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를 통해 본 애착, 질투, 그리고 부모-자녀 관계
최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은 우리 안의 가장 모순된 감정을 건드립니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붙잡으면서도 밀어내는 마음.
우리는 그 양가적 감정 앞에서 누구나 흔들립니다.
은중의 대사 “싫어하는 건 생각이 안 나, 미워하는 건 생각나”는 그 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순간의 ‘싫음’은 잊히지만, ‘미움’은 오래 남습니다.
왜냐하면 그 미움 속에는 여전히 애착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은중과 상연의 관계: 모순된 감정의 서사
은중이 상연에게 묻습니다. “나한테 왜 그러는데?”
상연은 차갑게 대답합니다. “네가 멀쩡한 게 싫어. 너도 망가졌으면 좋겠어. 나처럼.”
이 대사는 사랑과 질투, 의존과 파괴가 동시에 얽힌 인간관계의 아이러니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우리는 종종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가장 큰 상처를 받습니다.
그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그만큼 관계가 깊기 때문입니다.
양가성은 왜 생기는가
심리학적으로 이런 감정은 불안정 애착의 전형입니다.
가까이하고 싶지만 동시에 밀어내고 싶은 모순된 태도,
“사랑하지만 미워하는” 이중성이 바로 양가적 감정의 핵심입니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은 객체관계 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에서 바로 이 지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녀는 어린아이의 내적 세계에서 사랑과 증오, 애착과 파괴 충동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아이가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때로는 미워하는 것, 의존하면서도 독립하려는 갈등이 성장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이죠.
양가성은 본능인가, 후천적 산물인가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이런 양가적 감정을 피할 수 없을까요?
본능적 요인: 진화심리학적으로 애착과 공격은 모두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제입니다. 아기는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밀쳐내고, 울면서도 다시 품을 찾습니다. 이는 의존과 독립의 긴장이 본능에 새겨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후천적 요인: 동시에, 초기 양육 경험과 사회문화적 맥락이 이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결정합니다. 안정된 환경에서는 아이가 양가적 감정을 성숙하게 길러가지만, 불안정한 환경에서는 그것이 불안과 공격성으로 강화됩니다.
결국 양가적 감정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본능이지만, 그것을 성숙하게 다루는 법은 후천적 관계와 사회적 환경 속에서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사춘기와 양가성
이 양가성은 뇌 속에서도 드러납니다.
편도체는 질투와 두려움을 즉각적으로 터뜨리고,
전전두엽은 그것을 억제하며 관계를 다시 해석하려 합니다.
사춘기 뇌는 전전두엽이 아직 미성숙해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시냅스 가지치기가 활발히 일어나며, 새로운 관계와 감정 방식을 배우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즉, 사춘기의 모순적 행동은 뇌 발달의 부산물이자 성장의 통과의례입니다.
아이의 “싫어!” 속에는 여전히 “그래도 나를 잡아달라”는 신호가 숨어 있습니다.
부모-자녀 관계로의 확장 — 현실의 자리에서
〈은중과 상연〉의 대사는 부모-자녀 관계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아이는 종종 부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합니다.
“엄마 때문에 다 망했어.”
“아빠는 나 이해도 못 하잖아.”
부모는 그 말에 상처받고 분노하지만, 그 속엔 늘 이런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내 고통을 알아달라. 나는 여전히 당신에게 기대고 있다.”
현실적 장면
시험 전날, 아이가 “나 공부 안 할래”라고 말할 때 → 의지가 아니라 불안의 다른 얼굴입니다.
아침마다 등교를 거부할 때 → “학교가 무섭다”는 두려움을 다르게 표현하는 겁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못 놓을 때 → 단순한 중독이 아니라 “나는 친구 집단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다”는 사회적 욕구입니다.
부모가 이 신호를 읽어줄 때, 아이는 “나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대한민국 사회문화적 맥락
대한민국 부모-자녀 관계는 특히 성과 중심 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성적과 입시가 관계의 조건처럼 여겨지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부모와 자녀 모두를 옥죄며,
서로의 불안이 상대를 향한 공격으로 변합니다.
〈은중과 상연〉의 양가성은 바로 이런 사회문화적 긴장 위에서 더 크게 공명합니다.
“네가 멀쩡한 게 싫다”는 상연의 말은, 사실 우리 사회가 타인의 안정과 성공을 쉽게 질투하는 집단 심리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심리는 가정 속에서도 재현됩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불안을 떠안고 밀어내며, 또다시 붙잡는 관계의 굴레로 이어집니다.
〈은중과 상연〉은 두 사람의 이야기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의 인간관계 이야기입니다.
사랑과 미움, 집착과 자유가 동시에 존재하는 건 누구에게나 낯익은 경험입니다.
우정과 연애뿐 아니라, 부부·친구·동료 관계에서도 같은 양가성이 흐릅니다.
직장에서 “존경하지만 동시에 경쟁하는 동료”
가정에서 “사랑하지만 때때로 버겁게 느껴지는 배우자”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이 모순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모순을 어떻게 다루며 함께 살아내느냐입니다.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
〈은중과 상연〉은 단순히 청춘의 서사가 아닙니다.
부모와 자녀, 부부, 친구 사이에서 언제나 반복되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양가적 감정은 불안정함이 아니라, 인간이 깊이 관계 맺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결국 성숙은 그 모순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서 시작됩니다.
아이의 모순된 말과 행동을 단순히 반항으로만 보지 말고,
그 속에 숨어 있는 “나를 알아달라”는 요청을 읽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 전체에도 이 질문은 남습니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질투와 집착, 불안과 애착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양가적 감정은 우리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 103동 의대 언니, 김성곤 교수의
부모가 먼저 자라는 수업
Parenting Insights by Prof. Seong-Go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