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그 존재에 대해서

사브작 사브작 자란다.



미칠 것 같다. 적막함과 고요함이 나에겐 외로움과 괴로움으로 달려들었다.
몸도 고되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버티기가 힘들었다.
일상을 그냥 살아지는 것 마냥 살고 있지만 사실 몸이 허깨비 같은 상황이었다.
고통에 좀 무딘 편이라 아파도 잘 견디는데 육체적 고통이 아닌
정신적 고통은 이겨내려 해도 탈출구가 없이 느껴졌다.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 내가 느꼈던 어느 날 밤의 기억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벅차고 누구 하나 도와줄 수 없는 현실과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바쁜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혼모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러나 싶은 신세한탄 그리고 무엇보다 딩크였던 나의 정체성을 반하는 지금의 상황이 나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거기에 둘째라니 이건 진짜 미친 짓이었다. 둘째 육아만큼은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호언장담한 사기꾼에게 당한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돈이야 잃으면 그만이지만 아이는 그럴 수도 없었다.


여러 가지 원망과 힘듦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기억으로 버무려진 어느 날 밤의 기억이다. 그렇게 나는 둘째를 가졌고 키웠다. 여전히 육아는 어려웠고 독박 육아가 원래 정상인 것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질려버렸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랐고 나 역시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 혹은 그 이상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 그래도 여전히 육아는 어렵고 힘들었다.


그리고 그 죽을 것 같은 순간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어느새 아이들은 많이 자랐다. 딸아이의 재롱에 웃음이 나는 요즘이다. 사실 둘째 아이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둘째 갓난아이일 때 육아 우울증에 시달리던 나는 아이를 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엄마로서 객관적인 모든 것을 하면서도 정작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남편이나 시댁, 친정에서 보기엔 그냥 원활하게 돌아가는 가정생활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남편에 대해 불신감이 커져갔고,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에 더 시달려야 했다. 거기에 나의 행복은 없었다. 내 마음을 터놓고 쉴 만한 정서적 공감과 공간이 없었다. 그 당시 나의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이 아이에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둘째 아이에게는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다.


또 한편으로는 육아가 치가 떨리게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에는 둘째를 낳은 게 나의 발목을 잡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고개를 쳐들기도 한다. 둘째 아이의 존재가 아니라 나의 선택에 대한 후회, 혹은 나의 전적인 결정사항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대한 후회이다. 그때는 몰랐다. 육아는 남편에게는 한 다리 건너의 일인 걸…

brothers-457237_1920.jpg Image by sathyatripodi from Pixabay

그렇게 처절하게 둘째를 낳고 기르는 요즘 가장 많은 웃음을 선사하는 것은 둘째다. 물론 이때의 첫째도 이만큼 예뻤을 거고 아마도 더 많이 사랑받았을 거다. 아니 그 이상의 관심과 애정 대상이었다. 그때는 나 역시도 아기 엄마는 처음이었기에 그만큼 느낄 줄 몰랐던 것이다.


둘째는 지금 5살, 가장 애교도 많고 예쁜 짓도 많이 하는 때이다. 둘째가 딸이기도 하고 어릴 적 나를 많이 닮아서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나의 어린 시절이 보일 때 감회가 새롭다. 양손에 닭다리를 들고 뜯어먹는 건 지금도 아빠가 나를 회상하는 장면 중 하나다. 이런 모습이 둘째에게 포착되는 순간, 우리 엄마가 나를 이렇게 엄마 미소로 키웠겠구나 하면서 엄마가 떠오르기도 한다.


둘째는 눈치도 빠르다. 첫째가 혼나는 순간이면, 어느새 방 안으로 들어와 소리 내어 책을 읽기도 하고 엄마의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은 때엔 와서 볼에 살포시 키스를 하기도 한다. 또 오빠랑 싸울 때는 세상 두려울 것 없이 싸우면서도 오빠를 챙기는 순간에는 더 없는 아량을 베풀기도 한다. 그런 둘째를 보고 있노라면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인생에 정답이라는 것이 없지만
나의 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기억과
요새 가장 웃음을 많이 주는 순간이 너라는 사실이다.


가끔 첫째를 낳고 둘째를 고민하는 친구나 주변 엄마들에게 나는 여전히 둘째는 말리는 편이다. 아이의 존재 가치는 논외로 하고 철저히 엄마 중심의 입장에서 육아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이기도 하고 아이를 전적으로 좋아하는 엄마라면 입장이 다르지만 긴가민가 혹은 도와줄 여력이 없이 독박 육아가 눈앞에 그려지는 경우에는 도시락을 싸다니면서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둘째가 그렇게 예쁘다면서 혼자만 둘째 낳고 뭔 소리냐? 하실 것 같다. 맞다. 아이가 예쁨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자신의 상황을 고려하고 계획하는 것이 많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집 둘째가 어쩌면 딸이라 지금의 마음 상태가 전개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동성 친구 한 명을 확보한 느낌이라고 할까? 내가 지금 엄마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는 우리를 봤을 때 딸이랑 나 사이도 그런 관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육아의 시간에 숨통이 턱턱 막히는 순간들도 있다. 첫째 하나였으면 홀가분할 수 있는 순간에 “엄마 다 쌌어” 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아직도 화장실로 소환된다. 그러나 그렇게 조금씩 둘째가 자라나고 있다. 혹시나 이런 육아에 부적합한 엄마의 버거움을 알아서 그런지 유독 더 빛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그렇게 둘째는 사브작 사브작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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