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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바로 PPT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

PPT 공장장이 캔바를 잡으면, 수명이 늘어납니다.

by 이우연

NC에서 김택진 대표에게 올라가는 보고서를 밤새워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삼성에서는 이재용 부회장까지 전달되는 문서의 디자인을 담당했다. 그때 나는 진짜 PPT 공장장이었다. 하루에 슬라이드 50장씩 뽑아내고, 맑은고딕과의 끝없는 전쟁을 치르며, 파일 버전이 0.1에서 시작해서 3.0까지 가는 것도 다반사였다.


스크린샷 2025-08-14 135606.png 저기 들어간 일러스트들은 직접 그린 것들이다...


그 시절의 작업 프로세스는 정말 원시적이었다. 템플릿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서 매번 빈 슬라이드에서 시작했다. 게임회사에서는 각 게임의 스크린샷을 하나하나 캡처하고, 로고는 사업팀에 요청해서 받아내고, 삼성에서는 제품 사진이 없으면 직접 일러스트를 그려야 했다. CEO급 보고서에 들어갈 차트 하나 만들려면 엑셀에서 데이터 정리하고, 일러스트레이터에서 도형 그리고, 색상 맞추고, 파워포인트로 다시 옮겨서 정렬하는 과정만 반나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디자인 툴이자 프레젠테이션 플랫폼으로 자리잡은 캔바가 모든 걸 바꿔놓았다. 내가 15년 전 며칠씩 걸렸던 작업을 이제는 몇 시간 만에 완성할 수 있게 됐다. 오늘은 내가 캔바로 프레젠테이션 작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쓰는 노하우와, 당신이 전문적인 PPT를 만들고 싶다면 캔바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겠다.




템플릿 활용과 브랜드 키트 구축

캔바에서 템플릿을 고를 때는 완성된 디자인을 그대로 쓰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템플릿은 어디까지나 골격일 뿐이고, 진짜 중요한 건 내 브랜드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하는 것이다. 특히 해외에서 만든 템플릿들은 한국 비즈니스 환경과 맞지 않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과도하게 화려한 색상, 불필요한 장식, 읽기 어려운 폰트 조합들이 범람한다.


내가 템플릿을 선택할 때 보는 건 오직 레이아웃 구조뿐이다. 정보를 어떻게 배치했는지, 시각적 흐름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만 파악하고, 나머지는 모두 내 스타일로 갈아엎는다. 화려한 그라데이션 배경은 단색으로 바꾸고, 영문 폰트는 한글 폰트로 교체하고, 과도한 아이콘들은 정말 필요한 것만 남기고 정리한다. 한국식 프레젠테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건 폰트 선택이다. 맑은고딕은 이제 당연히 안 쓰고, 프리텐다드와 수트가 나의 새로운 표준 폰트로 자리 잡았다. 프리텐다드는 가독성이 뛰어나면서도 모던한 느낌을 주고, 수트는 좀 더 격식 있고 안정적인 인상을 준다. 제목에는 프리텐다드 볼드를, 본문에는 프리텐다드 레귤러나 수트 레귤러를 사용하면 이 두 폰트만으로도 99%의 프레젠테이션을 커버할 수 있다.



스크린샷 2025-08-14 135658.png 캔바의 브랜드 키트 기능


캔바에서 브랜드 키트도 빼놓을 수 없는 기능이다. 초기 세팅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흰색과 검정색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다. 순백색과 순흑색은 너무 강해서 오히려 세련되지 못해 보인다. 눈의 피로도도 높이고, 다른 색상들과의 조화도 망친다. 대신 웜 그레이나 쿨 그레이 톤을 사용하면 훨씬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브랜드 키트의 진짜 장점은 로고만 업로드해도 자동으로 브랜드 컬러를 추출해서 팔레트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내 로고에서 메인 블루를 추출하거나, 이톤에 맞는 라이트 블루, 다크 블루, 그레이 톤까지 조화로운 컬러 조합을 선택해서 쓸 수도 있다. 더 이상 RGB 값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색상 조합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거다.



매직 기능으로 완성하는 비주얼 스토리텔링

캔바의 매직 기능들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창작 과정 자체를 재설계했다. 예전에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스톡 사이트를 뒤지고, 라이선스를 확인하고, 포토샵으로 후작업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면, 이제는 Magic Media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된다. 이건 진짜 게임 체인저다.


브랜드의 첫인상을 잡는 키 비주얼 작업부터 보자. "제주 바다에서 노트북으로 일하는 30대 디자이너, 미니멀한 분위기"라고 입력하면 AI가 여러 스타일의 이미지를 생성해준다. 사실적인 사진 스타일부터 일러스트, 수채화 터치까지 다양한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중에서 문서 무드에 맞는 것을 선택하면 그게 바로 전체 프레젠테이션의 톤앤매너가 된다. 예전에는 컨셉 이미지 하나 구하려고 며칠씩 헤매거나 직접 수작업을 했는데, 이제는 몇 분 만에 완성도 높은 브랜드 데모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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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틀이 잡히면 세부 요소들을 채워나가는데, 아이콘 검색에서도 전략이 필요하다. "비즈니스 성장"이라고 대충 검색하면 뻔한 결과만 나오지만, "상승 화살표 미니멀 라인"이라고 구체적으로 입력하면 정확히 원하는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 핵심은 스타일 키워드를 함께 넣는 것이다. "플랫 디자인", "라인 아이콘", "듀오톤" 같은 단어를 조합하면 일관된 비주얼 언어를 구축할 수 있고, 한 번 찾은 아이콘의 스타일을 기준으로 비슷한 계열의 다른 아이콘들을 추가로 검색하거나 컬렉션을 확인해보면 전체 프레젠테이션에서 통일감 있는 아이콘 세트를 완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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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작성 과정에서 Magic Write의 진가가 드러난다. 빈 슬라이드 앞에서 "뭘 써야 하지" 고민하는 대신, 핵심 키워드 몇 개만 입력하면 구조화된 문장들이 쏟아진다. "브랜딩 전략의 중요성, 차별화, ROI"라고 입력하면 이 세 요소를 연결하는 논리적인 문단을 생성해준다. 물론 그대로 쓰지는 않는다. AI가 제안한 구조를 기반으로 내 경험과 인사이트를 더해서 완성하는 방식인데, 마치 초안을 받아서 편집하는 느낌이다.

특히 톤앤매너 조절에서 Magic Write가 유용하다. 같은 내용이라도 "좀 더 격식있게", "좀 더 재미있게", "좀 더 짧게/길게" 같은 지시를 주면 각각 다른 스타일의 텍스트를 제안해준다. 제안서와 스타트업 팀 대상 워크샵 자료를 같은 콘텐츠로 만들 때, 이 기능 하나로 완전히 다른 느낌의 프레젠테이션을 만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예전에 며칠씩 걸리던 작업이 몇 시간으로 단축됐다. 스톡 이미지 라이선스 비용만 해도 프로젝트당 수십만 원씩 들었는데, 이제는 월 구독료 하나로 무제한 생성이다. 포토샵 작업에 들어가던 시간과 비용까지 생각하면 효율성 증대는 상상 이상이다. 무엇보다 창의적 에너지를 기술적 제약이 아닌 본질적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변화다.



멀티플랫폼으로 PPT 만들기

요즘 일하는 방식을 보면 PC에서만 작업하는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 지하철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스마트폰으로 바로 슬라이드를 수정하고, 카페에서는 태블릿으로 레이아웃을 조정하고, 사무실에서는 PC로 마무리 작업을 한다. 캔바는 이런 멀티 디바이스 환경에 완벽하게 최적화되어 있어서 진짜 자유롭다.

모바일에서의 작업 효율성이 특히 놀랍다. 작은 화면이지만 모든 기능을 다 쓸 수 있고, 터치 인터페이스에 최적화되어 있어서 오히려 PC보다 직관적일 때가 많다. 핀치 줌으로 세밀한 작업을 하고, 드래그 앤 드롭으로 요소들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 개 산책하면서도 클라이언트 피드백을 바로 반영할 수 있어서 정말 편하다.


공유와 다운로드의 편리함은 혁신 그 자체다. URL 링크 하나만 보내면 상대방이 어떤 디바이스에서든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별도의 소프트웨어 설치나 파일 전송 같은 번거로운 과정이 완전히 사라진 거다. 프레젠테이션 도구로서의 활용도 정말 편하다. 스마트폰을 리모컨 삼아 PC와 연동해서 발표할 수 있고, 손 안의 작은 화면에서는 현재 슬라이드와 다음 슬라이드를 미리 볼 수 있다. 더 이상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다니거나 복잡한 케이블 연결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실시간 협업의 새로운 차원

팀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고통이었던 버전 관리 문제가 완전히 사라졌다. "최종_진짜최종_0315_김대리수정.pptx" 같은 파일명의 악몽은 이제 옛날 이야기다. 캔바에서는 모든 팀원이 동시에 같은 프레젠테이션을 수정할 수 있고, 실시간으로 변경 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이건 정말 마법 같은 경험이다.

댓글 기능이 특히 유용한데, 특정 슬라이드나 요소에 직접 댓글을 달 수 있어서 피드백이 정확하게 전달된다. "3페이지 자료 좀 보강해주세요"라고 메신저로 애매하게 보내는 대신, 해당 페이지에 직접 댓글을 달면 된다. 수정이 완료되면 댓글을 해결 처리할 수 있어서 진행 상황도 한눈에 파악된다.


제안서 작업에서의 협업 효율성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기획자가 구조를 잡고, 디자이너가 비주얼을 입히고, 카피라이터가 텍스트를 다듬고, 영업이 마지막 검토를 하는 전 과정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면서도 전체적인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스크린샷 2025-08-14 140257.png 한국 캔바 유저들을 위해 제작해둔 프레젠테이션 템플릿



변화된 PPT 제작 패러다임과 캔바의 필연성


결국 이 모든 변화를 경험해보고 나니 확신이 든다. 파워포인트 시대는 정말 끝났다. 캔바의 가벼움과 직관성에 한 번 익숙해지면 다시 무거운 데스크톱 소프트웨어로 돌아가는 게 고역이다. 브라우저에서 바로 열고, 클릭 몇 번으로 작업하고, 탭 닫으면 끝인 이 간편함을 맛본 사람은 절대 예전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다.


특히 한국의 빠른 업무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단 만들어보고 피드백 받아서 수정하자"는 문화에서 캔바의 애자일함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시각화하고,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즉석에서 수정할 수 있다. 이런 워크플로우에 적응하고 나면 파일 저장하고 첨부해서 보내는 방식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깨닫게 된다.


도구가 바뀌면 사고방식도 바뀐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예쁘게 만들까" 대신 "무엇을 효과적으로 전달할까"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기술적 제약에서 벗어나 진짜 중요한 것, 즉 메시지와 스토리텔링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15년 전 PPT 공장장 시절이 정말 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정말 못 할 것 같다.





이우연의 캔바 디자인이 궁금하다면,

https://leewooyeon.my.canva.site/can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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