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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는 캔바 안 쓴다고?

템플릿 우물 안에 갇힌 분들이 봐줬으면 하는 글

by 이우연


캔버서더들과 함께 올린 릴스 하나가 예상치 못하게 화제가 되었다. "디자이너는 캔바 안 쓴다?"라는 제목으로 찍은 토크쇼 영상이 8만 뷰를 넘어서면서, 댓글란이 전쟁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진짜 디자이너라면 일러스트레이터 써야지", "캔바는 그냥 일반인용 아니야?" 같은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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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p/DJtA4UzuEf3/

(댓글 구경 재미있음)



하지만 며칠 동안 댓글들을 읽어보면서 더 큰 문제를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이 '캔바 = 템플릿만 쓰는 것 = 프로급 디자인 불가능'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템플릿에만 의존하는 사용 방식을 보고 캔바 전체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건, 마치 전자레인지로 라면만 끓여보고 "이 기계로는 요리가 안 된다"고 결론 내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오늘은 이런 선입견을 완전히 깨트려보고 싶다. 캔바로도 얼마든지 프로급 디자인이 가능하며, 오히려 올바른 접근법만 안다면 기존 전통 툴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강력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다.




일반인 vs 디자이너,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캔바에서 마음에 드는 템플릿을 하나 골라서 텍스트만 바꾸고 이미지만 교체한 다음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빠르고 편리하긴 하지만, 이렇게 만든 결과물들은 어딘가 비슷비슷해 보인다. 당연하다. 같은 뼈대에 살만 갈아끼운 것이니까.


반면 15년째 디자인 일을 해온 입장에서 캔바를 바라보는 관점은 완전히 다르다. 템플릿을 '완성품'이 아닌 '재료'로 본다. 마치 셰프가 같은 재료로도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템플릿이라는 기본 뼈대를 가지고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거다.


더 중요한 건, 디자이너는 템플릿을 고르기 전에 이미 머릿속에 명확한 전략이 있다는 점이다. 타겟 고객이 누구인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브랜드의 성격은 어떤지, 심지어 이 디자인이 어떤 플랫폼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될지까지 모든 걸 고려한 다음에야 템플릿을 선택한다.



스크린샷 2025-08-25 212749.png 이런 좋은 레이아웃이 수 만개씩 쏟아지다니...


템플릿을 재료로 보는 시각

실제로 지난 분기에 한 브랜딩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보자. 클라이언트는 20-30대 커플을 타겟으로 하는 프리미엄 펜션을 운영하고 있었고,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한 기본 인쇄물과 SNS 마케팅이 주요 목표였다. 이때 내가 한 첫 번째 일은 캔바에서 예쁜 템플릿을 찾는 게 아니라, 경쟁사 분석과 타겟 고객 리서치였다.


20대 후반 여성들이 펜션을 예약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인스타 감성'이라는 걸 파악했다. 깔끔하면서도 따뜻한 느낌,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원했다. 이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캔바에서 기본 명함 레이아웃을 하나 선택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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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한 템플릿의 색상 팔레트를 완전히 갈아엎었다. 원래 템플릿이 비비드한 블루 계열이었다면, 펜션의 자연 친화적 이미지에 맞게 어스 톤으로 바꿨다. 단순히 색만 바꾼 게 아니라, 각 색상의 채도와 명도까지 세세하게 조정해서 브랜드만의 고유한 컬러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폰트 역시 마찬가지다. 템플릿에 기본으로 설정된 산세리프 폰트를 그대로 쓰는 대신, 브랜드 성격에 맞는 커스텀 폰트를 업로드했다. 제목용으로는 모던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의 한글 폰트를, 정보용으로는 가독성이 뛰어나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영문 폰트를 조합했다.




기획과 전략이 있어야 빛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디자이너에게는 명확한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예쁜 걸 만드는 게 아니라 특정한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디자인을 활용한다. 이런 목적의식이 있을 때 캔바는 오히려 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예를 들어, A/B 테스트를 할 때를 생각해보자. 같은 메시지를 다른 시각적 접근법으로 표현해서 어떤 게 더 효과적인지 검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런 작업을 한다면 하나하나 새로 만들어야 하지만, 캔바에서는 기본 템플릿을 복사해서 색상만 바꾸거나 레이아웃만 조정하는 식으로 빠르게 변형할 수 있다.


실제로 한 온라인 쇼핑몰의 배너 광고를 만들 때, 같은 상품을 다섯 가지 다른 스타일로 표현해서 테스트해본 적이 있다. 미니멀한 버전, 화려한 버전, 레트로 버전, 모던한 버전, 자연 친화적인 버전까지. 전통적인 디자인 툴로 이 모든 걸 만들었다면 며칠은 걸렸을 텐데, 캔바를 활용하니 반나절 만에 모든 변형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테스트 한 디자인 시안들은 클라이언트와 함께 화면을 보면서 "여기 색깔을 좀 더 진하게 해주세요", "이 텍스트 크기를 키워주세요" 같은 피드백을 즉석에서 반영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제주도고, 클라이언트는 육지에 있다) 기존 방식이라면 수정 → 저장 → 전송 → 확인 → 재수정의 반복이었다면, 캔바에서는 실시간으로 모든 게 해결된다.



AI 기능의 진화, 그리고 놓치고 있는 기회들

그런데 정말 아까운 건, 많은 디자이너들이 캔바의 AI 기능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직 리사이즈 기능만 해도 엄청난 시간 절약이 가능하다. 인스타그램용으로 만든 정사각형 포스트를 페이스북 커버용 와이드 사이즈로 바꾸거나, 유튜브 썸네일용으로 변환하는 게 클릭 몇 번으로 해결된다.

배경 제거 AI도 마찬가지다. 포토샵에서 펜 툴로 한참 따내야 했던 작업이 1초 만에 끝난다. 물론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80-90% 수준의 퀄리티는 충분히 보장된다. 나머지는 조금만 손보면 되고.


텍스트 생성 AI 기능도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브랜드 톤에 맞는 카피를 자동으로 생성해주는 기능을 쓰면, 적어도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상당히 유용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그대로 쓰지는 않지만, 브레인스토밍 단계에서 영감을 얻기에는 충분하다.

또한 디자이너의 기본 재료인 셔터스톡이나 게티이미지 수준의 고품질 이미지들이 캔바 프로 구독료인 월 9천원 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기존에 스톡 이미지 하나 사는데 2-3만원씩 내던 걸 생각하면, 이건 정말 혁신적인 가격 정책이다. 벡터 일러스트레이션 라이브러리도 마찬가지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커스텀 일러스트를 의뢰하면 건당 10-20만원은 기본인데, 캔바에서는 수십만 개의 벡터 일러스트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완전히 유니크한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상업적 용도에는 충분히 활용 가능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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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 탓, 계속 하실거에요?

15년 전 처음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 선배 디자이너가 해준 말이 생각난다. "그림판으로도 장인은 명작을 만들어낸다"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그냥 멋있는 말인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정말 핵심을 찌른 표현이었다. 실제로 몇 년 전 한 해외 디자이너가 마이크로소프트 페인트(그림판)만으로 놀라운 수준의 디지털 아트를 만들어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작품을 보고 깨달았다. 도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건 결국 사용자의 창의력과 끈기라는 걸.


캔바도 마찬가지다. "캔바는 아마추어용이야"라고 폄하하는 디자이너들을 보면, 마치 붓과 물감이 좋지 않다고 탓하는 화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작 중요한 건 그 도구로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어떤 전략을 가지고 접근하는지다. 월 9천원으로 수백만 원어치의 스톡 이미지와 최신 AI 기능까지 사용할 수 있는 시대에, 도구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이런 기회를 놓치는 게 오히려 더 손해가 아닐까?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건 어떤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지이니까.



결국 캔바든 포토샵이든, 중요한 건 그 도구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다. 명확한 전략과 목적이 있는 디자이너에게 캔바는 오히려 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빠른 프로토타이핑, 효율적인 협업, 풍부한 리소스까지. 이 모든 걸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디자이너야말로 진정한 전문가가 아닐까?



이우연의 캔바 디자인이 궁금하다면,

https://leewooyeon.my.canva.site/can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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