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숨 쉬는 순간
아이들이 마음을 열 때 부모의 입에서는 종종 이런 말이 먼저 나옵니다. “조금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그건 별거 아니야.” “넌 너무 예민해.” 부모는 위로라고 믿지만 아이에게는 “네 감정은 과해”라는 메시지로 들립니다. 감정은 논리보다 먼저 반응하고, 말의 온도보다 말의 속도에 먼저 상처받습니다. 철학자 아도르노는 “진정한 사랑은 타인의 고통을 옮겨 듣는 능력에서 시작된다”라고 했습니다. 아이의 감정이 사소해 보일수록 부모의 말은 더 쉽게 칼날이 됩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상처를 주려는 게 아닙니다. 상처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말이 향하는 방향에서 생깁니다. 아이가 “오늘 너무 힘들었어…”라고 말하는 순간 부모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낍니다. 아이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아이의 힘듦을 빨리 멈추고 싶은 불안. 그리고 대부분의 조언은 두 번째 감정에서 나옵니다. “그 정도는 흔한 일이야.”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이런 말들은 감정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감정을 멈추게 하는 말입니다. 감정은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영역입니다.
저녁 식탁에서 아이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합니다. “오늘 친구가 나랑 말도 안 했어…” 말 끝은 떨립니다. 부모는 걱정과 불안이 동시에 올라옵니다. ‘혹시 따돌림인가?’ ‘지금 해결해줘야 하나?’ 그 불안을 덮기 위해 부모의 입에서 급하게 말이 나옵니다. “친구 관계는 원래 그래.”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하지만 아이는 조용히 숟가락을 놓고 감정의 문을 닫습니다. 부모의 불안이 앞서면 아이의 감정은 설명되지 않고 중단됩니다. 부모는 해결을 말했지만 아이는 “나는 오늘도 이해받지 못했어”라고 느낍니다.
공감은 해결이 아니라 감정이 머물 자리를 만들어주는 태도입니다. “그럴 만한 하루였구나.” “많이 속상했겠다.” “조금 더 이야기해도 괜찮아.” 이런 문장들은 해결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이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심리적으로 감정은 이해받는 순간 긴장이 내려가고, 비로소 조절이 가능해집니다. 공감은 기술이라기보다 아이의 뇌가 다시 숨을 쉴 수 있도록 만드는 정서적 공간입니다.
성장과 감정은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랍니다. 대나무는 4~5년 동안 거의 자라지 않지만 뿌리를 깊게 내립니다. 아이의 감정도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가 없어 보여도 내면에서는 흔들리고 단단해지고 자랍니다. 부모는 그 뿌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조급해지고, 조급함이 조언의 언어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감정의 성장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저 일어납니다.
퇴근이 늦고 해야 할 일들이 많을 때 아이가 조용히 다가와 말합니다. “나 오늘 속상한 일 있었어…” 부모는 잠시 멈추고 싶지만 머릿속은 일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잠깐만. 이거 먼저 끝내야 해.” 아이는 “괜찮아…”라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갑니다. 문이 닫히는 순간 부모는 마음이 내려앉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이렇게 남습니다. “오늘 나는 중요하지 않았어.” 관계는 말로 망가지는 게 아니라 대부분 ‘못 들은 순간’에 무너집니다.
아이들이 정면 돌파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용기 때문이 아니라 안전감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회복탄력성이 의지가 아니라 관계의 안전감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누군가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았던 경험, 자신의 편이 되어준 기억이 아이를 다시 앞으로 걷게 합니다. 지지받는 아이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납니다.
부모의 마음에도 불안이 있습니다. 아이의 힘듦 앞에서 부모의 불안이 먼저 반응합니다. 그래서 듣기보다 말이 먼저 나갑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상담가의 자리에서는 누구보다 잘 들었지만 아버지의 자리에서는 자주 제 불안이 먼저 튀어나왔습니다. 그 실패들이 저를 다시 공감의 자리로 데려다 놓았습니다.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세우는 일입니다. “지금 하려는 말이 아이의 감정을 위한 말인가, 내 불안을 덮기 위한 말인가.” 이 질문 하나만 떠올려도 관계는 지켜집니다.
말의 칼날이 멈추고 귀의 체온이 아이에게 닿는 순간 관계는 조용히 회복됩니다. 공감은 드라마틱하지 않지만 감정을 살리는 첫 번째 숨입니다. 말이 멈추는 순간 관계는 멈추고, 귀가 열리는 순간 관계는 다시 시작됩니다. 관계는 말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온도로 유지됩니다.
공감이 살아나는 5가지 부모 실천 루틴
① 아이에게 몸을 15cm만 기울이기. 작은 기울임은 “지금은 네가 중심”이라는 신호입니다.
② 조언을 멈추려 하지 말고 아이의 호흡 리듬을 따라가기. 공동조율은 긴장을 자연스럽게 내려줍니다.
③ “기분이 어땠어?” 대신 “그때 무슨 일이 있었어?”라고 묻기. 감정은 장면 속에서 더 안전합니다.
④ 칭찬 대신 관찰 문장 사용하기. “오늘 네가 ○○한 걸 봤을 때 나는 좋았어.” 관찰은 존재를 인정하는 언어입니다.
⑤ 잠들기 전 단 한 문장 건네기. “오늘 네 마음이 많이 고생했겠다.”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다.” 길이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관계를 살립니다.
공감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그리고 태도는 결국 사랑의 모양입니다. 아이의 마음을 살리는 일은 언제나 이 조용한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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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enting Insights by Prof. Seong-Go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