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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의 얼굴을 한 SOS

작게 울리는 신호음

by 김성곤 교수

정서적 안정감이 낮은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에는 공통된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지칠 만큼 불안한 거예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순간을 종종 마주합니다.

“쟤가 나랑 안 놀면 나 싫어하는 거야?”

“선생님이 표정이 안 좋았어. 혹시 나 때문은 아닐까…”

아이는 작은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크게 출렁이고, 엄마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얘가 왜 이렇게 예민하지… 그냥 좀 넘기면 좋겠는데…’


상담실에서도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이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유난히 불안해요.”

그 말을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정서적 안정감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아이의 이야기일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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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문제 행동 리스트’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보내는 작은 SOS 신호를 읽어내기 위한 안내서입니다.

그리고 부모의 마음을 향한 조용한 위로이기도 합니다.


아이 중에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마음이 흔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너 왜 늦었어?”라는 장난 같은 말에 ‘나 때문에 민폐 끼친 건가… 나랑 놀기 싫어진 걸까…’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정서적 안정감이 낮은 아이는 타인의 표정·말투·시선을 과하게 분석합니다. 놀이터에 있어도 놀기보다 마음속 계산을 더 많이 하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그 말 들었을 때 많이 불편했겠다”라는 한 줄의 감정 공감이지, “그걸 왜 신경 써?”라는 일축이 아닙니다.


또 어떤 아이는 어느 날은 엄마에게 꼭 붙어 다니면서 혼자 아무것도 못 할 것처럼 보이다가, 또 어떤 날은 친구에게 서운함을 느끼고는 “다 필요 없어. 난 혼자가 편해.”라고 말합니다. 정서적 안정감이 약할 때 아이는 ‘의존’과 ‘거리 두기’를 오가면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전략을 씁니다. 속마음에는 늘 이런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내가 가까이 가면 버림받을까 봐 무서워…’

부모가 먼저 짚어줄 수 있는 말은 이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그 친구에게 상처받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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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안정감이 낮은 아이는 감정의 높낮이가 크고 오래갑니다. 아침에는 웃다가, 오후에는 문을 쾅 닫고, 잠시 뒤엔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웃기도 합니다. 부모가 흔히 하는 “그 정도로 왜 그래?”라는 말은 아이에게 ‘내 감정은 잘못된 거구나’라는 자책만 남깁니다. 조절 이전에 필요한 말은 하나입니다.

“그건 너한테 정말 큰일이었겠구나.”

이 한 문장이 아이의 마음을 지탱합니다.


실수나 실패 앞에서 얼어붙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틀릴까 봐 무서워.”

“또 못하면 어떡해…”

정서적 안정감이 낮은 아이는 ‘실수 = 나는 잘못된 사람’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놓기 쉽습니다. 그래서 도전보다 회피를 선택합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강력한 말은 아주 단순합니다.

“틀린 건 네가 나쁜 아이라는 뜻이 아니야.”

“틀린 문제는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는 힌트야.”

실패를 성격이 아닌 데이터로 보는 시선이 아이의 불안을 크게 줄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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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아이는 스스로를 향해

“난 원래 이래.”

“난 못해.”

“어차피 소용없어.”

이런 문장을 습관처럼 내뱉습니다.

이건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마음속에 각인된 자기 비난의 문장입니다.

부모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작지만 결정적입니다.

“지금 네가 한 말, 엄마가 들으니까 마음이 아프다.”

“넌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지금 힘든 아이야.”

이 말은 아이 마음속 자막을 천천히 바꿔주는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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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엄마들이 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제가 뭘 그렇게 잘못 키운 걸까요?”

그럴 때 저는 늘 이렇게 답합니다.

“잘못 키운 엄마가 아니라,

그만큼 불안한 시대를 버티고 있는 아이라서 그래요.”


저 역시 상담실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앉아 있던 아이들을 떠올리면 부모로서 마음이 함께 내려앉습니다. 그래서 더 신중해지고, “무슨 말을 해줄까”보다 “어떤 표정과 숨으로 아이 옆에 서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게 됩니다.


정서적 안정감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부모와 아이가 함께 천천히 길러가는 마음의 근육입니다. 완벽한 부모가 만드는 게 아니라, 부족한 부모와 불안한 아이가 함께 연습하며 쌓아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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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은, 정서적 안정감이 낮은 아이를 가정에서 도와줄 수 있는 다섯 가지 작은 실천을 정리해 봅니다.

첫 번째는 아이의 감정을 판단 없이 비춰주는 것입니다. “그런 말 들었을 때 많이 불편했겠다.” 감정이 안전하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정서적 안정감의 첫 벽돌입니다.


두 번째는 예측 가능한 하루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아침·숙제·잠자기 전 루틴처럼 작고 반복되는 패턴은 아이에게 “세상은 그렇게 무섭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세 번째는 실수와 실패를 평가가 아닌 데이터로 바라보게 돕는 것입니다. “틀린 건 네가 나쁜 아이라는 뜻이 아니야.” 실패가 곧 자기부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합니다.


네 번째는 아이의 자기 비난 문장을 대체 문장으로 바꿔주는 연습입니다. “난 못해…”라고 말할 때 “지금은 어려운 거야.”라고 부드럽게 교정해 주는 것입니다. 이 작은 교정은 아이 마음에 새로운 자막을 다는 일입니다.


다섯 번째는 부모 자신이 안정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엄마도 오늘 긴장됐어. 그래서 잠깐 호흡하고 있어.” 부모의 안정은 아이에게 그대로 안정기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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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안정감이 낮은 아이는

사랑을 덜 받은 아이가 아니라,

불안을 더 많이 버텨온 아이일 뿐입니다.

오늘 부모가 건넨 한 문장이

아이의 내일을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103동 언니, 김성곤 교수의 부모가 먼저 자라는 수업

Parenting Insights by Prof. Seong-Go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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