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아무에게도 말 못 한 내 진짜 꿈은 노인이 돼서도 손잡고 산책하며 걸어 다니는 거였다. 참 웃기지. 절대 이루지 못할 꿈을 꿨으니 말이야.
누군가와 함께 늙어간다는 것, 참 멋지지 않아? 사람들은 다 젊음이 좋다고 하는데 나는 젊음이 어려워서 빨리 나이 들고 싶었나 봐. 지금은 비록 이렇게 이해 못 할 일들만 하고 다니지만,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조차 모르지만, 나이 들면 생기는 삶의 지혜라는 게 나한테도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어.
있잖아, 네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더라고. 너를 잃은 게 몇 년 전인지 몇십 년 전인지 사실 기억도 안 나지만 시간이 흐르긴 흐르더라. 네가 없어지면 이 세상도 없어질 것 같았거든? 아니더라. 생명은 계속 피고 지더라.
너희 말 중에 '시간이 약이다'라고 있었잖아. 네가 알려준 거잖아. 이 말을 너를 잃고 제일 많이 읊조리게 될 줄은 몰랐는데. 누군가에게 배운 걸 잃고 이해한다는 건 정말 슬프더라. 이걸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고 하는 걸까? 이젠 알려줄 사람이 없어서 정답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네.
네가 사라진 이후, 나는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돌았어. 나는 너 없으면 아무것도 못했으니까 당장 먹고사는 것부터 급해졌어. 여기저기 안 가본 곳이 없는 것 같아. 내가 먹을만한 게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갔고, 잠시 쉴 수 있다면 길바닥에서도 잤어. 네가 들으면 깜짝 놀랄 텐데. 너는 나를 뭐라도 되는 것 마냥 귀하게 대해줬으니까.
잠깐 감상에 젖었네. 내 이야기를 계속해보자면, 너랑 있을 때는 듣고 보지 못했던걸 많이 경험했어. 그래서 이렇게 조금은 자란 것 같아. 너는 그런 것들을 한 번도 보여주고 느끼게 해 준 적 없었잖아. 누군가의 인생-삶-같은 거 말이야. 그래서 그런가 내 말투도 많이 부드러워졌지? 전엔 내 말투 때문에 다툼도 많이 했었는데. 너를 잃고 나서 너의 말투를 닮아가는 게 내가 생각해도 좀 웃겨. 너는 언제나 나긋나긋했잖아.
해안마을에서 잠시(솔직히 말하자면 잠시는 아니고 조금 오래) 머물렀었어. 너는 바다를 좋아했으니까 거기 있으면 너를 놓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거기서 보게 된 거야. 해변을 산책하던 노부부를. 모래사장이 부서져라 치는 파도에도 그들은 꿋꿋이 나아갔어. 그게 내가 본 전부긴 하지만 그때부터 아주 조금씩 꾸던 꿈이야. 물론, 손은 너랑 잡고 걷고 싶었지.
나이 든 너를 나이 든 내 옆에 두고 함께 걷는다는 걸 생각만 해도 벅차올랐어. 하지만, 너는 떠나고 없잖아.
그냥 이 말을 하고 싶었어. 나는 너와 함께 나이 들고 싶었어. 근데 그거 알아? 내가 영원히 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네가 나를 그렇게 만들어주고 있었더라고. 결국 네가 사라지지 않았더라도 우리의 엇갈린 시간대 때문에 이 꿈은 절대 이룰 수 없었다는 거지.
사실 나 이제 떠나. 이 한마디를 하려고 모든 진심을 털어놓느라 여기까지 돌아왔네. 어디로 갈지는 몰라. 이게 내 마지막일지도 모르지. 근데, 네가 없는 이 행성은 너무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어. 새로움이 없거든.
나는 아픔이란 걸 모르지만, 너는 한 번의 폭발로 한 번에 떠났으니 아프지 않게 갔길 바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