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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Sep 11. 2019

삶도, 사랑도 취향의 문제라

취향이 삶과 사랑을 만들어 간다.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놓은 나의 책장,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취향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기준이다.

보통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집합을 취향이라 부른다.

 취향은 우연히 발견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보다는 깨달음에 가깝다. 살아오는 동안 내려왔던 수많은 선택과 결과가 취향을 형성한다.

 

어느 날 문득 행동이나 선택의 특정한 공통점을 알게 된다. 그렇게 서서히 자신이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타인이 가진 특정한 취향이 아닌, 취향을 가지고 있는 그 자체를 부러워하고 질투했던 적이 있다.

스무 살이 갓 넘은 시절에는 옷을 보러가거나 화장품을 사러가도 선택이 쉽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옷과 화장품을 고르던 언니가 부러웠다. 나는 어려웠다. 내 취향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취향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취향이 없었다. 그 전까지 취향이 쌓일 정도의 경험과 연습이 전무했다.  


 나의 취향 대신 점원이 추천한 화려한 색조의 화장품을 사고 바로 다음날 화장하면서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걸 발견하며 후회하고, 여러 인터넷 쇼핑몰을 전전하며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사 입고 실패하면서 점차 내 취향을 형성하게 되었다.


 취향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빅데이터가 쌓였다. 서른이 넘은 지금에서야 타인과 나의 취향을 비교하거나 우위를 따지지 않고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취향을 밝히거나 말하는 것 역시, 이제는 부끄러워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다.

 이제 옷과 헤어스타일은 물론이고, 내가 사용하는 것,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까지 나의 취향이 반영되지 않는 부분은 없다. 나와 관여된 모든 것들은 취향을 통해 꼼꼼하게 고르게 되었다.






 일상생활에 취향이 미치는 영향이 이정도인데, 내 마음을 주고 사랑할 사람을 고를 때는 오죽할까?

사랑이라는 강력한 변수가 개입되기는 하지만, 역시 나의 취향이 반영된다.


 스무 살 이후로 몇 차례 연애를 하는 동안 이성에 관한 취향 역시 부지런히 쌓이고 바뀌었다. 외모를 보던 시선은 그 사람만의 분위기를 읽어보려는 것으로 대체되었고, 학벌이나 능력을 계산하던 습관은 이제 그 사람의 지혜로움이나 이해심의 깊이를 가늠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내가 끌리는 이성 취향은 말이 잘 통하는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외모는 그 다음의 문제다.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도 들려준다면 마음을 확 여는 편이다. 지금의 남자친구도 이런 이성 취향이 통했던 경우다. 막상 연애가 시작되니, 이성취향을 제외한 그와 나의 취향은 정 반대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에 있어서 서로 다른 취향이나 입맛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과감하게 만나게 해주는 기폭제가 되었다. (물론 서로의 취향의 우위를 다투거나 평가하지 않고 존중을 바탕으로 차이를 인정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의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된 나의 취향 기록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가 스마트폰 메모장에 나에 대해 기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에 대한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하기는 어려워서 대화나 만남에서 찾은 내 취향을 정리해두었다는 이야기에 조금 감동 받았다.

 이후 나도 남자친구의 취향을 다이어리에 적어가기 시작했다. 서로 적은 것들을 나란히 펼쳐봤다. 우리는 둘 다 집순이, 집돌이라는 사실만 빼고 옷, 음식, 여행을 고르는 기준 등.. 대부분의 취향이 많이 달랐다.  


 그는 옷을 입을때 무난하고 베이직한 아이템을 좋아하는 반면, 나는 화려하고 유니크한 아이템을 좋아한다. 남자친구는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나는 책을 읽거나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한다. 입맛 역시도 비슷하다. 그는 건강을 생각해서, 저염 고단백식을 좋아한다. 반대로, 나는 당장 혀의 즐거움을 쫒는다. 


 맥주에서 우리의 취향은 확연히 갈라진다. 서른이 넘도록 맥주 문외한이던 나와 달리 남자친구는 맥주에 대한 사랑과 지식이 깊다. 남자친구는 에일을, 나는 그나마 라거가 입맛에 맞는다. 맥주를 마시면서 몇 번인가 남자친구는 나에게 그 둘의 차이를 열심히 설명해줬지만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취향은 다르지만, 우리는 여행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는 서로의 취향을 맛보려 기획중이다. 

남자친구는 유럽 현지 맥주를 맛보기 위한 세계맥주여행을 꿈꾸고 있다. 반면 나는 좋아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보기위한 세계미술사여행을 꿈꾼다. 만약 우리가 함께 여행을 간다면, 낮에는 그림을 보고 밤에는 후일담을 나누며 맥주 시음회를 할 것이다. 서로가 보지 못한 시선의 감동이나 재미를 나누며, 라거와 에일을 번갈아 마셔보며 웃음이 터질지도 모른다. 여행의 깊이와 재미가 깊어지면 깊어졌지, 얕아지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걸 좋아하지만, 사랑하는 한 서로의 취향 주위를 맴돌 것이다. 각자의 취향 공유 및 공통 취향 탐색 역시 지치지 않고 계속 될 전망이다. 어느 한쪽이 포기하지 않는 한, 서로 다른 두 취향이 만나 하나의 새로운 취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삶도, 사랑도 결국 취향의 문제였다. 밤사이 소리 없이 쌓인 눈처럼, 매일매일 쌓인 취향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때때로 취향은 세월에 따라 내가 변해가듯이 자연스럽게 변할 테지만, 점점 더 넓어지고 깊이를 더해갈 것이다. 세월과 경험의 숙성으로 더욱 진해지는 인생처럼, 더욱 농익은 취향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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