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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번아웃 반복하던 내가 찾은 해결책

일 중독자가 제주 보름살기 갔다가 눌러앉은 이유

by 이우연

브런치에 다시 돌아오면서 곰곰이 곱씹어봤다. 나 같은 일중독자가 어쩌다 제주에 눌러앉았을까?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지난 10여 년을 되돌아보니, 하나의 명확한 사이클이 보였다. 열심히 일하다가 번아웃이 오면, 술이나 여행으로 일시적으로 달래고, 잠깐 회복된 것 같으면 다시 열일하고, 또 번아웃되고...

이 지독한 루프를 반복하면서도 항상 일에 몰두하면서 살았다. 번아웃이란 단어가 유행하지도 않았던 때부터, 나는 계속 미친 듯이 일하다 지치고 도망가고 다시 일하고, 이 과정을 반복했다. 새로운 도구를 배우거나,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하거나, 더 강한 의지를 갖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았었다.


이 번아웃 사이클을 끊게 된 과정을, 오늘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사이클. 야근 지옥과 클럽 데킬라


야근을 보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건 내겐 마약이었다.
일시적으로 기분은 좋아지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2009년 NCsoft에 들어가서 GM(게임마스터)으로 일을 하다가 파워포인트를 잘한다는 이유로 CEO 직속 PPT 디자인과 데이터 시각화를 담당했다. 말이 좋아 커뮤니티 디자이너지, 사실상 인간 파워포인트 제조기였다. (실제 PPT 공장장으로 불렸다.)

매일 오후 6시쯤이면 팀장이 다가와서 말했다. "이거 내일 아침 임원 회의 전까지 가능하지?" 그러면서 건네주는 건 A4 용지에 휘갈겨 쓴 메모. '게임 매출 분석', '신규 유저 유입 현황', '경쟁사 동향 분석'... 각각이 평상시라면 이틀은 걸릴 분량이었다.


하루에 PPT 50장씩 뽑아내는 게 일상이었다. 포토샵으로 이미지 만들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아이콘 그리고, 파워포인트에서 조립하고... 밤 12시 넘어서 퇴근하는 것도 당연했다. 지하철 막차 시간에 맞춰 뛰어나가는 게 일상이었는데, 가끔 막차도 놓치면 택시비 2만 원이 날아갔다.


이미지 31.jpg 이런 PPT를 수백 장 만들어내는 게 나의 업무였다.


정말 미친 일정이었다. 게임 공식 홈페이지 디자인, 페이스북 전략 기획, 온라인 프로모션까지... 정말 안 해본 게 없었다. 근데 신기한 건,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신입이니까, 배우는 과정이니까, 게임 업계가 원래 그러니까.


그때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클럽에서 데킬라 원샷이었다. 금요일 밤 10시,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홍대 모 클럽으로 직행했다. 지하철에서부터 이미 들뜬상태였다. "오늘은 진짜 미친 듯이 놀아야지."

정신 못 차리고 쓴 술값이 몇 만 원을 넘어가면 아깝기도 했지만, 그래도 일주일간 쌓인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투자할 만했다. 클럽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쿵쿵거리는 베이스 소리에 도파민이 싸악 도는 기분이었다. 바로 달려가서 손목 띠를 보여주며 데킬라를 주문한다. "데킬라 주세요." 바텐더가 건네준 레몬과 소금을 올려준 잔을 받아 들고, 한 번에 원샷. 목구멍이 타는 듯한 느낌이 오히려 좋았다. 알코올이 혈관을 타고 돌면서 일주일간 쌓인 스트레스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미친 듯이 춤을 췄다. PPT도, 야근도, 임원들도 다 잊었다.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새벽 4시까지 클럽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가면 토요일 아침이 되어 있었다.


남는시간에는 강박적으로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스카이스캐너 켜놓고 가장 저렴한 항공료를 찾아 헤맸다. 3일 휴가 내서 하루 14시간 돌아다니는 스타일. 쫓기듯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그날만을 기약하며 야근을 해냈다.

동남아, 미국, 일본... 어디든 서울에서 멀면 멀수록 좋았다. 방콕의 카오산로드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그랜드캐년을 운전해서 가본다거나, 바닷속을 물고기들과 수영하면 정말 자유로웠다. 야근도 없고, PPT도 없고, 그냥 내 맘대로 돌아다니는 삶.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면 똑같은 야근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천공항 입국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다시 현실이었다. 스마트폰을 켜면 쌓여있는 카톡 메시지들, "우연아 언제 출근해? 급한 건이 있어서..."

데킬라와 여행은 진통제였을 뿐, 병 자체를 고치지는 못했다. 3년을 그렇게 살다 보니 완전히 지쳤다. 몸도 마음도 한계였다. 간이 안 좋아진 건지 술만 마시면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사이클. 대기업 워라밸이라면..?


월급을 많이 받으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안정감은 착각이었다.



2012년 삼성SDS로 이직하면서 "이제 좀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겠다" 생각했다. 야근은 확실히 줄었다. 오후 6시면 대부분 퇴근할 수 있었고, 주말 출근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대신 다른 스트레스가 생겼다. 아침 9시 정각에 시작되는 무한 회의들. "이 안건은 팀장님께 보고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PM님 의견은 어떠실까요", "승인을 받아야 진행 가능합니다"... 복잡한 승인 라인을 따라 하나의 디자인이 완성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UX/UI 디자인을 담당하면서 사용자 리서치도 하고 프로토타입도 만들었다. 처음엔 나름 재밌었다. NCsoft에서는 "예쁘게만 만들면 끝"이었다면, 여기서는 "왜 이 버튼을 여기에 놓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했다.

솔루션 영업을 위한 PT와 영상 제작까지 병행했는데, 이때 정말 많이 배웠다. 한 번의 클릭을 줄이는 것이 수백 명의 직장인들에게 시간을 돌려주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정말 보람차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공허했다. 회의에서는 "사용자 경험"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진짜 사용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게 숫자와 지표로만 평가됐다. "클릭률이 2.3% 증가했습니다", "체류시간이 15초 늘었습니다"...내가 만든 솔루션이 정말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저 KPI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건 아닐까?


그때부터 홍대가 내 놀이터가 됐다. 아예 집을 홍대 입구역 부근으로 이사를 했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클럽 거리로 나오면, 벌써 다른 세상이었다.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거리 곳곳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자유분방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곳. 힙합 비트에 맞춰 몸을 흔들거나, 지하 어느 가게에서 록 공연을 보면서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게 일상이었다. 입장료 2만 원, 음료비 1만 원... 한 번 놀면 5만 원은 기본으로 나갔지만, 그래도 대기업의 경직된 문화에 지친 나를 위로해 주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주말에도 홍대였다. 토요일 오후 2시쯤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 나가면, 이미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서 돌아다니고, 빈티지 샵에서 옷을 구경하고, 레코드샵에서 음반을 뒤적였다. 때론 밴드들의 날것 그대로의 음악을 들으면서 "아, 이게 진짜 삶이지" 생각했다. 버스킹 공연에 박수치면서 회사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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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요일 밤이 되면 다시 현실이었다. "내일 또 회의실에 앉아서 무의미한 회의를 해야 하는구나." 월요일 아침 9시, 똑같은 회의실, 똑같은 정치질, 똑같은 지루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홍대의 자유는 일시적인 탈출구였을 뿐이었다. 5년을 그렇게 살면서 점점 회의감이 들었다.

"이게 내가 원하던 안정적인 삶인가?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하나?"




세 번째 사이클. 스타트업과 소주


스타트업의 능동적인 분위기에 스스로를 속였다.
결국 더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2018년 스타트업으로 뛰어들면서 "이제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겠다" 기대했다. 브랜드 팀장이 되어 통신사 서비스 브랜딩부터 자사몰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했다.

처음엔 정말 재밌었다. 빠른 의사결정, 자유로운 분위기, 내 아이디어가 바로 현실이 되는 짜릿함... 대기업에서 3개월 걸릴 일을 3일 만에 끝내는 속도감이 중독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24시간 일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휴가 중에도 일 생각뿐이었다. 스타트업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게 "긴급"이었고, 모든 게 "중요"했다.

그때부터 소주를 콸콸 붓기 시작했다. 회사 근처 고깃집이나 포장마차에서 퇴근 후 소주 서너 병 마시는 게 일상이 됐다. 처음엔 동료들과 함께 "고생했다"며 건배했는데, 나중엔 혼자서도 소주를 찾게 됐다. (이때 주량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던 것 같은...)


aorb.jpg 아침에 '해보자!'말하면 퇴근 전에 시안 뽑아야 직성이 풀리는 디자이너였다.


CBO 역할까지 맡으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브랜딩부터 UX/UI, 콘텐츠 디자인까지 모든 것을 총괄하면서 정말 미칠 것 같았다. 퇴사 전 100억 단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거의 과로사 직전까지 갔다.

소주 한 병으로는 안 되니까 두 병, 세 병...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서 집에서도 마셨다. "내일은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다짐하면서. 하지만 숙취와 함께 찾아오는 건 더 큰 피로와 스트레스뿐이었다.

결국 또 번아웃이 왔다. 이번엔 클럽도 홍대도 소용없었다.





네 번째 사이클을 깨뜨린, 제주 매직


근본적인 변화는 환경에서 시작된다.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독한 환경에서는 독해질 수밖에 없다.


번아웃 이후, 프리랜서로 전향을 하기 위해 서울에서 고군분투를 했다. 일이 잘 들어오지 않아서 아는 사람들에게 명함도 돌리고, 크몽이며 라우드 소싱이며 해볼 수 있는 플랫폼은 다 시도해 봤던 것 같다. 출퇴근을 하진 않았지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스트레스받는 루틴은 여전했다.

마침 엄마가 뽐뿌를 넣어서 제주도에 보름 살기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이게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작은 차에 엄마와 나, 그리고 진돗개 에코와 작은 강아지 까뮤까지, 차를 배에 싣고 밤새 바다를 건너 제주에 도착했다. 사실 큰 계획을 하고 온 건 아니라서 처음 3일은 그냥 멍 때렸다. 개 산책 시키고, 바다 보고, 한라산 보고, 그냥 아무것도 안 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스트레스가 저절로 해소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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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술 없이는 잠들 수 없었는데, 제주에서는 바닷소리만 들어도 잠이 왔다. 서울에서는 주말에도 일 생각이 났는데, 제주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쉴 수 있었다. 서울에서 별로 멀지도 않은데, 고작 한 시간 비행이면 오는 이 곳이 왜 이렇게 편한건지.

2주가 3주가 되고, 3주가 4주가 되고... 결국 5주 차에 집 계약을 해버렸다. 왜냐하면 제주는 삶 자체가 여행이었거든. 매일 다른 올레길을 걷고, 다른 해변에 가고, 다른 카페에서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웠다.





환경이 바뀌니 도구도 바뀌었다


좋은 환경에서는 선택의 무게도 꽤 가벼워진다.
캔바로 갈아탄 것도 그런 맥락이다.



제주에 정착하고 가장 놀라운 변화는 더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들이 잘 보이게 된 것이었다. 서울에서는 "포토샵이 프로의 도구"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제주의 여유로운 환경에서는 "결과물이 좋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래서 AI 도구들도 적극적으로 써보기 시작했다. 미드저니로 이미지를 생성하고, 챗GPT로 카피를 다듬고, 캔바로 휘리릭 비주얼을 만드는 게 일상이 됐다. 서울에서는 "이런 걸 써도 되나?" 하고 망설였을 텐데, 제주에서는 그냥 재밌어서 시도해 봤다.


특히 캔바와의 만남이 가장 큰 변화였다. 첫 작업을 해보고 충격을 받았다. 포토샵으로 3시간 걸리던 SNS 콘텐츠가 캔바에서는 30분 만에 끝났다. 더 놀라운 건 결과물의 퀄리티였다. 오히려 더 세련되고 트렌디했다.


스크린샷 2025-07-29 164704.png 얼마 전 심심해서 캔바로 만든 케데헌 팬아트


그때 깨달았다. 도구에 대한 고정관념도 결국 환경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스트레스받는 환경에서는 익숙한 것에만 매달리게 되지만, 여유로운 환경에서는 새로운 것을 시도할 용기가 생긴다.

새로운 기능이 나올 때마다 테스트해 보고,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캔바 글로벌 앰버서더가 됐다. 캔바로 외주를 하고, 템플릿을 올리며 돈을 벌게 됐고, 온라인 강의도 하게 됐다. 정말 신기했다.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제주에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스크린샷 2025-07-29 164843.png 캔바로 만든 귤력


참으로 제주스러운 디자인 작업도 꽤 하게 됐다. 특히 귤농장의 브랜딩을 의뢰받았을 때는 정말 재밌었는데, 서울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클라이언트였다. 그 유명한 제주 '고'씨 삼춘네의 수만 평짜리 귤농장에 직접 찾아가 드론을 띄우고 촬영을 하러 간 날엔 막걸리를 앞에 두고 미깡의 역사를 들었다. 찐 토백이로 부터 들은 귤에 대한 온갖 지식을 다 넣어 그럴싸한 웹사이트를 제작할 수 있었고, 거기에 올라가는 대부분의 그래픽은 캔바로 제작했다. 모든 작업이 제주라는 환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마치 제주도가 나의 퍼컬인 것처럼 뭔가 일이 잘 풀리게 됐다.





15년 만에 찾은 나만의 답


돌이켜보니 정말 많은 루틴을 반복했다. 야근 → 클럽 → 여행, 회의 → 홍대 → 맥주, 열일 → 소주 → 번아웃... 그때는 몰랐지만, 내가 진짜 필요한 건 자연과 바람, 그리고 바다였다.

그런 환경을 찾기까지 15년이 걸렸다.

혹자는 벌레가 나오고 일자리가 없어서 제주를 떠난다고 한다. 물론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여기가 너무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면 휙 불어오는 제주 바람, 노을 아래 강아지들과 함께 걷는 산책길, 저녁에 막걸리 한 잔 하며 먹는 돼지고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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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바로 지금 하는 작업들도 매우 재밌다. AI 기능들이 계속 추가되면서 상상도 못 했던 결과물들이 나오고 있다. 서울에서 포토샵으로 끙끙대며 만들던 것들을 이제는 웃으면서 뚝딱 만든다.

무엇보다 좋은 건, 더 이상 번아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일이 이미 충분히 좋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같은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면? 환경을 바꿔보자. 물리적 환경이든, 인간관계든, 일하는 방식이든. 가장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도 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의지력이나 새로운 스킬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환경을 찾는 것이다.


다음엔 제주에서 캔바로 어떤 신기한 작업들을 하고 있는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진짜 재밌는 얘기들이 많거든. 강아지 산책 좀 다녀와서 정리해 봐야지.




이우연의 캔바 디자인이 궁금하다면,

https://leewooyeon.my.canva.site/can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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