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본 건 그의 입사날이었다. 죽은 눈을 한 사람. 모든 신입이 열정과 패기로 빛이 날 때, 오히려 빛을 흡수하는 사람. 그래서 더 눈이 갔다.
참 이상했다. 그렇게 권태로워 보이던 사람이 모니터 앞에 앉은 지 하루, 한 달, 몇 개월씩 지날 때마다 점점 눈에 생기를 되찾아갔다. 성과를 내보였을 때 무수히 쏟아지는 축하의 말들에는 자동응답기처럼 대답하다 혼자 앉아있을 땐 약간의 미소도 보였다.
저렇게 웃을 줄도 아는구나.
사람을 이렇게 오래 관찰한 적이 처음이라 괜한 내적 친밀감이 쌓였다. 물론, 티 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정도의 거리감이 딱 좋다고 생각했다.
같은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야근하던 어느 날, 흡연구역으로 가다가 눈이 마주쳤다.
- 한대 필래요?
그저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당연하게도 같이 안 갈 줄 알았으니까. 잠깐의 정적에 민망함을 숨기고 몸을 돌리려는 찰나, 드르륵, 의자를 밀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예상 못했다.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던 그의 관찰일지에 예외케이스 3페이지가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날씨가 어떻네, 저녁은 어디 거가 더 맛있었네 하는 적당한 대화를 하다 자연스럽게 회사 근처 맛집 이야기로 넘어갔다.
- 저 골목 돌아서 콩나물국밥집 진짜 맛있는데. 가봤어요?
- 아뇨.
- 콩나물국밥 안 좋아해요?
- 아뇨.
- 아뇨밖에 못해요?
- 아뇨.
피식 실소가 터진 나는 그를 올려다봤다. 그도 분명 웃고 있었다. 뭐야 이 사람, 발광할 줄 아는 사람이었잖아.
그 이후부터 회사에서 정말 바빴다. 일은 일대로 해야 했고, 그의 관찰일기도 작성해야 했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쳐다봤는데 그 이후부터는 뭔가 달랐다. 분명 일할 때만 빛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모니터를 쳐다볼 때와 비슷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변화를 알아챈 건 나뿐이었다.
그가 없는 어느 회식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평가하는 걸 들었다.
조금 무섭지 않아? 사람이 조금 어두워 보여. 성격이나 그런 게 어두운 게 아니라, 그냥 표정이 너무 없으니까.. 일은 정말 잘하던데, 같이 프로젝트하기엔 좀..
그의 진가를 못 알아보는 그 사람들이 한심하다가도 고마웠다. 모든 이야기를 종합한 결과 나한테만 유들유들한 게 맞았다. 나한테만 부드러운걸 나만 알아챘다는 사실이 조금 웃겼다.
그 사람, 나 좋아하나 봐. 아니, 좋아하는 게 확실했다. 그런 눈을 하고 쳐다보는 건 나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다. 우리는 계속 일을 했고, 승진을 했고, 이 팀을 했고, 각자의 팀을 꾸린 팀장자리까지 갔음에도. 그래도 이거 하나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누가 봐도 놀랄 만큼 잘 차려입고 출근을 했다. 박팀장님 오늘 어디 가시나 봐요? 아 예, 소개팅이 있어서요. 소개팅이 있어서요. 소개팅이 있어서요.... 속으로 여섯 번 정도 곱씹은 다음에야 이게 현실임을 알아챘다. 조금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기판으로 만든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지만 저렇게까지 눈치가 없나 싶어서 약간의 울화가 치밀었다.
그다음 날부터 평소대로 돌아온 그를 매일 지켜봤다. 그렇게까지 차려입지 않은걸 보니 소개팅은 잘 안된 게 확실했다. 그래, 너를 알아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
기분이 좋아졌다. 기쁜 마음으로 흡연구역에 나갔더니 이내 그가 들어온다.
- 박팀장님!
- 어... 안녕하세요.
- 저번에 소개팅하신 건 잘 안되셨나 봐요?
- 예, 대차게 까였어요.
- 이유 물어봐도 돼요?
- 아..
조금의 정적이 이어졌다.
- 안광이 없대요.
조금은 창피한 듯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그가 웃겨서, 네가 그 여자는 나를 보듯 쳐다보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라서, 그녀는 너의 진가를 몰랐다는 사실이 웃겨서, 너를 알아보는 사람은 정말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기뻐서 한참 동안이나 웃었다.
웃으면서 슬쩍 본 그가 굉장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안광이 없대요?
- 그런 의미에서 오팀장님, 제가 안광이 그렇게 없습니까?
- 아닌데. 박팀장님 되게 반짝반짝한데.
실수였다. 나도 모르게 진심을 내뱉어버렸다. 그 이후 몇 마디 더 나누고 자리에 앉아서 조금 더 생각해 봤다. 네가 알아차리길 바랐지만 결국 너는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내가 알려줘야겠구나.
「반짝반짝한 이유 듣고 싶으시면 오늘 저녁 어때요?」
이유 따윈 없었다. 그냥 사실만 있었다. 네가 나를 반짝거리면서 쳐다보니까 반짝거리는 거지. 이 것 외엔 없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생각하다 저녁을 다 먹어버렸다. 술기운을 빌려 말해야지 말해야지 하다가 기분 좋게 취해버린 것 말고는 진전이 없었다.
이유를 묻지 않는 그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하고 조금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슬쩍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근데, 그가 나를 붙잡았다. 이렇게 관찰일지 예외 페이지만 쌓아놓고 또 본인만 모르려고 한다.
갑자기 억울해졌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꼭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관찰일지를 꺼내 그의 안광론을 펼치고 있었다. 시끄러운 가게만큼이나 우리의 거리는 좁아졌다. 그도 술을 조금 마셨는지, 약간은 풀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게, 너무 눈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