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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 Jul 25. 2024

팀장님과 사탕

단편

팀장님을 앞에 두고 누군가 소리친다. 한 3분 뒤면 어깨를 한껏 내린'척'하면서 자리로 돌아달그락거리며 사탕을 입에 욱여넣을 것이다. 아, 그가 걸어온다.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팀장님"

"..."

"오늘은 무슨 맛 드세요?"

"몰라. 너도 하나 주랴?"

"많이 드세요"

"..."


쓱 한번 쳐다보더니 사탕을 으적으적 씹어먹으며 나간다. 분명 담배 피우러 나가는 게 분명하다. 맨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땐 사탕을 달고 다니는 팀장님을 보며 금연 중에 입이 심심해서 저러는 것인가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니 알겠다. 팀장님은 지독한 골초에 사탕광이라는 것을.


대략 10분 정도 지났나, 그가 돌아와서 우리에게 거래처 A의 연락처를 받아간다. 거래처 A 담당인 박대리가 사색이 되어 경위를 계속 묻는다. 늘 그렇듯 별 것 아냐,라고 박대리 어깨를 툭툭치고 자리로 돌아가 양복 재킷을 들고 다시 온다.


"나 거래처 갔다가 직퇴할거야. 너네도 알아서 퇴근들 하고 내일 보자."


씁쓸한 담배냄새와 달달한 사탕냄새가 함께 풍긴다. 묘하게 어울리는 듯 하지만 그냥 우리가 팀장님의 저 냄새들에 익숙해진 것 일 뿐이다. 박대리는 거래처 A에 전화를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고민하다 결국 그쪽 회사 막내 격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듣는다. 제가 말했던 건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거 아시잖아요, 아니, ○○님,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요... 사과를 하려면 사과를 하고 변명을 하려면 변명을 했으면 좋겠다. 이도저도 아닌 스탠스를 취하는 그에게 제삼자인 내가 봐도 질리는데 그들은 더 심하겠지.




 집에 가기 싫은 날이었다. 날은 너무 좋고 친구들은 바쁘고 만날 사람도 없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일부터 거래처 A 관련해서 일이 쏟아질게 뻔해서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합지졸에 팀워크라고는 하나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팀인데,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고 달려간 팀장님이 조금 밉기도 했다. 일 내용을 미리 알았더라면 이런 고민도 조금 덜 해도 되지 않았을까.

 의자에 한껏 기대서 눕듯 앉아있다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집에 가야지. 이렇게 걱정을 가득 처먹어도 밥을 달라고 보채는 위가 눈치 보여서 더 이상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집어넣는 순간 팀장님 자리가 눈에 보였다. 갑자기 사탕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사탕이길래 사람을 저렇게 단내 나는 지경까지 만드는지, 담배냄새와 원래 한 몸인 것처럼 맴도는 그 향은 어떤 맛인 건지 호기심이 동했다.

 종합과일맛이었다. 틴케이스 안에 들어서, 사탕 표면에 흰 가루가 뿌려져 있는 그 사탕. 충동적으로 케이스를 열고 사탕을 하나 입에 집어넣었다.

달다.


 신기할 만큼 사람이 가득 찬 지하철에 어떻게든 몸을 욱여넣고 퇴근했다. 핸드폰을 볼 공간조차 없어 앞으로 맨 백팩을 끌어안고 공허를 주시하는 20분, 그나마 숨통 트이는 15분을 지나 동네에 도착했다. 사탕은 이미 다 녹아 없어지고 입 안에 찝찝한 단맛만 남았다. 입이 계속 달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편의점에서 맥주나 한 캔 사려고 했다. 사실 맥주 생각이 없었는데, 입이 다니까 목이 탔다. 뭐라도 집어넣고 싶었다. 편의점이 가까워진다. 야외 테이블에 누가 앉아있네. 편의점 문을 무의식적으로 밀으려다 '당기시오' 스티커를 보고 문을 당긴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이 계속 눈에 밟힌다.


"팀장님..?"


 내 목소리에 흠칫 놀란 사람이 뒤로 돌아본다. 맞네, 우리 팀장님.


"여기서 뭐 하세요?"

"너는 여기서 뭐 해? 아아, 집이 여기 근처지."

"아니 제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여기서 뭐 하세요?"


서로 눈이 동그래져서 물으며 자연스럽게 앞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새우깡, 찌그러진 맥주 한 캔, 아마도 반캔정도 남은 한 캔과 새거 두 캔이 있었다.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맥주 한 캔을 따서 준다. 받아서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입을 연다.


"집 근처에선 이렇게 못 있어서, 그렇다고 거래처 근처에서 이러고 있으면 그것도 이상하잖아. 그래서 딱 중간에서 내렸어."

"그러네요. 여기가 중간이긴 하네요."

"...."


침묵이 이어진다. 나는 맥주 몇 모금을 더 마시고, 새우깡 몇 개를 주워 먹는다. 마치 침묵이 아니라 나는 그냥 마시는 사람임을 어필하는 것처럼. 내 쪽으로 새우깡을 쓱 밀어주더니 팀장님도 맥주를 마신다.


"팀장님"

"음?"

"저 팀장님 사탕 하나 먹었어요."


눈썹을 치켜올려 눈을 크게 뜬 팀장님이 날 쳐다보다가, 사탕 이야기를 듣자마자 호탕하게 웃는다.


"하하하, 아, 내가 아까 하나 준다고 할 때 먹지 그랬어."

"그냥 갑자기 손이 갔어요."

"몰래 먹으니까 맛있더냐?"

"그냥 달던데요. 이거 왜 맨날 드시는 거예요?"

"달잖아."


쿨하게 대답한 팀장님은 다시 맥주를 들이켠다. 한 캔을 다 비운 듯 손으로 구기더니 나를 가만 쳐다보다 입을 뗀다.


"인생이 쓰잖아. 입이라도 달아야지."




 힘든 날이었다. 업무는 밀려오고 누가 해놓은 일을 다른 사람이 덮어씌운다거나 하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도 일어났다. 팀장님은 두어 번 불려 가서 큰소리를 듣고 돌아오고, 우리는 서류에 전화에 팩스에 깔려 지냈다. 매일매일 대략 세 시간쯤 자고 다시 출근해야 했다. 어떤 날은 단체로 숙직실에서 자기도 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계속 같은 말을 했다. 단내 난다고.


 정말 오랜만에 정시퇴근 한 날이었다. 들어가는 길에 저번 그 편의점이 보였다. 자성에 이끌리듯 들어가 나도 모르게 종합과일맛 사탕을 샀다. 편의점에서 나오자마자 케이스를 열었다. 케이스를 열자마자 날리는 하얀 가루가 옷에 조금 묻었다. 사람은 역시 안 하던 짓을 하면 안 되는 건가 중얼거리며 사탕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레몬맛이었다.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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