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디자이너가 딴딴한 수익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던 방법
서울에서의 번아웃을 뒤로하고 제주에 정착한 지 2년. 한라산이 보이는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치며 최근 수익 현황을 정리해 봤다.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에서 차장급으로 받던 연봉보다 더 많이 벌고 있다. 그런데 일은? 일주일에 3일 정도 집중해서 일하고, 긴급한 프로젝트가 있을 때만 조금 더 하는 정도다. 노는 게 좋은 뽀로로 같은 삶이라고나 할까.
최근 캔버지클래스(canpapa.co.kr)에서 디자인 수익화 라이브 클래스를 진행했을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도대체 어떻게 그런 수익을 만들어내는가"였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는 못했다. 서울에서 회사를 나와 막막했던 그때, 지금의 삶을 상상이나 했을까.
3천만 원의 상금이 가져다준 인생의 전환점
제주로 오기 전, 서울에서 프리랜서로 독립하며 가장 먼저 도전한 것이 라우드소싱 공모전이었다. 당시에는 포트폴리오를 쌓기 위한 목적이었다. 회사를 나온 뒤 텅 빈 포트폴리오를 채울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했던 작업물들은 회사 소유였고,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 라우드에서 약 70회 정도 공모전에 참여했고, 800만 원 정도의 상금을 받았다.
그렇게 무작정 도전한 공모전들. 브랜드 디자인이 재밌어서 하루에 몇 개씩 작업했는데, 당연히 많이 탈락했다. 하지만 실패할 때마다 무언가를 배웠다. 다른 콘테스트에 제출된 디자인들을 보며 내 작품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했고, 수상작들을 분석하며 그들만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이때 비즈니스적으로 원하는, 클라이언트에 입맛에 맞는 브랜드란 무엇인가를 가장 많이 고민할 수 있었다.
브랜드 디자인뿐만 아니라 카드 디자인, 캐릭터 디자인, 네이밍까지 닥치는 대로 도전했다. 그야말로 디자인계의 올라운더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게 바로... 육각형 디자이너..?) 다 하고 나서 수상 내역을 정리해 보니 웃음이 나왔다. 내가 상금을 탄 작품들은 대부분 초록색이 메인 컬러였고, 주제는 푸드나 동물 관련이었다. 세련된 테크, 기업 브랜딩은 번번이 떨어졌는데, 유기농 농산물이나 반려동물 관련 브랜딩은 신기하게도 수상 확률이 높았다. 아, 나는 자연과 생명체를 디자인하는 데 강점이 있구나. 이 깨달음이 훗날 제주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질 줄은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라우드에 열심히 헤딩 하던 중, 운명처럼 '도전.한국'이라는 대규모 국가 공모전을 발견했다.
이 공모전은 디자인 공모전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시각화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나는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주제에 주목했다. 전통시장의 문제점을 분석하다가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발견했다. 상인들에게는 소속감이 부족했고, 디지털 결제 시스템은 여전히 접근성이 낮았다.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했다. '사원증'을 '상인증'으로 변형한 아이디어였다. 전통시장 상인들에게도 대기업 직원들처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신분증을 만들어주고, 거기에 QR코드를 넣어 결제와 고객 관리를 동시에 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상인증을 목에 걸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디지털 시스템을 활용하게 되는 UX 디자인이었다.
예쁜 디자인보다는 실제로 구현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브랜딩 전략을 수립했다. 전통시장 상인 인터뷰, 시장 현장 조사, 프로토타입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거쳤다.
결과는 놀라웠다. 행정안전부 장관상과 함께 상금 3천만 원. 하지만 진짜 선물은 상금이 아니었다. 수상작을 준비하며 깨달은 나의 최대 강점. 나에게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디자인을 만드는 능력보다, 복잡한 사업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시각화하고,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심사위원들의 평가도 그랬다. "디자인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비즈니스적 통찰력이 돋보인다", "실제 사업화가 가능한 구체적인 전략이 인상적이다", "사용자 경험을 깊이 있게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이 말들이 나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제주에서 발견한 예상치 못한 기회들
3천만 원이라는 상금은 제주 정착의 든든한 밑천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디자이너'에서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디자이너', '사업적 마인드를 가진 브랜드 기획자'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기 시작했다.
제주에 정착하며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이곳에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소상공인과 스타트업이 생각보다 많았다. 제주의 자연환경에 매료되어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는 사람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며 창업하는 청년들, 제주만의 특산품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로컬 기업들... 그들 대부분이 브랜딩과 디자인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제주도 이웃분의 펜션 브랜딩이었다. 정말 집 근처 살아서 알게된 분이었는데, 오래된 고택을 리모델링해서 새롭게 펜션으로 전환하려는 참이었다. 로고만 의뢰하셨지만, 사업 계획을 듣다 보니 전체적인 브랜드 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SNS와 웹사이트를 포함한 전체 브랜드 컨설팅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들어드렸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그 대표님이 펜션 이후에 시작한 모든 사업의 브랜딩을 맡기기 시작했다. 제주 전통주 브랜드를 론칭할 때도, 새로운 사업장을 개업할 때도, 심지어 미술품 큐레이션 SNS를 시작할 때도 가장 먼저 나를 찾았다. 한 클라이언트와의 관계가 이렇게 깊어질 줄은 몰랐다.
그 이후로는 귤농장 브랜딩, 로컬 가게들의 리브랜딩 등 제주 소상공인들과의 작업이 이어졌다. 제주라는 지역적 특성을 이해하고 바로 발로 뛰는 디자이너가 근처에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 되었다.
좀 놀아도 되는 프리랜서의 비밀 - 수익 구조의 진화
현재 나의 수익 구조는 반반이다. 캔바와 미리캔버스에서 나오는 플랫폼 수익이 50%, 장기 프로젝트 참여가 나머지 50%. 흥미로운 것은 더 이상 단발성 외주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100만 원 이하의 소규모 외주는 캔버지클래스 회원들에게 모두 토스하고, 나는 중간에서 커뮤니케이션만 담당한다.
플랫폼 수익이 이렇게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공모전 탈락작들을 재활용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체계적인 전략을 가지고 접근한다. 실제 프로젝트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템플릿으로 만들어 올리면, 비슷한 니즈를 가진 사용자들이 구매한다. 제주 펜션 브랜딩 경험은 '감성 숙소 템플릿 시리즈'로, 전통주 브랜딩 경험은 'K-전통 SNS 디자인'으로 재탄생했다.
장기 프로젝트는 더욱 흥미롭다. 한 번 인연을 맺은 클라이언트와 지속적으로 일하며, 그들의 비즈니스가 성장하는 것을 함께 경험한다. 브랜드 가디언 역할을 하며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단순한 갑을 관계를 넘어 진정한 파트너십으로 발전한다.
일주일에 3일만 빡세게 일한다고 했는데, 정말이다.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온전히 일에 집중한다. 이 3일 동안 한 주의 모든 업무를 처리한다.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는 완전히 자유다. 물론 긴급한 프로젝트가 있으면 조금 더 일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패턴을 유지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플랫폼 수익이 기본 생활비를 커버해 준다.
둘째, 장기 프로젝트는 일정이 예측 가능하다.
셋째, 소규모 외주는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기회를 주며 나는 더 큰 그림에 집중한다.
넷째, 사업적 마인드로 접근하니 효율성이 극대화된다.
제주에서 배운 지속가능한 프리랜서의 삶
서울에서 회사 다닐 때는 매일 야근하며 번아웃에 시달렸다. C레벨로 일하면서 과분한 연봉을 받았지만 삶의 질은 바닥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이 벌면서도 일은 훨씬 적게 한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건 제주가 가르쳐준 '여유'와 '집중'의 가치 덕분이다.
제주의 자연은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준다. 집 에서 작업하다가 막힐 때면 바다로 나가 수영을 하고, 오름을 걸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이런 여유가 오히려 더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클라이언트들도 "감성이 느껴지는 디자인"이라며 만족해한다.
무엇보다 제주에서는 '일과 삶의 균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화수목은 집중해서 일하고, 월금토일은 일하던지 말든지... 내 맘대로 하는 시간. 이런 루틴이 번아웃 없이 꾸준히 일할 수 있는 비결이다. 물론 이마저도 내 컨디션에 따라 왔다갔다하느라 어느 달엔 수입이 좀 적어지기도 하지만, 일할 때는 확실히 하고 내 행복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내가 찾은 프리랜서의 정답이다.
캔버지클래스에서 강의를 하며 많은 분들이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강점을 찾고, 그것을 비즈니스화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속가능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것이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더 구체적인 방법론을 공유하려 한다. 어떻게 사업적 마인드셋을 디자인에 적용했는지, 캔바와 미리캔버스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을 사용해서 수익을 극대화했는지, 장기 프로젝트 클라이언트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일주일에 3일만 일하고도 차장급 연봉 이상을 버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풀어보려 한다.
프리랜서로 살아남는 것을 넘어, 진짜 '자유로운 삶'을 사는 법. 그 구체적인 방법론이 궁금하다면,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주시길.
이우연의 캔바 디자인이 궁금하다면,
https://leewooyeon.my.canva.site/canpa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