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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센치페이퍼 May 07. 2019

유학생, 한국 시험에서 좌절을 경험하다

유학생, 한국 시험에서 좌절을 경험하다
문법 학습이 필요한 이유


몇 년 전 이른 오후, 한 어머님이 학생을 데리고 학원을 방문했다. 엄마는 상기된 얼굴이었고 학생은 풀이 죽은 기색이 역력했다. 중간고사 성적이 나온 시점이었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중간고사를 망쳤구나, 얘야···’ 자리에 앉자마자 어머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편의 직장 따라 태국에 3년 반이나 살다 왔다고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에 가서 중학생이 되어서야 돌아온 셈이다. 아이는 3년 반 동안 국제 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학교에서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정규 수업을 들었고, 그 이후에는 방과후 교실에서 여러 활동을 하면서 5시까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방학 때도 영어로 진행되는 각종 현지 캠프에 꾸준히 보냈다고 했다. 


자식에 대한 애정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니 영어를 잘하는 친구였다. 영국식 억양이 살짝 섞인 고급스러운 느낌의 발음에 전반적인 리딩 실력도 좋았다. 무엇보다 주어진 텍스트를 읽고 전체 내용의 요점이나 주제를 묻는 문제는 고등학교 수준의 문제도 거뜬히 풀어냈다. 그러나 그날 학생 엄마가 들고 온 성적표 속 숫자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처참한 점수였다. 


“아니, 다른 과목은 몰라도 영어 하나만큼은 믿고 있었는데 너무 충격적입니다.”라고 말하는 어머님의 얼굴에 실망과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차를 한잔 대접하고 숨을 좀 고르게 한 후에 천천히 말씀드렸다. 


“우진이(가명)는 영어를 아주 잘합니다. 태국 국제 학교에서도 영어뿐 아니라 모든 과목에 걸쳐 교육을 분명 아주 잘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중학교 영어 내신 시험은 그 유형이 있고 거기에 맞는 준비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진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영어 문법 학습입니다. 중학교 내신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독해 실력만을 테스트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학교는 교과서 지문 내에서 출제하고 학교에 따라 추가 지문이 있기도 하지만 그 역시 시험 전에 미리 다 제공이 되는 자료들입니다. 학생 입장에서는 처음보는 지문이 거의 없는 그런 시험이지요. 학교 시험지를 가지고 오지 않아 틀린 문제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다음 중 그 용법이 다른 하나는?’이라든가 ‘다음 중 문법적으로 틀린 것을 모두 고르시오’ 이런 유형의 문제를 틀렸을 것입니다.”라고 했더니 어머님이 얘기 중에 아이에게 그런 문제를 틀렸냐고 물었고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차분히 계속 이어 나갔다. “우진이는 문법 학습이 필요합니다. 말로 하는 의사소통과 글을 읽고 줄거리나 핵심 내용을 파악하는 것으로 끝내면 안 되고 영어 문장 안에서 각 문장들의 문법적 쓰임과 문장 구조를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고등학교에 가서도 내신과 수능 모두 별 무리 없이 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영어에 노출이 아주 많이 된 상태고 어휘력 또한 좋으니까 큰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차근차근 해나가면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진이는 학원에 등록했고 다음 기말시험에서는 90점을, 한 번 더 방학을 거치고 그 다음 시험들은 다 맞거나 하나 정도 틀리는 영어 고수가 되었다. 



솔직히 말해 이런 유형의 학생은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아주 고마울 따름이다. 이미 리딩이나 스피킹 등 언어를 익히는 데 필요한 것들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법이라는 터치만 살짝해주어도 쉽게 실력을 키우고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영어를 학교 내신 성적이나 수능 점수를 내는 공부가 아니라 아이의 미래를 밝혀주는 하나의 도구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러나 솔직히 그럴 수 있는 학부모가 얼마나 될까? 과연 시험에서 자유로운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을까? 현실로 돌아와 보면 늘 이야기는 좀 다르다. 


자유학년제를 시행하는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나면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난관이 하나 있다. 학교 내신 성적이다. 최근 입시 트렌드는 학교 성적을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 내신 성적을 보지 않고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교는 거의 없다. 영어 성적이 중하위권에 머물거나 공부를 한다고는 하는데 진척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의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하다. 먼저 욕심을 버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만약 한 달 만에 이렇게 공부하면 성적이 오른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기꾼일 가능성이 크다.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이 글은 <우리 아이 영어, 불안한 엄마에게>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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