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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6.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선택은?

캐나다 밴쿠버 6개월 어학연수

by 버블리
“어학연수 국가는 캐나다로 정하셨어요? 보통 토론토나 밴쿠버로 많이들 가시는데요, 도시 느낌을 원하시면 토론토, 자연을 좋아하시면 밴쿠버를 추천드립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스물셋 버블리는, 유학원 상담직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했다.


“저는 밴쿠버로 갈게요!”


-<스물여덟, 유학 가기 좋은 나이 Ep.7>





한국을 떠나, 낯선 곳으로의 해외살이를 결심하게 된 데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더 많은 기회와 경험을 위해, 답답한 한국 사회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또는 외국살이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으로 시작했을 수도 있다. 나는 스물넷에 떠난 캐나다 6개월 어학연수로 첫 해외살이를 시작했는데, 그때는 몰랐다. 이때의 탈주를 시작으로 20대 내내 한국과 캐나다를 오고 가며 지내게 될 줄은. (30대도 크게 다를 것 같진 않다.)


Self Q&A : 나 사용설명서 7화는, 캐나다 단기 어학연수가 어떻게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잘 살고 있던 나는, 어떤 이유로 해외살이를 결심하게 됐을까?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방황하는 내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대학생이 되고 나니, 이제는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해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된다는 새롭지만 낯설지는 않은 미션이 주어졌다. 10대 때의 과제였던 ‘좋은 대학 가기’에서 단어만 회사로 바뀌었을 뿐, 내게는 그것들이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당시 나는 내가 가고 싶은 회사나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기에, ‘남들 다 하는 그 흔한 노력’ 조차 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되는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그냥 지겨웠다. 답답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비슷한 얼굴을 하고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늘 봐왔던 광경이기에 놀라울 것도 없었다. 그때,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일등까지는 아니어도 남들보다 뒤처지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나름 열심히 달려왔는데, 그 결과는?

앞으로 살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

나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여기서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그래도 다수가 가는 길에는 이유가 있겠지, 여기까지 오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가던 길로 계속 달리기


지금이라도 의미 없는 경주를 멈추고, 나만의 목적지를 새로 정하기


정체 모를 회의감에 휩싸인 나는 달리기를 멈추고, 오랫동안 소속되어 있었던 그 ‘무리’에서 벗어나보기로 결심했다. 이 의미 없는 레이스에서 물리적으로 멀어져 보자. 그때 구원처럼 떠오른 건, 몇 년 전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어학연수 제안이었다.


당시 나는 한창 대학생활을 하는 중이었는데, 지금처럼 갈 수 있을 때 해외에 나가서 짧게라도 있다 오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을 하셨었다. 지금의 나라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좋아요!"를 외치며 포르투갈로 스페인어 어학연수를 당장 계획하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거절의 표면적인 이유는 "어학연수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요" 였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혼자 해외에 나가서 살 자신이 없어 두려웠던 스물하나다.


하지만 졸업을 앞둔 나는 이제 더 큰 두려움ㅡ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는 상태ㅡ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속해있었던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기 직전, 이보다 두려운 건 없었다.


그때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준비하며 스스로 했던 다짐이 있다.


캐나다에서 지내는 동안만큼은, 남들 뒤만 따라가는 대신 내 마음 가는 대로 해보자.
지금까지 이렇게 산 적 없었잖아.

인생실험 해본다고 생각하고,
딱 6개월만 이렇게 살아보자.



그렇게 나는 밴쿠버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살면서 자취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온실 속 캥거루족에게, 캐나다 반년살기는 도전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도 구해본 적 없는 집을 캐나다 밴쿠버 어딘가로 구해야 했고 (집이라 쓰고 방이라 읽는다), 내게 익숙한 은행이 아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은행에 가서 ‘지금 네 신분으로는 여기서 계좌를 열 수 없어!’ 하며 거절당하지는 않을까 긴장한 상태로 길게 늘어선 줄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으며, 늘 타던 지하철 1호선이 아닌 바깥 풍경이 훤히 보이는 스카이트레인 엑스포라인을 타야 했다. 익숙한 거라곤 내 핸드폰 속 플레이리스트뿐, 그 외에는 모든 게 낯설었고 새로웠다.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을 벗어나는 순간, 불편함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겁도 없이 컴포트존을 벗어난 대가라고도 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그 오묘한 불편함이 스물넷의 나에게는 ‘오히려 좋아!’의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1.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자유


'아니, 저걸 들고 다닌다고?'


지하철 역에서 나를 스쳐 지나가는 남자의 가방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가방이 해져서 다 뜯어져 가는데,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하필이면 같은 날, 다 같이 내 눈에 띄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상태의 가방들이 연속으로 보였다.


‘여기는 낡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게 유행인 건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밴쿠버에서 좀 더 살아보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내 물건이니 내가 쓸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내 머리카락이니 내가 보기에 예쁜 색이면 되는 것이다.
-내 몸에 걸치는 것이니 내가 입고 싶으면 입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몰랐지만, 밴쿠버에서는 피부로 느껴졌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자유가.



2. 나이•지위•국적에 관계없이 서로 동등할 자유


영어는 존댓말이 없다. 호칭보다는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한국에서 20여 년을 살아온 내게, 어학원 선생님들을 그들의 이름으로만 부르는 건 도무지 익숙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teacher!’라고 하면, 장난스러운 어조와 함께 돌아오는 대답은 ‘then I will call you STUDENT. (그럼 나도 너 학생이라고 부를게.)’ 누구나 나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길 원했다. 여기서는 모두가 동등하다는 것이, 어학원 교실 안에서부터 느껴졌다.


뿐만이 아니었다. 이전까지 내게 교실이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비슷한 연령대가 모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달랐다. 콜롬비아에서 왔다는 미성년자 학생부터, 브라질에서 영어를 배우러 온 30대 변호사, 페루에 어린 자녀를 두고 단기 어학연수를 온 40대 부부, 그리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 인생실험을 하러 넘어온 20대 한국인(나)까지. 하나의 교실에 모인 각자의 배경은 너무나도 다양했다.


내가 있는 교실 안에서 나이, 사회적 지위, 국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경험하러 온 다 같은 사람들이었다.



3.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는 자유


컴포트존을 벗어난 대가로 불편함을 얻었지만, 그 뒤편에는 낯선 환경이 선사하는 도파민 종합 선물세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언어, 새로운 문화, 새로운 음식, 새로운 친구, 새로운 여행지. 나를 둘러싼 모든 게 새롭기만 했다. 온갖 새로움이 물밀듯이 쏟아지는 지금, ‘어학연수가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취업은 어디로 하지?’ 따위의 걱정은 할 여유도, 시간도, 그럴 마음도 없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외국인 친구들과 당장 이번 주에 참가할 어학원 액티비티 목록이지, 몇 개월 뒤 취업 준비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지금 이 순간을 살게 되었고,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온전히 내 삶에 집중하며 현재를 즐기는 카르페디엠' 마인드셋과, 오랫동안 속해 있던 무리에서 물리적으로 멀어진 것은 내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통째로 바꿔주었다. 한국에서 경주를 할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온몸으로 느꼈고, 거기에서 오는 기쁨과 감사, 그렇게 'Here and Now'를 충만하게 살아가는 선순환의 연속이었다.


그때부터는 남들과 나의 속도를 더 이상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길에 서 있고, 나는 내 앞에 놓인 길에 서 있다는 것. 삶은 누가 이기고 지는 경주가 아닌, 그저 각자의 트랙을 각자의 방식으로 가면 된다는 것.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할 것은 '뒤처짐'이 아닌, '삶을 타인과의 경주로 바라보는 마인드셋'이라는 것. 6개월의 인생 실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나는 이러한 깨달음이 영어보다도 가치 있는 배움이었다고 확신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한국 사회에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라고 말하는 스물여덟에 밴쿠버로 유학을 결심했다. 어학연수를 통해 '이제 나는 내가 정한 트랙을 내 속도로 걸어간다'는 다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나이를 이유로 유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봤는데,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 길로 와도 된다.' 라고 따뜻한 격려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캐나다 어학연수라는 경험이 있어 오늘 이 글을 쓰는 내가 있다. 어학연수는 내 인생에서 제일 잘 한 선택이 맞다.



오늘의 질문


Q1. 삶을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 준 전환점이 있나요?

Q2. 내가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은 무엇인가요?

Q3. 반대로, 가장 후회하는 선택이 있다면?




*오늘 글은, 이전에 발행한 세 개의 글을 토대로 일부 내용을 새롭게 구성했습니다:)


스물여덟, 유학 가기 좋은 나이 프롤로그 : 스물넷, 반항의 시작


스물여덟, 유학 가기 좋은 나이 Ep.7 : 어학연수 VS 유학, 어떻게 달랐냐면요


밴쿠버 어학연수 가이드북 Ep.1 : 해외살이를 결심한 달팽이들을 위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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