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시작은 아마 도쿄여행이었을 것이다. 다음날이면 떠나야 하고 그다음 날이면 출근해야 한다는 현실의 착잡함을 뜨거운 물로 씻어내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머리를 말리던 수건과 마침 깨져있던 손톱과 부주의한 나의 마음 모든 것이 들어맞아 손톱이 그대로 찢어지듯 깨져버렸다. 피가 났고, 아팠지만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았다.
너는 호텔 1층 편의점으로 뛰어가 사온 반창고에 정을 한 아름 담아 상처를 감싸줬다. 이 사랑을 떼고 싶지 않아 샤워할 때도 위생장갑을 끼고 했다는 사실은 아직까지도 비밀이다.
깨진 손톱이 삶에 위로가 됐다.
온전하지 않은 손톱을 쳐다보기만 해도 3박 4일의 도쿄가 눈앞에 펼쳐졌다. 공교롭게도 엄지손톱을 다친지라 타자를 치다가도, 핸드폰을 하다가도, 무언가를 건네다가도 나는 도쿄에 있었다.
- 손톱 괜찮아?
- 아프지도 않고 괜찮아. 이거 다 자라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한 두 달?
- 무슨 두 달은 두 달이야, 2~3주만 냅두면 다 자랄 거야.
아쉬웠다. 그래도 나는 손톱이 빨리 자라는 타입이 아니니까 한 달은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딱 2주 반 만에 손톱은 제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나의 20박 21일간의 도쿄여행이 끝나간다는 뜻이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몸에 상처를 하나 새겨오는 것으로 은밀하게 긴 여행을 했다. 그러나 연차 18개의 직장인에게 여행은 매번 허락되는 게 아니었기에 긴 여행을 끝내면 찾아오는 공허함과 허탈함에 잠식되곤 했었다.
날이 유독 좋던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간 가게가 굉장히 입에 잘 맞는 맛집이었고 언제나 주차장엔 자리가 한 자리씩 있었으며 도로에서는 깜빡이를 키는 족족 뒤차가 양보해 주었다. 너와 나는 이 정도로 운 좋으면 저녁은 설렁탕을 먹어야 되는 거 아니냐며 서로를 이첨지, 오첨지라고 부르는 시답잖은 농담을 건넸다.
이 날을 잊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번뜩이자마자 욕망에 휩싸였다. 그녀를 보내고 아스팔트에 넘어지기라도 해야겠다. 나는 흔한 중독 같은 건 아니니까, 내 손으로 상처 내는 건 좀 그러니까, 넘어지는 것 까지가 내 마지노선이었다.
하루의 완벽한 마무리까지 생각하고 나니 '완벽한 날'이 '완성'된 느낌을 받았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만족감과 행복감이었다. 이 행복감에 티가 났나 보다.
- 왜 갑자기 웃어?
- 아, 그냥. 좋은 날이라서.
언제부터 나를 쳐다보고 있었을까. 너와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내 추악한 욕망이 들킨 것 같았다.
내 완벽한 날의 완성은 너와 함께여서 완성인 건데, 너와 함께하는 이 순간을 순간이 아닐 때까지 가져가고 싶다고 한다면 나를 두고 도망갈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모를 만큼 숨겼다고 생각했다.
- 오늘 저녁 짭짤하게 먹어. 너무 싱겁다.
- 그럼 네가 간 맞춰주면 되겠다.
짧은 대화, 소소한 농담, 큰 애정. 완벽한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저물어야 했다.
조금 철 지난 노래를 흥얼거리는 너의 목소리 위로 클락션이, 그리고 또 클락션이, 그리고 파열음이―
몸이 기울어진다. 잔뜩 겁먹어 소리를 지르는 너의 모습이 보인다.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말하고 싶은데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를 않는다.
너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을 거야,라고 빈 진심을 쥐어짜 냈다.
들렸을까? 들었을까?
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 성재야
- 응..
- 너의 상처를.. 이해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