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온 종일 할 수 있는 일들 모음집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어벤저스 시리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명대사 중 하나는 캡틴 아메리카의 "I can do this all day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 이다. 나는 이 대사가 3000만큼 사랑해보다도 좋았다. 캡틴 아메리카가 이 대사를 내뱉을 때면 늘 같은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걸 가능하게 하는 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런 일들에서는 열정 이상의 무언가가 작동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열정이라는 불꽃은 시간이 지나면 꺼지기 마련이니까, 그보다 강력한 어떤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그럼, 그 동력은 어디서 어떻게 나오는 거지?
Self QnA : 나 사용 설명서 3화는, 나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에너지를 쓰는 일 (소모)
에너지를 얻는 일 (충전)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일 (생성)
*이번 화의 주제는 세 번째 ㅡ'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일(생성)'ㅡ이다.
첫 번째, 내 에너지를 쓰기만 하는 일이다.
에너지를 쓰는 일 : 나를 소모시키는 일
다음날의 나를 괴롭게 하는 술자리, 시간 도둑이 따로 없는 의미 없는 스크롤링, 당장이라도 자리를 뜨고 싶게 만드는 부정적인 사람과의 불편한 대화, 관계에도 유지보수비라는 게 있다면 최고가일 해로운 관계. 이런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럼 에너지를 쓰기만 하는 일들은 전부 다 나쁜 건가? 나에게는 아니다. 어떻게 매 순간을 생산적으로만 살 수 있을까. 이어서 나오는 다른 (생산적인) 일들로 상쇄가 되는 수준이라면, 인생의 재미나 교훈을 위해서라도 내 삶에 필요한 요소들이라 본다.
나를 소모시키는 일들이라도.
두 번째, 내가 에너지를 얻는 일이다.
에너지를 얻는 일 : 나를 충전시켜 주는 일
이제는 나만의 피난처가 되어버린 독서, 1인 크리에이터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양질의 컨텐츠, 나 자신과 친해질 수 있게 해 준 1등 공신이나 마찬가지인 일기, 친한 친구와 툭 터놓고 떠는 수다, 그리고 나를 0부터 다시 시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 이 모든 것들이 내게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소중한 일들이다.
친구와의 수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나 홀로 하는 일들이라는 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혼자 보낸 시간은 내가 충전되는 시간이었다. 혼자서 노는 날이 유독 편하게 느껴졌던 이유가 그거였구나. (E 80% 파워 외향형이지만 알고보면 내향형 인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혼자 있는 시간을 꼭 필요로 했었다.)
이렇게 또 글을 쓰며 나를 알아간다.
세 번째, 내가 직접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일 :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일
캡틴 아메리카가 말하는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에너지를 쓰거나 얻는 게 아닌, 내가 직접 에너지가 되어 살아있음을 생생히 느끼는 일이다. 나는 삶에 이런 일이 단 하나만 있어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I can do this all day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일들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일
1. 유학상담
곧바로 떠오른 일은 유학상담이다. 지금 하고 있는 본업을 첫 번째로 적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일에 대해서는 다음 화에서 더 자세히 풀게 되겠지만, 그동안 일이 주는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나는 상담을 하고 나면 에너지가 생긴다. (물론, 진행하는 상담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이 느낌이 처음은 아니었다. 캐나다로 돌아오기 전, 강남에 있는 한 아이엘츠 학원에서도 상담 일을 하면서 에너지가 생기는 신기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학생과 처음으로 마주 앉는 순간, 우리 둘 사이에는 조금은 어색한 공기가 돈다. 어쩔 때는 나를 향한 약간의 경계심이나 방어태세가 느껴질 때도 있다. 학원이나 유학원의 특성상, 등록 여부는 상담직원의 성과와 직결된다. 그래서 나를 보통의 세일즈 직원으로 보는 시선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파워 E의 기질을 발휘해 분위기를 풀고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에 대한 경계심이 확 풀어짐이 상대방의 눈빛에서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내 이야기를 할 때다. 이때 나를 보는 눈은 ‘추천 어학원 리스트’, ‘시간표 및 학비’, ‘한 반 인원수’ 와 같은 보통의 정보를 전달할 때는 볼 수 없었던 눈이다.
조심스럽게 내 경험을 꺼내는 순간,
우리를 둘러싼 상담실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사실은 저도 스물여덟에 퇴사하고 캐나다로 유학을 갔었거든요.
저는 대학 졸업하고 밴쿠버로 6개월 어학연수를 왔었는데, 그때 했던 어학연수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말하고 다녀요.
달라진 건 공간의 분위기뿐만이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그때부터는 나에 대한 경계심이나 방어태세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보다는 두려움으로 꽁꽁 무장해서 들어왔던 사람들이, 실제 경험자의 얘기를 듣기 시작하니 ‘퇴사하고 스물여덟에 갔던 캐나다 유학은 어땠는지’ 두 눈동자를 빛내며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내 에너지도 달라졌다. 반복되는 일상업무를 할 때는 조용히 소모되어 가던 에너지가, 이 순간만큼은 오히려 생겨나고 있음을 느꼈다.
어느 날, 강남역에서 퇴근 버스를 기다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캐나다 유학 스토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보면 어떨까?'
2. 컨텐츠 제작
나는 '남을 위한 컨텐츠'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아무리 영상이 요즘 트렌드라고 하지만, 카메라 앞에 앉아서 말을 하려니 평생 시작하지 못할 것 같아서 일단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참고로, 나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완벽주의자다.)
역시 글이 제일 편했다. 함께 올릴 짧은 영상을 편집하는 데에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완벽주의자가 아닌가?)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담은 첫 번째 컨텐츠-스물여덟, 퇴사하고 유학가기 좋은 나이-에서부터 기대도 못했던 반응을 받았다. 조회수 30만, 좋아요 약 700개. 이건 진심으로 초심자의 행운일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내 계정의 팔로워 수는 100명을 웃돌았던 때였으니까.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다음 컨텐츠-스물여덟에 유학을 가는 게 오히려 좋은 이유-를 올렸다. 조회수는 이전보다 떨어진 13만, 좋아요는 조금 올라 약 800개.
이 모든 숫자보다도 나를 진짜로 설레게 한건 아래에 달리는 댓글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등장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느끼던 두려움을 털어놓고, 내 이야기로 인해 용기를 얻었다며 고마움을 표현하는 말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회사 안의 상담실이라는 공간이 그대로 내 손 안으로 옮겨 온 느낌이었다. 이때 생각했다. 그동안은 당연하게 혼자서 간직하고만 있었던 내 이야기가, 누군가는 필요로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그때부터 세상의 모든 유학 준비생들을 위한 컨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3. 사람들과의 연결
한국에서 사표 대신 비자를 품고 회사를 다녔던 적이 있다. 컬리지를 졸업하고 신청했던 PGWP(Post-Graduate Work Permit) 덕분에,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캐나다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로운 상태였다.
평일에는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고 주말에는 유학 준비생들을 위한 컨텐츠를 쌓아가던 중, 나는 갑자기 캐나다로 가서 학생들을 직접 상대하고 싶어졌다. 내 반골기질 성향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K-직장생활에서 오는 권태감도 이에 한몫을 차지했다. 이때 캐나다로 취업 준비를 하며 이력서에 처음으로 소셜미디어 계정을 넣어봤다. '제가 이렇게나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진심인 사람입니다.' 를 어필하기에 이보다 좋은 건 없었다.
그렇게 또다시 밴쿠버행 비행기를 탔다. 남들은 자느라 바쁜 장거리 비행 중에도 내 손가락은 메모앱 위에서 더 바쁘게 움직였다. '밴쿠버에 가서 공통관심사가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교류해보고 싶다.' 는 새로운 위시리스트가 머리를 지배한 탓이다. (나도 내가 일을 벌이는 타입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독서인증 챌린지를 시작했다. 비행기에서 열심히 적어 내려 간 계획을 실현한 순간이었다. 챌린지가 종료되고 나서는 밴쿠버 독서&글쓰기 인증방을 개설했다. 모임을 한 번이라도 이끌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때 들어가는 에너지가 결코 적지 않다. 매력적인 모집글로 참가자들을 모으고, 환영글을 작성하고, 방 규칙을 정해야 한다. 규칙을 정할 때는 지나치게 까다롭지도, 그 반대가 되어서도 안된다. 채팅방이 조용한 날에는 그게 다 내 탓 같아 어떻게든 책을 집어 들고 좋은 구절을 찾아 공유한다. 오프라인 정모라도 하는 날에는 날짜, 시간, 인원수에 맞는 장소 예약까지 모두 리더의 몫이 된다. 그리고 매번 리더의 역할을 자처한 나다.
얼핏 보면 사서 고생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에너지가 가장 많이 쓰이는 일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가 생긴다.>
내가 만든 공간에서 각자의 사유가 오고 가는 걸 볼 때,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의 멋진 감상평을 듣게 됐을 때, 그리고 내가 진심을 담아 작성한 글이 누군가의 마음을 울렸다고 할 때.
이때 느끼는 보람이 앞서 언급한 모든 고생을 잊게 만든다. 에너지가 생기는 순간이다. 통하는 대화가 이렇게 즐거운 거였나.
하루 종일 떠들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나 혼자만 좋고 재밌는 건 에너지가 소모되거나 충전되는 일이다. 반면에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좋은 일, 나에게는 그런 일들이 에너지가 생기는 일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믿음.
바로 이 믿음이 열정보다 강한 동력이었다.
오늘의 질문
Q1. 내 에너지가 가장 많이 소모되고 있는 일은?
Q2. 나만의 에너지 충전법은? 그 일을 얼마나 자주하나요?
Q3. 내가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일은? 그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