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다작법과 음양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신지 않음.)
위 '6단어 소설'을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글을 쓸 때는 항상 두려웠다고 합니다. 문학의 거장들도 창작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지요.
분명 손가락 열 개가 다 달렸는데도 글이 나오질 않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1초 만에 달려가는 것처럼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닌데도, 손가락은 우리를 배신하여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운 일은 회피하고, 미루고, 귀찮아하죠. 따라서 다작(多作)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직장인들과 달리 작가는 몸이 출근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분명 출근도 하고 퇴근도 합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날 밤 침대로 다이빙하기 전 문장을 반만 쓰고 남겨놓았다고 합니다. 그럼 다음 날 아침 책상으로 클라이밍하기만 하면 곧바로 연결해서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작가들이 글쓰기 루틴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루틴의 구조'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가장 뛰어나죠. 그 구조를 음양으로 살펴봅시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양은 시작하는 것이고, 음은 완성하는 것입니다.
헤밍웨이는 '음양'으로 살았습니다.
아침에는 어제 반만 써둔 한 문장을 완성하고(음)
밤에는 한 문장을 시작해 놓고(양) 잠들었죠.
그러나 대부분의 작가 지망생들은 '양음'으로 살아갑니다.
아침에 새로운 문장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다가 겨우 쥐어짜 내고(양)
밤에는 한 문장을 완성하고(음) 잠들죠.
헤밍웨이처럼 '음양'으로 살아가면 매일 아침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작가 지망생들처럼 '양음'으로 살아가면 매일 아침 창작의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오늘의 내가 시작하고 잠들면
내일의 나는 수습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이클은 선순환의 고리입니다. 매일 매일 결과물이 나오죠.
이것을 (건괘) 乾三連(건삼련)이라고 합니다.
양효는 이어져 있습니다. 하루를 '음양'으로 살면 양으로 끝나서 인생이 계속 이어집니다.
오늘의 내가 완성하고 잠들면
내일의 나는 시작해 주지 않습니다.
이 사이클은 악순환의 고리입니다. 모레의 나도, 글피의 나도 시작해 주지 않습니다. 그날들은 모두 '오늘의 내일'이니까요.
이것을 (곤괘) 坤三絶(곤삼절)이라고 합니다.
음효는 끊어져 있습니다. 하루를 '양음'으로 살면 음으로 끝나서 인생이 뚝뚝 끊어집니다.
헤밍웨이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학의 거장답게 인간의 본성을 잘 파악하여 자기 자신의 사용법을 알아냈던 것이죠.
시작은 오늘 해두는 것입니다. 내일의 내가 시작해 주지 않기 때문이죠. 꼭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헤밍웨이처럼 '모든 내일 아침'에 '곧바로 완성하며 시작할 수 있도록' 안배하며 살고 계신가요? 아니면 흔하디흔한 작가 지망생처럼 '모든 내일 아침'에 '한참을 고뇌하다 시작한 뒤 겨우 완성하고' 잠들며 살고 계신가요?
음양의 지혜는 역학을 배워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자연과 사람을 관찰하며 만든 것이 역학이니, 인생에 투철한 사람이라면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그 지혜를 알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