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태도를 돌아보는 시간
학교 앞 5분 거리에 위치한 아파트, 빠르게 달려가면 3분 만에 등교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각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복창이 터질 것 같다. 집 앞까지 가는 것도 한나절이 걸린 듯한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서 학교까지 가는 길에 아이는 왜 이리 볼 것이 많은지, 맨날 보는 것도 아이에겐 특별히 보이는 건지, 그저 학교가 가기 싫어서 그런 건지...... 아이가 학교까지 가는 길은 참 멀고도 험하게 느껴졌다.
1학년이면 학교 가는 게 즐겁다 못해 안달이 날 정도로 신날 텐데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지각할까 노심초사 아이를 보채고 끌고 가야 하는 일은 엄마로서 여러 가지 자괴감이 들게 만들었다. 아이가 가고 싶지 않은 학교를 이렇게 억지로 보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기도 했다.
아이가 스스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자발성과 자립심을 길러주겠노라며 육아서적을 읽고 생활에 적용하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건만... 그런 자발성과 자립심은 온대 간데 없이 요즘의 아이는 무기력만 남아있는 듯했다.
학교가 우리 어릴 때와는 다른 환경이다. 특히 코로나로 학교의 일상은 나에게도 낯설었다. 짝꿍과 가림막은 물론, 대화도 금지, 쉬는 시간 운동장 사용도 불가, 급식 시 대화도 불가였다. 이런 답답한 생활을 1학년이 감당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아이가 학교 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에 한숨이 쉬어졌다. 이제 1학년인데 고3까지 다녀야 할 학교를 벌써부터 가기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막막한 기분도 들었다.
어릴 적부터 자연육아를 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라 그런지 좀 더 자유분방한 환경을 원했다. 그리고 결국은 '학교 가기 싫어'를 넘어, '멍 때리면서 왜 학교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에 나는 무언가 대안이 될 만한 것을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알게 된 농촌유학.
코로나 시대에도 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운동장도 이용할 수 있고, 공교육이지만 지역의 자연조건을 활용해서 특성화 교육까지 진행하는 농촌의 학교들, 그곳으로 유학 아닌 유학을 가는 것이 농촌유학이다. 우선 당장 학교를 대면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고, 도시와는 달리 적은 인원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맘에 들었다.
농촌학교를 체험하고 오는 날 아이는 하루 종일 종알종알 학교에서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학교 다니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였다. 이렇게 학교 생활이 재미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이는 흥분했고, 친구들의 이야기부터 선생님의 이야기 그리고 쉬는 시간의 이야기까지 재잘재잘 끝이 없었다.
"친구들과 마스크만 쓰면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운동장에서 놀 수도 있어" 흥분하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 발산되는 눈빛이다. 눈이 반짝인다는 표현은 이때 쓰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릴 적 학교 끝나고 놀이터 구름사다리에 매달려 친구들과 해가 질 때까지 함께 놀던 그 순간의 기억들이 오버랩되었다. 아이에게도 학교가 그런 좋은 기억과 추억이 많은 공간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우리 아이가 무기력하다고 느껴지나요? 아니면 학교 생활에 전혀 흥미가 없나요? 이럴 때 한 번쯤 " 농촌유학"에 대해서도 아이와 함께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 아이의 경우, 자연을 좋아하고 곤충을 잡고 관찰하는 것도 워낙에 좋아하는 아이였기에 더 잘 맞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환경의 변화가 때로는 아이들에게 여러모로 자극이 되고 새로운 경험 자체가 아이의 또 다른 관심사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아이가 꼭 무기력하고 자발성이 없어질 때만 농촌유학을 고려하라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생활에 잘 적응하고 지내지만 어린 시절 좀 더 많은 경험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환경적 장치들을 해줄 수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부모인 나다. 막상 처음 농촌유학을 올 때는 내가 많이 지치고 피곤하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도시의 생활이 워낙에 익숙했고, 늘 도시에 살았기에 "바쁘다"가 당연했다. 그런데 막상 농촌유학을 오고 나니 내가 많이 지치고 힘들었었구나, 내 삶의 기준이라는 것이 없이 타인의 기준에 내가 휩쓸려 그렇게 휘둘리고 힘겨워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피곤한지 무엇 때문에 힘겨웠는지 인지조차 못하고 지냈을 만큼 내 마음을 다독이며 지낼 시간이 없이 몰아붙이면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론 조용하고 적막한 농촌의 풍경이 낯설기도 하지만, 자연을 가까이 두고 사는 농촌의 삶이 소박하고 풍요롭게 느껴지는 순간들을 경험한다.
농촌유학을 해보고 나서야 느끼는 것인 만큼 부모들 스스로 자각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자신을 잘 들여다보는 노력과 알아차림을 시도해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이들의 싫어요'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공부가 싫어서 일 수도 있고, 친구가 싫어서일 수도 있고, 선생님이 무서워서일 수도 있고, 물론 아이의 감정 변화에 따른 변덕일 수도 있다. 오늘은 너무 좋다가 또 내일은 너무 싫어지는, 그러나 적어도 그 순간 '아이의 싫어요'의 이유는 물어보고 가만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부모들에겐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을 해주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엄마라는 이름, 아내라는 이름, 딸이라는 이름, 직장 내에서의 역할까지 수많은 역할 가운데 정작 본인의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 한 번쯤 물어보면서 지치고 버티기 힘든 상황까지 와버리기 전에 환경의 변화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특히 재택근무가 가능한 상황이라면 한 번쯤 수고스럽게 이런 변화에 발을 담가보는 시도를 응원하고 싶다.
농촌유학이라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하기로 크나큰 결단을 해도 그 과정 하나하나가 사실은 손품 발품이 들며, 뭐하나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한마디로 녹록하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와 내가 조금 더 자유로운 환경과 다채로운 삶의 경험을 할 수 싶다면, 또 해보지 않으면 전혀 몰랐을 삶의 형태를 살아볼 수 있다면, 한 번쯤 도전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