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새로운 시작'
무언가 모를 냄새에 흠칫 놀라 단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슬며시 떠 보니 아침햇살이 전날 새로 바꾼 흰 침대 시트 위에 내려앉은 냄새였다. 향긋하고 포근한 냄새에 눈을 뜬 것이다. 흰 시트 위로 그 따뜻함을 가까스로 끌어다 품어본다. 프랑스에서 나의 아침은 그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프랑스에 도착한 지 고작 며칠이 지났다. 걸어서 15분이면 마을 중심가의 웬만한 것들을 구경할 수 있는 이 자그마한 동네 지리 조차 다 외우지 못하였다. 아직 일상이라고 말 하기엔 모든 일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푸석해진 이마를 쓸어 넘기고 거하게 기지개를 켠 다음, 창을 열어 이불을 힘겹게 턴다. 그리고 이불을 정리 한 뒤 1층에 있는 주방으로 내려간다. 그곳에는 가족들의 분주한 아침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나를 반긴다. 누군가가 내린 커피를 빈 컵에 따르고 멸균 우유를 조금 넣는다. 식빵을 노릇하게 구워 잼이나 치즈, 버터를 발라 먹는다. 그리고 식탁 위 작은 라디오에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힘차게 쏟아져 나온다. 그래도 곧 저 말 들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그 날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다시 방으로 올라가 학교를 갈 채비를 한다. 준비가 끝나면 무겁고 어두운 색의 나무문을 열고 나간다. 그리고 나지막한 4개의 계단을 내려와 거리를 걷기 시작한다. 수업 시작은 오전 8시 35분. 학교까지는 걸어서 8분 정도의 거리라 늘 8시 10분 정도에 출발한다.
당연히 나만 정해진 시간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옆 집의 할아버지 또한 늘 같은 시간에 하루를 시작하신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 나올 때면 그는 늘 정원을 가꾸고 계신다. 그렇게 내가 그곳에 머무는 몇 달 동안 정원의 풍경은 늘 한결같았다. 한결같음은 누군가의 배려이고 사랑이니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정원에서 똑같이 하루를 시작하는 할아버지와의 인사는 또 다른 누군가의 똑같은 아침이었다.
사실 나에게 프랑스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도착한 첫날. 사정상 그 날의 밤을 동네의 어느 호텔에서 보냈어야 했다. 낡은 간판에 새겨진 별 2개의 자그마한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음침한 기운에 흠칫 놀랐다. 언제 사용되었는지 모르는 식기 구들은 거실의 한편에 놓인 식탁 위 열 맞추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불이 반쯤만 들어와 있는 자그마한 샹들리에는 전구의 불빛보단 마룻바닥 위로 드리운 그림자가 눈에 더 띄었다. 리셉션에서는 운이 좋게도(?) 전망이 가장 좋은 방이 공실이라는 말과 함께 방을 배정해주었다. 집에서 나온 지 24시간을 이미 넘어섰고, 무거운 이민가방을 지니고 있는 이에게 엘리베이터가 없는 호텔에서 4층을 배정받는 일이 호쾌하지만은 않았다. 방을 바꿔달라는 말을 꺼낼 기력조차 남지 않았기에 그대로 열쇠를 받아 방이 있는 층까지 겨우 올라섰다.
방의 창틀은 낡은 나무로 되어있었다. 어느 영화 속, 바람이 불면 녹슨 소리를 내며 삐걱거리던 그 겉창이 위태롭게 달려있었다. 이불은 헤어지고 그 위로 여러 장의 꺼칠한 담요가 놓여 있었다. 욕실은 성인의 몸 하나 겨우 넣을 수 있었고 온수는 지정된 시간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고된 비행 후라 더운물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빠른 속도로 차가운 물을 견디며 몸을 씻어내고 침낭을 꺼내어 그 속에 들어간 뒤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너무 오래 잔 탓인지 몸 마디마디가 굳어버린 것 같았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4시가 조금 지나간 시각. 커튼을 치지 않은 창은 거리의 빛을 고스란히 다 받아내고 있었다. 허름한 방은 거리와 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그 속에는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내가 침대 끝, 반쯤 걸쳐 앉아 있었다.
창 밖을 바라보니 밖은 고요하였다. 어두운 밤하늘에 걸린 손톱 달은 한국의 것 보다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요즘은 걷고 싶어 질 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곧 잘 파리의 밤거리를 방황한다. 물론 지금도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모든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새로운 세상 속에서 당당히 용기 내어보는 것을. 순간 저녁을 먹지 않고 잠이 들었다는 생각과 함께 크나큰 허기가 나를 덮쳤다. 하지만 나에게는 샌드위치 한쪽, 먹다 남은 콜라와 몇 개의 사탕뿐이었다. 차가운 샌드위치를 씹으며 든 생각은 ‘과연 이 곳에 잘 온 것일까?’. 고작 하루 만에 한국의 집, 가족, 친구 그리고 나의 열정과 꿈이 까만 밤에 걸린 달의 거리만큼이나 너무나 멀고 희미하게 느껴졌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다음날 아침. 오히려 저녁보다 더 조용한 아침의 호텔을 빠져나와 근처의 다흐다이용(d’Ardailon) 집으로 향하였다. 나지막한 몇 개의 계단을 올라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초인종을 누르니 누군가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다행히도 모든 가족들이 현관문까지 나와 반갑게 맞이 해줬다. 허기져 보였던 탓일까. 조금 이르지만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배가 너무 고팠던 탓에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그런데 디저트를 따로 주는 줄 몰랐고 식사 후 내 앞에 놓이는 요구르트의 양을 보고 크게 당황하였다. 만약 디저트가 있는 줄 알았다면, 그 정도의 양을 먹는 줄 알았다면 식사로만 배를 가득 채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겨우 겨우 먹은 디저트 때문에 그 날 저녁 챙겨 온 비상약을 꺼내어 먹었다. 그렇게 프랑스에서의 문화, 사고 등 하나 둘 직접 경험해 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가족들 덕에 좋지 않았던 첫날밤의 서글픔은 나의 기억 저 편으로 조금씩 흐릿해졌다.
지금은 하루의 시작이 바쁘다. 여유로운 비시라는 도시를 떠난 후, 프랑스 지방의 여러 도시를 거쳐 지금은 바쁘게 돌아가는 파리에서 살고 있는 탓이겠다. 그래도 커다랗고 붉은빛의 문을 힘겹게 열고 나오며 마주치는 미용실 아주머니에게 기분 좋은 아침 인사를 건넨다. 어제보다 아주 조금 더 행복한 여느 보통의 날 이길 바라면서.
Bonjour Madame! Vous allez bien? Il fait beau aujourd’hui! Bonne journée alors!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별 일 없죠? 오늘 날씨가 좋네요!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