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대장님이 폭주한 날, 각자도생
몇 주 후면 하프 마라톤을 출전할 예정이라 산행 3일 전인 이번 수요일에 하프 마라톤 거리(21.095km)를 한 번 뛰었다. 그래서 근육에 피로가 안 풀린 듯해서 이번 산행은 걱정을 좀 했다. 게다가 산행 구간이 18km가 넘는 거리라서 힘들겠구나 하고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참석했다.
이번엔 아내도 막내와의 일정으로 함께하지 못해서 혼자길래, 오늘은 선두로 빨리 끝내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 선두대장님한테 누군가 ‘6시간에 끊어보시죠.’라는 도발을 했는지, 초반부터 무지막지하게 폭주해 나가셨다. 그래서 나는 선두와 500m 이상 거리를 둔 채로 혼자 산행에 임하게 되었다.
매번 후미 쪽에 있으면서, 여러 명이 함께 산행을 해왔었는데, 오늘은 정말 산행 전체 구간의 절반 이상을 완전히 혼자 걸었다. 종종 무전기로 울리는 대장단의 소통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만의 산행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는데, 반대로 후미가 인간미가 넘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고 가는 무전으로 기록을 하다 보니, 석병산을 앞둔 오르막에서 후미의 속도가 늦어지고 있었다. 나도 그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오랜만에 힘들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숨이 차게 오르막을 오르면서 무릎, 허벅지에 고통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소백산 비로봉, 지리산 천왕봉의 오르막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그곳들보다 힘들지는 않았다.혼자 산행을 하다 보니, 혼자 사진을 찍어야 되서, 아래처럼 자기애가 더 커졌던 것 같다.
한참을 혼자 가다 보니, 체조대장님과 체조대장님 아들이 쉬고 있었다. 오늘 아들의 신발이 어딘가 불편해서 체조대장님이 신발을 바꿔 신어주셨다는데, 발 사이즈가 270, 280으로 달라서, 작은 신발을 신고 가는 체조대장님의 발가락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사이즈가 10이나 작은데 바꿔 신어줄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체조대장님 말씀으로는 선두대장님이 자기들 둘도 버리고 폭주하셨다고 한다. 지금 선두엔 선두대장님 뿐이다. 그것도 여전히 안 쉬고 계시다. 오늘 진짜 신이 나신 듯 했다.
체조대장님, 겸도와 같이 산행하다가 물이 부족해서 물 지원이 필요하다는 날씨대장님 말씀을 듣고, 나는 석병산 앞에서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혼자서 석병산도 다녀왔다. 돌이 병풍처럼 펼쳐졌다고 해서 석병산이라고 하는데 절경이었다.
석병산에 다녀오니, 뒤에서 오던 대원들이 하나 둘 합류하였고,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다. 오늘 점심은 라면에 햇반으로 든든하게 채웠다.
석병산 이후로는 크게 어렵지 않은 하산길이었다. 오늘은 특별히 사고가 발생하거나 환자 발생 없이 무사히 끝났다. 선두가 폭주해서 선두와 후미의 차이가 3시간으로 컸지만, 후미도 원래 계획보다 30분이나 일찍 들어와서 모두가 잘했던 하루였다.
계절이 바뀌는 시점이라, 대원들이 물을 적당히 챙기지 못한 느낌이 있었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부터는 여름 수준의 식수를 챙겨 와야겠다.
[산행 기록]
2025. 4. 12 백두대간 39구간(백봉령~삽당령) / 난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