어야 한다.




Self QnA : 나 사용 설명서의 첫 번째 질문은 '명함을 버리면 내게는 무엇이 남을까?'이다. 스무 개의 물음표 중 이 질문을 1번으로 배치한 이유는, 직업을 뺀 나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Q1. 명함을 버리면 내게는 무엇이 남을까?


나는 작년 10월부터 캐나다 밴쿠버에서 유학상담 일을 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링크드인에서 근속 1년을 축하한다는 알림도 받았다.)


회사에서 이메일을 쓸때마다 나를 꼬리표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내 명함에 따르면, 나는 International Student Advisor 이다. 직무 외에 알 수 있는 것은 회사명, 내 이름, 연락처, 사무실 주소, 공식 웹페이지 링크가 전부다. 이 일이 내게 어떤 보람을 주는지, 내가 왜 이 일을 선택하게 됐는지, 내 안의 어떤 성향이 이 일과 찰떡같이 맞는지에 대해 명함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명함이란 건 나라는 사람을 소개해준다기보다는, 사회에서 붙여준 라벨에 더 가까운 것 같다. '00 회사에서 00으로 일 하고 있는 사람'.

딱 거기까지만 말해주는.

그럼, 명함을 버리고 나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게 기쁨을 주는 일들이 나를 설명해 준다.


첫 번째 : 혼자 하는 장기여행


스무 살에 도전해 본 나 홀로 국내여행을 시작으로, 나는 여행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몇 번의 여행을 거듭하며 알게 됐다. 나는 단기여행보다는 장기여행이 더 맞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혼자 하는 여행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왜 그렇게 여행을 좋아했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난다는 것 자체로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왜 꼭 장기여행이어야 하는데?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돌아갈 날을 아쉬워하는 것보다, 현지인 모드로 살아보는 여행이 내게는 훨씬 설레고 재미있다.


혼자보다는 같이 가는 게 낫지 않나? 함께 하는 여행도 물론 좋아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이 주는 특별함이 있다.


’이 여행이 제 인생을 바꿨어요!‘ 라고 소리칠 수 있는 드라마틱한 여행은 아직 못해봤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혼자였던 긴 여행이 끝날 때마다 나는 나 자신과 한층 더 가까워졌음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느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생겨난 친밀함은 내 안의 자기 사랑을 충전해 주는 연료와도 같았다.


다음 *장기* 여행지는 어디가 되려나.

뉴욕, 멕시코, 발리, 포르투갈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


두 번째 : 독서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주말이 되면 부모님은 나와 내 쌍둥이 동생을 가까운 도서관에 내려다 주고 볼 일을 보러 가셨다. 그때는 소설을 제일 좋아했었는데, 책을 넘기면서 내 머릿속에 펼쳐지는 이야기의 재미에 푹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작가라는 꿈도 내 안에 조금씩 피어났던 것 같고.


독서의 진짜 순기능은, 내가 성인이 되고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래는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고민들이다.


-잘 살고 싶은데, 뭐부터 해야 되지? > 혼자 아무리 고민해 봐도 시원한 결론이 나지 않을 때, 나는 책 속에서 힌트를 찾았다. (당시 유시민 작가님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변 사람들에게 입이 닳도록 추천하고 다녔다.)


-이렇게 내 멋대로 살아도 되는 건가? > 사회가 맞다고 하는 길에서 나만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을 때,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얼굴도 모르는 작가의 글을 통해 응원을 받았다.


-미래가 불안하게만 느껴지는데 어떡하지? > 캐나다에서 졸업을 앞두고 들었던 생각. 낯선 불안감이 나를 불쑥 찾아왔을 때조차 책에서 위로받았다.


글을 통해 한 번이라도 위로받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게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지. 그래서 나는 삶에서 어떤 어려움이나 해결해야 할 과제가 생길 때마다 책을 찾는다. 사람이 아니라.


여행이 내 두 눈으로 보고 살갗으로 느끼는 직접 경험이라면, 독서는 글을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간접 경험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라는 데이터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일수록, 나는 나 자신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한번 더 말하지만, 자기 사랑의 여정에서 친밀함은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일단은 친해져야 한다.



세 번째 : 글쓰기
일기를 쓴다는 것은 누구도 보지 않을 책에 헌신할 만큼 자신의 삶이 가치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 『아주 작은 반복의 힘』 , 로버트 마우어


일기를 쓴 지 9년 정도 되었다. 글쓰기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 다르게 표현해 보면, 내 생각을 들여다보며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이다.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었던 감정을 붙잡고 이름을 붙여주고,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분석해 보는 시간.


이 시간이 축적될수록, ‘나는 이런 상황에서 행복함을 느끼는구나, 이런 데에서는 불편함을 느끼는구나, 그 부분이 두려웠던 거구나, 그럼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지?‘ 처럼 내가 나를 이해하고, 다독여주고, 때로는 충고도 해준다. 이렇게 마음을 잘 알아주니, 스스로의 베스트프렌드가 될 수밖에 없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게 자연스러워지면, 타인을 이해하는 것도 그만큼 쉬운 일이 된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게 아닐까?





흥미로운 건 ㅡ 기쁨을 주는 세 가지 일들 (여행, 독서, 글쓰기)의 연장선이 내 마음속 1번 꿈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여행작가로 살길 원한다. 새로운 장소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매일같이 마주하게 될 새로운 일들을 나만의 문체로 써 내려가고 싶다. 그렇게 이 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탐험하며 살아가는 것을 꿈꾸고 있다. 내가 나에게 직접 붙인 여행작가라는 라벨과 함께.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삶이다.




오늘의 질문


Q1. 여러분에게 기쁨을 주는 일들은 무엇인가요?

Q2. 그 일의 어떤 부분이 여러분을 기쁘게 하나요?

Q3. 나를 기쁘게 하는 일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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