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러기다> 3화 한 달 생활비는 3500위안
기러기 생활 3일차.
오늘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기러기 생활이 어려운 점은 살림이 둘로 갈린다는 점이다.
베이징 집은 계약 기간이 임기에 맞춰 있어 중간에 계약을 해지하면 야진(押金.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
처음엔 혼자서 큰 집에 덩그러니 남는 게 싫고, 돈을 아껴볼 요량으로 여기저기 집을 보러 다녔다.
세가 지금 사는 집의 절반 정도인 수준에서 원룸을 찾아봤는데 야진을 떼이면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임기가 5개월 반 정도가 남아서 마지막 달 임대료 보름치를 더 내야 하고, 계약 기간도 짧아 팡둥(房东.집주인)들이 계약을 꺼리는 것도 난관이었다.
베이징에서는 보통 1년 이상 임대 계약을 하고, 계약 기간을 못 채우면 계약서를 쓸 때 미리 내는 야진을 집주인이 가져간다. 일반적으로 야진은 한 달 치 임대료다.
여하튼 이런 이유로 지금 사는 집을 나 혼자 '전유'하게 됐다.
집을 넓게 쓰면 3년 넘게 베이징에 살면서 늘어난 짐을 급하게 처분하지 않아 좋다.
또 베이징에 와서 한 번의 이사 뒤 2년 반 넘게 살았던 익숙한 공간에서 생활하니 편하다.
문제는 돈이다.
한국으로 돌아간 식구들은 처가에서 생활하지만 역시 생활비라든지 집세를 일정 부분 부담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세 식구가 반년 가까이 얹혀살아야 하기 때문에 주객이 전도된 거나 마찬가지 상황이다.
한마디로 '두 집 살림'을 하게 된 거다.
집세에 대한 뜻밖의 지출은 내 생활비에서 충당해야 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여기서 줄인 만큼 저기서 생활이 수월해진다.
록수와 내가 고심 끝에 정한 내 한 달 생활비는 임대료를 제외하고 3,500위안. 한국 돈으로 60만 원이었다.
적다면 적을 수 있고, 많다면 많을 수 있는 금액이다.
록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한 번에 반년 치 생활비를 건네주고 갔다.
경제관념이 투미한 나는 뭉텅이 돈을 받아 들자마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간 소비 습관을 돌아봤을 때 무턱대고 써대다가는 석 달도 안 돼서 다시 손을 벌려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혼자 남게 된 첫날밤 볼펜을 들고 식탁에 앉아 가만히 지출 항목을 떠올리며 예산을 세웠다.
일단 큰 집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전기세, 가스비, 수도세로 1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나갔다.
여기에 기름값과 교통비가 10만 원, 테니스 동호회와 각종 모임 회비 10만 원을 제하니 30만 원이 남았다.
여기까지 써 내려간 뒤 '이 정도면 할 만한데'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뭔가 큰 덩어리 하나가 빠진 것 같다는 찝찝함이 밀려왔다.
한참을 낑낑대다가 머리를 스치는 두 글자에 나는 절망했다.
내 머리를 스친 두 글자는 바로 '식비'였다.
음식 책까지 내며 맛객을 자부하는 내게 가장 큰 지출이 바로 식비다.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집밥 비율을 아무리 늘린다고 해도 30만 원으로 한 달을 살기는 빠듯해 보였다.
물론 외식과 술자리를 줄이면 전혀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귀임 시기가 다가오면 술자리가 느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한참 앉아서 고민을 해봤지만, 아직 살아보지 않아서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잘못하면 석 달 만에 '추경'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귀임하면 살림에 차에 살 집까지 마련해야 하니 흥청망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 두 집 살림과 애들 교육비도 중국보다 더 들어갈 것을 예상해 정한 생활비였다.
머리만 싸맨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일단 한 달을 살아보고 줄일 부분을 줄여 보자고 생각했다. 결론을 내리고도 한참 이면지에 써 내려간 예산을 멍하니 쳐다보다 쓰레기봉투에 던져 버렸다.
이러다 정말 쓰래빠를 찍찍 끌며 편의점에서 소주와 새우깡 사 들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스테레오 타입 기러기가 되는 게 아닐까.
그때부터였다. 내가 안방과 화장실 불을 끄고 다닌 것은.
오늘 밤에는 아파트 화단에서 벽돌이라도 하나 주워다 좌변기에 넣어야겠다.
이제부턴 티끌 모아 태산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