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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9. 올해 나를 가장 성장시킨 사건은?

2025년 이별 분석 보고서 제출합니다

by 버블리

지금껏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꼈던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인생에서 예고없이 찾아오는 불편함이나 괴로움을 직접 겪어내고, 그 뒤에 따라오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나에게 성장이란, 고통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번 화의 질문을 보자마자 떠올린건, 올해 내가 겪어낸 이별이다.


Self Q&A : 나 사용 설명서 10화는, 나를 성장하게 해 준 이별 이야기이다.




아래는 그간 나의 이별 이력이다.


2014


2019

2022

2025


이처럼 나에게 이별은, 몇 년에 한 번씩 발생하는 간헐적 이벤트다. 하지만 올해는 예외였다. 한 해 동안만 두 번을 헤어졌으니까. 중간에 있었던 재회 가능성까지 포함하면, 체감상 세 번이다.

2025년, 진짜 무슨 일이지?





A. 이별 시기 및 연애 기간


첫 번째 이별 시기 : 2025년 1월

[2019년 9월 ~ 2025년 1월]

약 4년간 연애


두 번째 이별 시기 : 2025년 7월

[2025년 5월 ~ 2025년 7월]

두 달간 연애



둘 중에서 나를 성장시킨 건, 두 번째였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찍혔을 수도 있다. 몇 년을 함께 했던 사람과의 긴 연애가 아니라, 고작 두 달짜리 연애의 끝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는 뜻이 되니까.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1월에는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사랑이 다 해서 끝난 거라면, 7월은 아직 내 마음이 남아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제는 상대에게 마음을 진짜로 열기 시작한 시점에서) 끝났다는 점이다.



B. 이별 후 내 상태


머리는 이게 맞다고 하는데도 마음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성과 감정의 불일치에서 오는 괴로움은 글로 풀어내기도 어렵다. 누구든 붙잡고 털어놓기라도 하면 괜찮아질까 싶었지만, 마음이 힘들 때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헤어지고 처음 몇 주는 회사와 집만 오고 가길 반복했다.


나는 내 안에 그렇게나 많은 감정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세상의 모든 감정을 최대치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지만, 이런 걸 원했던 건 아닌데.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힘들기만 하는 건 억울한데? 뭐라도 남기고 넘어가자.

*8화에서 언급했던, 내가 삶에게 먼저 묻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나는 나를 힘들게 한 7월의 이별을 정면으로 마주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심적으로 매우 위안이 되는 몇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C.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우선, 복잡하게 엉켜있는 마음부터 풀어야 했다. '힘들다' 는 실체 없는 생각 대신, 당시 느끼는 모든 감정에 이름을 붙였다. 그중, 내가 가장 깊고 진하게 느끼는 감정이 뭔지 들여다봤다. 원망, 미움, 보고싶음같은 원초적인 감정보다도 컸던 건, 실망과 아쉬움이었다.


단순히 만난 기간이 짧아서, 못 해본 게 많은데에서 오는 실망감과 아쉬움은 아니었다. 여기까진 이성으로 충분히 조절할 수 있었으니까.


그럼 그때의 나는, 뭐가 그렇게 실망이었고 또 아쉬웠을까?




‘내가 보는 나’ 에 대해 굳어져 있는 인식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한 가지는 나는 누군가에게 쉽게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성향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올해 여름, 나답지 않게 이런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내가 한번 기대 볼 수도 있겠다고. 나만큼 단단해 보이는 상대의 겉모습을 보고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혼자서 더 잘 해요'의 자아로 살아온 나에게, 이런 종류의 기대감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두 달 만에 관계가 끝나버리면서, 그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내게는 정말로 드물게 드는 감정인 '의지 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상실감이 몇 배로 더 크게 느껴졌다.




동시에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지금 상실감을 느끼는 건 사람 자체일까, 아니면 혼자 기대했던 가능성일까? 가능성은 말 그대로 가능성일 뿐인데, 나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걸 붙잡고 있었던 게 아닐까?


무겁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순간이었다.



D. 결론


이별 회고를 통해, 나는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1. 내 안에는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타인에게 쉽게 의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안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었던 게 아니었다. 나는 상대에게 기댈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면 기꺼이 기대고 싶은 사람이었다. 단지 그 마음이 들기까지가 어려웠을 뿐. (최소한 나만큼은 단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마음 편히 기댈 수 있을 것 같다.)




2. 어떤 상황에서도 존중을 잃지 않았다.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내가 실수했을 때나 그가 실수했을 때, 둘 중 누구 하나의 가치도 떨어지게 하지 않았다. 상대에게 울고 불고 매달리거나, 반대로 상대를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드라마’는 관계가 끝이 나는 순간까지도 없었다.


역설적이지만 그 관계에서 걸어 나오기로 한 7월은,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이 정점을 찍고 있던 때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는 게 우선이라는게, 힘든 와중에 위로가 됐다.



무엇보다 가장 위로가 된 건, 이어서 나오는 세 번째 깨달음이다.




길었던 연애가 끝나고,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앞으로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두 달 연애가 끝나고 알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따뜻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오늘의 질문


Q1. 여러분이 삶에서 성장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Q2. 이별을 통해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Q3. 여러분만의 이별 극복 방법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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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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